“행복은 함께 나누고 비울 때 찾아옵니다”

<사진=월요신문>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경기도 성남시 하대원동에 위치한 ‘안나의 집’에서는 매일 수백 명이 길게 줄을 늘어선 진풍경이 연출된다. 매일 오후 4시 반부터 7시까지 무료로 제공되는 밥을 먹기 위해 의지할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 무료 급식소인 안나의 집은 1997년부터 20여년 동안 어려운 사람들에게 정을 나누어왔다. 이곳 안나의 집 중심에는 이탈리아에서 온 김하종 신부(본명 벤첸시오 보르도)가 있다. 한국 생활 27년째인 그는 2년여 전 한국에 귀화했다. 이름에 담긴 뜻을 물어보니 “하느님의 종이라는 뜻으로 ‘김하종’으로 지었다”고 한다.

지난 23일 4시, 안나의 집 1층에 위치한 식당에 들어섰다. 앞치마를 두른 김하종 신부의 모습이 금방 눈에 띄었다. 식사 준비가 끝나자 김신부는 케이크를 꺼내 불을 붙였다. 물어보니 이오늘이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요한 형제’의 생일이란다. 김하종 신부는 “요한은 원래 노숙인으로 안나의 집에 왔다가 지금은 17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형제”라고 귀띔했다.

<사진=월요신문>

배식 시작 시간인 4시 30분. 김하종 신부는 식당 안에 있는 자원봉사자 10여명을 모두 불러 당부의 말을 전했다. “오늘도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들 많습니다. 몇 가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기 밖에 계시는 분들은 불쌍한 사람이 아니고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불편하신 분이 보이면 도와주세요. 지금부터 우리 사랑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도록 합시다. 감사합니다.”

김하종 신부는 자리를 옮겨 무료 급식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대부분이 70대 이상의 노인들이었다. 그는 그들에게 90도로 인사를 하며 “오늘도 사랑합니다. 맛있게 드세요”라고 따뜻한 말을 건넸다. 바쁜 시간을 틈타 그에게 궁금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안나의 집 이름이 포근한 느낌이다.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1992년 성남시 수정구의 위탁을 받아 독거노인을 위한 ‘평화의 집’을 운영했었다. 그러던 중 마태오(오승철) 사제가 독거노인보다 노숙인들의 수가 더 많다며, 노숙인들을 위해 봉사하면 후원을 해주겠다고 제안했다. IMF 사태로 실직 노숙인들이 곳곳에 늘어났을 때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노숙인들을 위한 봉사를 시작하게 됐다. 안나는 마태오 사제 어머니의 영세명이다. 마태오 신자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는 차원에서 안나의 집으로 이름지었다. 이름 안에는 ‘안아주고 나눠주며 의지할 수 있는 집’이라는 의미도 있다.

- 언제부터 봉사에 관심을 가졌는지 궁금하다. 신부님이 된 뒤부터인가.

사제가 되기 전이다. 어렸을 적 난독증을 앓아 읽고 쓰는 게 힘들었다. 친구들 사이에서 뒤쳐져 열등감이 심했다. 그것을 계기로 부족함을 가진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됐다. 봉사하며 살겠다는 뜻을 세워 신학대학에 들어갔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목표를 가진 오블라티 선교수도회에 몸담았다.

한국에 오게 된 이유는 대학원 전공으로 동양철학을 공부하면서 한국에 특별한 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1990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어려운 사람이 경기도 성남에 많다는 얘기를 듣고 이곳에 정착했다. 본격적인 봉사활동은 1992년도에 시작했으며, 1998년부터 안나의 집을 설립하고 노숙인들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 한국에 귀화한 특별한 사연이 있는지.

사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귀화하고 싶었다. 한국이 내 나라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번 실패했다. 한국에서 귀화하는 일은 쉽지 않다. 큰 사업을 하거나 한국 사람과 결혼을 해야 했는데 나는 어느 것도 해당 되지 않았다. 그러다 2~3년 전 정부에서 먼저 연락이 와서 귀화하게 됐다. 감사한 일이다.

- 안나의 집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 무료 급식소다. 급식소를 운영하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나.

안나의 집이 만들어졌던 1990년대에 성남에 어려운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과 어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느끼면서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뭔지 귀 기울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급식소를 열게 됐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두 번 식사를 제공했는데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횟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일반 회사의 경우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잡고 실행하는데 안나의 집은 그 반대다. 좋은 봉사 아이디어가 있으면 일단 시작하고 예산은 나중에 생각한다.

- 국내에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곳이 여러 곳 된다. 안나의 집은 어떻게 운영되나.

무료 급식을 주로 하지만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자활에도 관심을 갖고 도움을 주려 애쓴다. 가정해체, 경제적 위기를 맞은 청소년들을 보살펴 공동체에 잘 적응하고 성장하도록 돕는다.

- 운영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나.

처음 시작했을 때는 후원금 100%로 운영됐으나 현재는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 40%, 후원금 60%로 운영되고 있다. 나라에서 지정한 직원 수를 지키고 있으며 현재 40여명이 안나의 집에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꾸준히 안나의 집에 후원하고 있는 사람은 3000명 정도다. 한 사람당 한 달에 5000원씩 자동 이체로 후원한다. 후원하는 분이 많은 편이지만 아직 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는 아니다.

- 주로 어떤 사람들이 급식소에 오나

30%가 독거노인, 70%가 노숙인이다. 독거노인의 경우, 식사를 혼자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온다. 대부분은 폐지를 모아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다.

노숙인들은 다양한 편이다. 일반적으로 노숙인을 생각할 때 길거리에서 자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그건 노숙인의 가장 마지막 단계다. 노숙인은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고 조금씩 생활을 포기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안나의 집을 찾는다.

- 하루 평균 안나의 집을 찾는 인원은 얼마나 되나

평균 500명에서 550명 정도의 인원이 온다. 어제는 540명 정도 다녀갔다.

- 급식소를 찾는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항상 고맙다고 말한다. 식사를 하면서도 수고가 많다, 감사하다는 말을 한다. 거의 매일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이제 서로를 가족처럼 대한다.

- 혹시 부자도 오나. 가난한 사람 외에 찾아오는 사람은 없나.

안와도 될 것 같은 사람들도 온다. 도움이 정말 필요해서가 아니라 욕심으로 오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수는 많지 않다. 생활이 정상적이라면 안나의 집에서 식사하는 일은 사실 창피한 일이다.

- 안나의 집은 청소년쉼터도 함께 운영하는데 주로 어떤 아이들이 오나.

청소년 쉼터는 단기쉼터, 중장기쉼터, 자립관으로 나뉜다. 첫 단계는 단기쉼터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여기 입소해 상담한다. 단기쉼터의 목표는 가정복귀다. 가정복귀를 원하는 않는 아이들은 중장기 쉼터로 간다. 거기서 일반학교를 다니고 있다. 집으로 못가고 공부도 하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자립관으로 입소하고 스스로 자립 할 수 있게 노력하고 있다.

- 안나의 집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다. 누가 안나의 집 운영비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른다고 대답한다. 안나의 집 운영 자체가 기적이다. 후원을 바라던 곳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할 때가 있는 반면 신부님 이거 받으세요, 하고 자신을 알리지 않고 후원을 하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내가 가장 행복한 날은 12월 31일이다. 올해도 안전하게 잘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1월 1일은 정반대다. 이 날은 올해도 다시 시작해야지 하는 걱정이 앞서게 된다.

무엇보다 내년 말에 안나의 집 계약이 끝나기 때문에 걱정이다. 바로 건너편 땅을 샀는데 건물 짓는데 25억이 필요하다. 어떻게 해결 할지 지금도 걱정이다. 미래를 생각하면 겁이 난다. 사실 내 입장만 생각하면 2년 뒤에 환갑이 되기 때문에 은퇴하고 박수 칠 때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면 더 일해야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집을 지어야 한다고 결심한 것이다.

- 봉사활동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일은.

많다. 안나의 집에서 도움을 받은 노숙인들 중 자립에 성공한 사람들이 추석이나 설날 찾아와서 저한테 감사하다고 후원금을 주고 간다. 자기가 받은 도움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주기 위해서다. 이런 일들은 항상 감사하다.

얼마 전에 가슴이 찡한 일을 겪었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 장례식장으로 오라고 해서 갔다. 알고 보니 여기서 도움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 주머니에 내 명함만 있어 나한테 연락이 온 거였다. 참 슬픈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웠다. 죽는 순간까지 명함을 소중히 간직한 그분의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았다.

- 한국에서 오래 사셨는데, 신부님의 눈에 비친 한국인은 어떤 모습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열정이 참 많다. 좋은 것을 보면 관대한 마음으로 다 도와준다. 안나의 집은 그런 한국인들의 마음 때문에 운영되고 있다. 한국에 살면서 계산 없이 베풀어주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 신부님의 소망이 뭔지 궁금하다.

안나의 집의 가장 큰 목표는 무료 급식을 통해 밥을 주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도 가난한 사람들 옆에서 희망을 주는 일을 하는 것이 내 소망이다. 죽을 때까지 한국에 살면서 봉사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장기기증도 했다. 행복이라는 것은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눔에서 온다. 내 공간, 내 시간, 내 돈, 내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면 더 많이 가지지 못 한다. 비워야 얻는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 무료급식은 끝났지만 김하종 신부의 하루는 마무리 되지 않았다. 안나의 집에서 퇴근하자마자 또 다른 봉사 현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아지트’, 이동 청소년 상담소 ‘아이들을 지켜주는 트럭’이다. 일주일에 네 차례 김하종 신부는 아지트를 찾아 가출 청소년들을 보살핀다. 그들은 김하종 신부에게 또 하나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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