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공부, 세상공부 통해 시대를 보는 통찰력 키워요”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한 달에 한 권씩 책을 읽는 모임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모든 회원들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시민사회운동 현장을 찾는다. 이론학습과 현장체험의 균형을 통해 ‘사람(되는) 공부, 세상 공부의 긴장을 놓지 않는다’는 게 이 모임의 목표다.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전 진보신당 대표)이 발기인인 독서토론 모임 ‘소박한 자유인’ 이야기다.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독서 모임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왜 완전한 자유인이 아니라 소박한 자유인일까’ 하는 것이었다. 취재를 준비하던 중 홍세화 선생이 지난 2010년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칼럼 ‘여기가 로두스다(끝) : 소박한 자유인’을 읽게 됐다. 이 글에서 홍 선생은 소박한 자유인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잡초를 없앨 수는 없으나 뽑을 수는 있다’는 오래된 격언이 있다. 내가 젊은이들에게 ‘완전한 자유인’보다 ‘소박한 자유인’이 되라고 주문하는 이유도 이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잡초를 모두 없애겠다’는 큰 뜻을 품었다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순간 잡초를 뽑는 노력을 중단하거나 아예 스스로 잡초가 돼버린 사람들을 많이 봐 왔다. 마찬가지로 젊은 시절 ‘완전한 자유인’이 되기를 열망했지만 만만치 않은 현실 문제와 씨름하다 결국에는 ‘소박한 자유인’의 길마저 포기한 채 물신(物神)에 귀의하는 이들도 많다. 요컨대 내가 말하는 소박한 자유인이란 소박한 생존에 머물 줄 아는 사람, 소박한 자아실현에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지만 ‘부자 되세요’가 새해 덕담이 되고 기름진 생존이 목적이 돼버린 우리사회에서 이같은 소박한 자유인의 길도 결코 쉽지는 않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 쯤은 고민했을 법한 문제에 대해 현실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한 홍 선생의 글을 읽고 나니 ‘소박한 자유인’의 활동에 대한 호기심은 더 커졌다.

4월 1일 토요일 오후 4시경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 위치한 ‘소박한 자유인’ 사무실을 찾았다. 산울림 소극장 앞 삼거리에서 와우산로를 따라 30m 가량을 올라가니 좌측 붉은색 건물 뒤편에 4층짜리 흰색 건물이 있었다. 평소 이 길을 자주 지나다니는 사람도 주의 깊게 살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소박한’ 건물이었다. ‘소박한 자유인’은 이 건물 2층 일부를 사무실로 쓰고 있었다.

사무실 앞에 도착하니 최진영 사무국장이 반갑게 맞아줬다. 사무실 공간은 ‘소박한 자유인’이라는 이름처럼 ‘소박한’ 모습이었다. 가운데는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책상과 의자가 마련돼 있었고 앞쪽에는 작은 화이트보드가 걸려 있었다. 사무실 좌우와 뒤편에는 1인용 의자와 2인용 의자, 책과 서류가 꼽혀있는 공간박스 등이 배치돼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을 알뜰히 사용하고 있었지만 답답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대신 ‘자유인’이 된 것 같은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은실 상임이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백팩을 맨 활기찬 모습이었다. 간단한 인사 후 “‘소박한 자유인’은 어떤 모임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강 상임이사는 “스스로 책을 읽는 훈련을 통해 사회전반을 보는 눈을 기르고, 시민사회운동과의 연대를 통해 시민사회운동을 재구성하는 것이 ‘소박한 자유인’의 중점 목표”라고 운을 뗐다.

강 상임이사는 “사람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공부를 게을리 하기 시작하면 세상을 보는 프레임이 약해질 수 있다. 또 새롭게 형성되는 사회 주체나 사회운동 과제를 놓칠 위험도 있다”면서 “전문가들에 의해 주입된 방식이 아닌 자기만의 방식으로 시대를 읽어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현실과 괴리되지 않기 위해서는 독서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사회 현장을 알아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한 달에 한번은 현장을 찾는 노력을 하고 있다. 책을 매개로 형성된 관계를 통해 우리 사회 개인이나 소수의 얘기들을 모아야 한다. 그러한 관계가 확대되면 궁극적으로는 새로운 시민사회 네트워크가 구성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임 예정 시간인 5시가 가까워오자 회원들이 하나 둘씩 자리를 채워갔다. ‘소박한 자유인’ 모임은 일반적으로 운영위원회가 추천한 책을 읽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시기적으로 중요한 이슈가 있는 경우에는 외부 강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기도 한다. 이날은 지난 2월 출판된 <사드의 모든 것>의 저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의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사드의 모든 것>의 저자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강연 하는 모습.

모임에 참석한 회원들 구성은 다양했다. 개인 사업을 하는 사장님을 비롯해 일반 직장인, 대학생, 주부 등이 모임에 참석했다. 연령층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지인의 소개로 처음 참석한 회원도 있었고, ‘소박한 자유인’의 전신인 학습협동조합 ‘가장자리’ 때부터 지속적으로 활동해온 회원도 있었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관심사를 공유하기 위해 한 공간에 자리한 모습이 퍽이나 이채로워 보였다.

이날 참석한 회원 중에는 서울 소재의 한 출판사 인문교양팀에서 일하고 있다는 김 모 씨도 있었다. 모임에 참석하게 된 계기를 묻자 김씨는 “한겨레 문화교육센터에서 홍세화 선생님의 ‘르몽드 읽기’ 강연을 듣던 중 우연히 ‘소박한 자유인’모임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서 “한 달 전에 회원으로 가입했는데 모임 참석은 처음이다. 오늘 강연 주제인 사드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 남편과 데이트도 할 겸 함께 왔다”고 말했다.

5시가 되자 사무실 안은 빈자리가 하나도 없이 꽉 찼다. 강단에 선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가 간단한 인사 후 “사드와 관련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키워드 중심으로 말씀해주시면 그걸 엮어서 강연을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러자 회원들은 사드의 요격범위, 운영방식, 운영비용, 유해성, 효용성, 록히드마틴, 사드의 대안, 동북아정세 등 다양한 의견을 내놨다. 강연은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강연 후에는 회원들의 질문과 토론 시간이 이어졌다. 이날 모임은 주제의 특성상 무거운 분위기가 연출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무겁지 않았다. 진지함 속에서도 화기애애함이 넘쳐난 탓에 쉬는 시간 없이 2시간 동안 이어진 모임이 오히려 짧게 느껴질 정도였다.

진지한 모습으로 강연을 듣고 있는 '소박한 자유인' 회원들. 개인 사업을 하는 사장님을 비롯해 직장인, 대학생, 주부 등이 모임에 참석했다. 연령층도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했다.

모임이 끝난 뒤에는 뒤풀이가 준비돼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던 20대 후반의 여성 박씨에게 ‘소박한 자유인의 어떤 점이 가장 좋은지’ 물었다. 지인의 소개로 ‘가장자리’ 시절부터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박씨는 이렇게 말했다. “원래 제 안에만 갇혀있는 성격이라 처음에는 걱정도 많이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소박한 자유인’에는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해 배려하는 문화가 있더라. 홍세화 선생님을 비롯한 모든 분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끌어주시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그래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홍세화 선생은 지방 일정 때문에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취재 중 유일하게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었다. 이 아쉬움을 달래 준 건 다름 아닌 ‘소박한 자유인’ 회원들이었다. 낮과 밤이 교차하는 시간, 진지한 토론을 끝내고 뒤풀이 장소로 이동하는 회원들의 뒷모습이 그렇게 가벼워 보일 수가 없었다. 바로 저런 것이 ‘소박한 자유인’의 모습 아닐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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