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

청소년공동체 에듀코 김경연 대표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언 듯 이해하기 어려운 말을 들었다. “개인적으로 사무실을 임대해 청소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모임 공간으로 운영하는 사람이 있다”는 얘기였다. 우선 든 생각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 왜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였다. ‘임대업이 꿈인 나라’ 한국에서, 심지어 초등학생도 임대업이 꿈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 나라에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도대체 어떤 학생들이, 왜 그 곳을 찾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스쳤다. 명문대 입학과 대기업 취업을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지옥 같은 입시경쟁에 내몰리며 기업 CEO 못지않게 바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한국 청소년들의 모습 아니었던가.

수소문해보니 이야기의 주인공은 청소년공동체 ‘에듀코’ 김경연 대표였다. 본지는 김 대표를 직접 만나 자세한 내용을 들어보기로 했다. 김 대표가 운영하는 청소년 모임 공간 ‘나나’는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위치해 있었다. 28일 오후 3시경 목적지에 도착하니 ‘청소년 에너지 충전소 나나’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2층에 위치한 사무실로 들어서니 출입구 앞의 커다란 당구대가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고, 그 너머에는 학생들이 앉아 편히 쉴 수 있는 널찍한 마루도 마련돼 있었다. 공간 한 켠에는 간단한 차와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있는 아기자기한 주방과 김 대표의 개인 사무실도 마련돼 있었다. 방과전이라 아직 학생은 없었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며 손수 커피를 타서 건낸 김 대표는 푸근한 인상이었지만 서슬퍼런 검사 역할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인터뷰는 약 3시간 가량 진행됐다.

청소년 에너지 충전소 ‘나나’와 청소년공동체 ‘에듀코’를 운영하고 있다. ‘나나’와 ‘에듀코’는 어떤 곳인가.

‘나나’는 ‘언제나 누구나’를 줄인 말이다. 자신이 계획하지도 않은 스케줄을 감당하느라 힘에 부치고 무기력에 빠진 이 시대 청소년들에게 부담 없이 찾을 수 있는 그들만의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나나’가 만남의 공간이라면 ‘에듀코’는 단체 이름이다. 흔히 에듀케이션(education)이라고 하면 ‘뭔가 새로운 것을 가르쳐 주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에듀케이션의 라틴어 어원인 에듀코(educo)를 보면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에듀코에서 ‘e’는 ‘밖으로’라는 뜻이고 ‘duco’는 꺼낸다는 뜻이다. 즉 교육이란 내부에 있는 것이 발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의미다. 그런데 우리는 청소년들을 미완의 존재로 간주하고 밖에서 무조건 주입하려고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듀코’는 이같은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 던지는 메시지로 볼 수 있다.

청소년 활동을 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한때 재테크 전문가들 사이에는 ‘20대에 20평, 30대에 30평, 40대에 40평짜리 집을 마련해야 한다’는 말이 유행처럼 돈 적이 있었다. 나이와 비례해서 집을 키워야 성공한 삶이라는 얘기다. 최근에는 20대에 차를 사지 못하거나 ‘인서울’을 못하면 루저가 된다는 말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보이지 않는 사회적 강제를 받으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사실은 내 삶이 아닐 수도 있다. 자본이 만들어놓은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전에 6년 정도 무역업계에서 일하면서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나 급여 인상 등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보상들이 내게는 오래 가지 않았다. 오히려 누군가를 도와주고 그 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내겐 더 큰 보상이 됐다.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한다고 하면 대단하다는 식의 얘기를 많이 한다. 하지만 나는 절대적인 희생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 가치에 대한 우선 순위는 다를 수 있다. 다만 내 경우엔 우선순위가 지금 하는 일들에 있었고 그것이 내 자신에 대한 선물이 되었을 뿐이다. 내 ‘연비’를 줄이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걸 더 많이 할 수 있다.

착한사람 DNA가 있는 것 같다.

사실 살면서 착하다는 말은 많이 못 들어봤다. 나를 구성하는 가치의 두 가지 큰 축은 사랑과 정의다. 사랑이 없는 정의는 폭력이 되기 쉽고, 정의가 없는 사랑은 방종이 되기 쉽다. 그런데 나는 사랑보다는 정의 쪽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의지만 착하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

‘나나’를 오픈하기 전 2년 동안 ‘동네 샘카페’를 운영한 걸로 안다. 활동 내용이 비슷한데 굳이 명칭을 바꾼 이유가 있나.

지난해 3월 공간을 옮기면서 ‘동네 샘카페’에서 ‘나나’로 이름을 바꿨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이 ‘샘카페’라는 명칭을 생소해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 와서 “학원 선생님이세요? 학교 선생님이세요? 왜 샘이예요?”라고 문는 아이들이 많았다. 순간 ‘이게 아이들 용어가 아니구나. 우리를 이렇게 불러달라고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아이들에게 ‘어떤 공간이었으면 좋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쉬는 곳’, ‘노는 곳’이었다. 애들이 많이 지쳐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청소년 ‘누구나 언제나’ 찾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의미에서 ‘나나’로 결정했다.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에서 청소년 교육을 했는데, 나나로 활동무대를 옮긴 사정이 있나.

월드비전은 우리나라 복지단체 중 가장 큰 단체다. 해외에서는 국제개발 사업을 하지만 국내에서는 주로 복지사업을 한다. 개인적으로 시민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 2007년 ‘세계의 시민교육’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외고 중심의 공부 잘하는 부유층 아이들 중심으로 운영되는 측면이 있었다. 일종의 ‘거품’이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월드비전에서 일하면서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모두 신음하면서 살고 있지만 거기에는 양 극단이 있다는 사실이다.

한 극단은 ‘과보호그룹’이다. 이 그룹의 청소년들은 부모님의 주도로 통제된 생활을 한다. 심지어 봉사활동 마저도 하나의 스팩 쌓기로 활용된다. 세계 시민교육 프로그램 당시 경쟁률이 10대 1이 넘었는데 당시 ‘우리 애 넣어달라’며 로비한 부모님도 있었다. 과보호그룹의 아이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결과주의다. 그러다보니 자기가 못했을 때 받는 채벌이나 비난이 두려워서, 혹은 자신이 못한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현실을 피해버리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과보호그룹 아이들에 대해서는 뭔가 돈이 되니까 사교육시장 뿐 아니라 NGO 등 여러 곳에서 많이 접근을 한다.

문제는 다른 극단인 ‘방임그룹’이다. 이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는 상대적으로 낮다. 월드비전에 소속된 전국 복지관들에 청소년 교육을 하러 가보니 이 아이들은 정말 방임·방치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방임그룹 아이들은 학교 가는 것 자체가 의무적이다. 아무런 목표도 없다. 과보호그룹 아이들과 정반대의 원인 때문에 방임그룹 아이들 역시 무기력에 빠진다. 특히 방임그룹 아이들은 인정받고, 칭찬받고, 관심을 받은 경험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많은 단체들이 대도시에서만 활동을 한다. 모금활동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가장 가난한 아이들에게 관심을’이라고 미션을 제시하지만 실제로는 모금이 잘 되는 곳을 찾는다. 우선순위가 바뀐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복지사업에서 소외된 지역을 돌봐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찌 보면 무모한 면도 있다.

이곳 양주에서 활동을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인가.

양주는 전국 시 가운데 어느 형태의 복지관도 없는 유일한 도시다. 전국에서 재정자립도가 최하위 수준이다. 시민사회도 약하다. 양주시는 청소년 시설을 100% 시가 직영하고 있다. 위탁을 하려해도 위탁을 받을 만한 주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있는 청소년 시설도 뉴타운에 몰려있다. 또 2014년 통계자료를 보면 학교 내 학비지원 대상자가 30%에 달하고, 결손가정의 비율도 상당히 높다. 어찌 보면 의정부나 서울에 뉴타운이 생길 때 비싼 집값에 떠밀려 온 사람들이 많기 때문인 것도 같다. 그러다보니 지역 소속감도 크지 않다.

그만큼 아이들을 키우기에 척박한 환경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곳에 와서 보니 고등학생인데 곱셈 나눗셈이 안되거나, 가정통신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소년 문맹’도 꽤 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학생들 뿐 아니라 교사들 사이에서도 패배주의가 짙게 깔려 있다. 청소년기에는 자신을 믿어주는 한 사람의 존재가 매우 중요하다. 방임된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존재 자체로 소중하다는 걸 말로만이 아닌 삶 속에서 깨우치게 해주고 싶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을 내가 해 보기로 한 것이다.

방임그룹 아이들의 특징은.

예전에 표창원 의원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때 인상 깊었던 것이 ‘새로운 체험을 하면 뇌에 새로운 회로가 생긴다’는 말이었다. 길이 없는 곳을 가면 길이 생기듯이. 그런데 방임그룹 아이들은 그런 체험을 한 경험이 너무 적다. 심지어 생일파티 조차도 제대로 못한다. 살면서 생일파티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적극성이나 주도성이 떨어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안 해본 게 너무 많다. 칭찬을 받은 경험이나, 내가 뭔가 스스로 성취하는 체험, 또래와 함께 뭔가를 해서 즐거움을 느낀 경험 등이 너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기본적인 인사하기나 약속 지키기도 전혀 안됐다. 사람들을 의식 할 수 있어야 배려하는 것도 가능한데 그런 것들에 대한 연습이 안 돼 있는 거다. 기본적인 사회성의 부족이다.

나나의 평소모습

학생들이 ‘나나’를 찾아오는 경로가 궁금하다. 따로 홍보활동을 하나.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은 아니라 주로 입소문을 통해 온다. 그런데 입소문이 생각보다 잘 안 난다. 아이들이 자기들만의 아지트이길 바라기 때문인 것 같다. 심지어 어떤 아이는 “샘 홍보안하면 안되요?”라고 묻는다. 그래서 굉장히 느리다.

학생들은 이곳에서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딱히 정해진 프로그램은 없다. 처음에는 단순히 놀이에서 시작한다. 그러다 자신의 고민이나 생각을 얘기하는 과정에서 동아리가 결성되기도 하고 프로그램으로 발전한다. 최근에는 댄스동아리, 외국어(일어, 중국어, 영어) 신문 동아리 활동을 주로 하고 있다. 내가 제안한 프로그램도 있다. 방임그룹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동네에서 같이/가치 놀자’는 공동체 놀이 프로그램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게임디자이너가 되어 게임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 활동 경험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여기에는 이번 여름방학 캠프도 포함된다.

레고블럭으로 나나에서 함께 사용할 물품을 만드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

‘나나’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변화가 있었나.

예전에 한 아이가 “댄스로 대학을 가고싶다”고 해서 어느 학교에 그런 과가 있는지 찾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걸 못하더라. 검색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뭔가를 시작하고 진척시키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걸 포기하지 않도록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에 외부 선생님을 모셔 10회차 댄스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이 댄스동아리를 결성해 프로그램 시작 한 시간 전에 와서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댄스 강습 후 피드백에서 ‘좋았어요’나 ‘모르겠어요’ 등 단순한 대답만 하던 아이들이 “샘 제가 춤을 배울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어요”라며 아주 구체적인 의사표현도 했다. 누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가르쳐준다는 것에 대해 아이들이 흥분을 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실용무용학과를 지원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생겼다.

재작년에는 아이들과 함께 캄보디아에 갔다. 같은 나이 또래의 캄보디아 아이들과 우정을 쌓는 게 목적이었다. 당시 내가 아이들에게 유일하게 주문한 것은 캄보디아 아이들과 친구가 될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다. 캄보디아에 가서는 캄보디아 음식을 만들어먹고 준비한 게임도 하면서 놀았다. 언어소통이 안되는데도 아이들이 밤을 새서 노는 것을 보고 놀랐다. 석양이 질 무렵 메콩 강에서 배도 탔다. 그런데 3일째 되던 날 지금 고3이 된 한 아이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샘,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그 사이에 그걸 체험한 거다. 한때는 ‘네’, ‘아니오’ 등 지극히 단순한 대답만 할 줄 알던 이 아이가 지금은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다. 위안부를 소재로 한 엽서와 핸드폰 케이스 등 몇 가지 상품을 만들어 수익금을 국제평화센터에 기부하겠다는 생각이다.

작은 것이긴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인사하기나 약속지키기 등 기본적인 사회성에도 발전이 있었다.

운영은 어떻게 하나. 주변에 도움을 주는 분들이 있나.

청소년공동체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자금은 크게 사업비와 운영비가 있다. 우리 사회에 기금이 많기 때문에 사업비를 따내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상시적으로 들어가는 운영비를 주는 곳은 없다. 운영비는 사무실 임대료나 인건비를 말한다. 말하자면 ‘제 인건비를 좀 대주십시오’라고 하는 건데 누구도 안대준다. 이런 작은 단체가 흔들리는 가장 큰 이유다.

이 때문에 필요에 의해 기금을 모금하는 게 아니라 기금을 모으기 위해 프로그램을 만드는 유혹도 많이 받는다. 예컨대 대기업에서 ‘청소년 인문학 프로그램’을 진행해달라며 연 3000만원 지원을 제안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런 제안을 수용하면 활동의 우선순위가 바뀌게 되고 현재 참여하는 아이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미션이 바뀌는 셈이다. 이렇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운영이 힘들기 때문이다. 월급도 잘 안 나오는 상황이 되니까 돈 되는 사업을 하는 거다.

그래서 나는 회원들을 모집할 때부터 “저희들의 운영비를 책임져 주십시오”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욕구를 확인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기 전에는 공모를 통해 기금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현재 약 130명 정도의 회원(후원자)으로부터 월 250~300만원 정도 지원을 받고 있다. 비정기적으로 후원해주시는 분들도 있다. 모자라는 부분은 외부 강의료나 심사비, 평가비, 원고료 이런 걸로 충당하고 있다.

청소년 활동을 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들과 신뢰가 형성되었을 때다. 아이들의 절절한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내가 정말 이 친구와 연결돼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순간이 가장 뿌듯하다. 이럴 때는 ‘중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느낌’을 받는다.

아이들의 행동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여기 온 어떤 애는 그냥 5시간을 잠만 자고 갔다. 처음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저러고 있나 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보면 그게 자기 딴에는 덜 상처받고, 덜 아프고, 덜 불행하기 위해 나름대로 아등바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일을 하면서 배운 것 중의 하나가 ‘애쓰지 않는 인생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함부로 판단할 수 있는 인생도 없다. 주류 사회에 다시 돌아갈 엄두를 못 내고 있는 노숙인들도 사회적·정신적 충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리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애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걸 벗어날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나는 그 계기를 마련해주고 싶은 거다.

보람도 있겠지만 어려움도 클 것 같다. 가장 힘든 부분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어려울 거라고 말한다. 물론 공동체 운영이 어렵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실제로 운영비 마련을 위해 대출을 받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걱정으로 심각한 두려움이 생긴 적은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다.

오히려 내가 힘들어지는 순간은 아이들이 내 삶에 대해 관심이 없을 때다. 주로 아이들을 만나다보니 내 얘기를 하기 쉽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런데서 오는 외로움이나 고립감이 평소에는 잘 못 느끼다가 이친구들이 내 삶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구나 하는 것을 느낄 때는 허무하고 힘들다. 물론 이해는 간다. 기본적으로 생존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용한 것이라고 본다.

최근 ‘나나’와 같은 ‘청소년 공동체’가 늘고 있다. 이유가 뭐라고 보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청소년 활동을 업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성숙하지 못한 사회라는 의미가 아닐까.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데 한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동네 형들이나 삼촌들이 교육자였다. 놀아주고 가르쳐주고. 그런데 지금은 마을이 그런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정부의 사회복지 정책도 사람이 죽거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걸 막는데 급급한 정도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청소년 공동체 활동이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회문화 운동으로 정착할 수 있다고 보나.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 공간이 늘어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청소년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입시위주의 교육, 학벌 중심의 채용과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꺼내놓고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한 아이가 성숙한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위와 소득을 올리고, 남을 밟고 서는 것이 성숙한 성인이라는 현재의 사회상과 시민상이 바뀌지 않는 한 청소년 문제는 해소되기 어렵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