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뱃길 따라 가본 한강의 역사와 자연 유산

‘나의 양화나루 유람기’ 참가자들이 뱃길 탐방을 위해 배에 탑승하고 있다.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서울에서 배를 타며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다. 과거 서울의 관문역할을 해 온 양화진이 바로 그곳이다. 서울 마포구는 올해 4월부터 10월까지 배를 타고 양화진 일대 근대사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이름하여 양화진 옛 뱃길답사 ‘나의 양화나루 유람기’다. 이 프로그램은 지난 2015년을 시작으로 세 번째로 이어지는 행사다. 양화진과 양화나루를 연계해 역사와 자연유산을 체험할 수 있는 그 현장을 직접 찾았다.

지난 5일 수요일 낮 12시 50분. 참가자 집결 장소인 합정동 주민센터 3층에는 60여명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아침부터 내리는 빗줄기 탓에 사람이 없지는 않을까 했던 생각은 기우였다. 참가자들의 연령대는 4~50대가 주를 이뤘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온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자리한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컬쳐앤로드 문화유산 활용연구소’ 측은 참가자들에게 가이드북과 양화진 일대가 그려진 가방을 전달했다. 컬쳐앤로드 이동범 대표는 “행사 첫날인 오늘 비가 내리는 게 기분 좋은 신호인 것 같다”고 입을 뗐다.

이 대표는 “양화나루 일대는 조선시대 한양에서 강화로 가는 주요 간선도로상에 있던 교통의 요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름만 남았을 뿐 아무런 흔적이 없다. 역사적인 유산을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프로그램은 ‘서울 양화나루와 잠두봉 유적’(사적 제399호)을 중심으로 절두산 순교성지, 외국인 선교사 묘원, 밤섬, 선유도 등 한강 일대를 탐방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고 말했다.

답사에 앞서 슬라이드를 통한 강의도 이어졌다. 전문 해설사인 서재순씨가 단상에 올랐다. 서씨는 양화진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참가자들이 가게 될 장소에 대한 설명을 차근차근 해나갔다. 서씨는 “조선 3대 나루 중 하나였던 양화나루는 바다와 한강을 이으며 외세를 막았다. 또 빼어난 아름다움으로 선인들의 시와 그림의 소재가 됐다”며 “오늘 뱃길 탐방을 통해 양화나루 일대의 가치를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나의 양화나루 유람기’ 참가자들이 이동하는 모습.

양화진 뱃길탐방 코스는 ▲절두산 순교 성지코스인 ‘A코스’와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 코스인 ‘B코스’로 나뉘었다. A코스는 양화진 소공원에서 출발한다. 병인박해 당시 천주교인이 참수형을 당한 역사가 남아있는 철두산 순교성지를 둘러본다. 잠두봉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선유도와 잠두봉도 볼 수 있다. B코스는 절두산 순교성지 대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도운 호머 헐버트 박사가 묻혀 있는 선교사 묘원을 지나간다. 이곳에는 우리나라를 위해 공헌한 외국인 500여명도 함께 잠들어 있다.

이날은 A코스가 예정 된 터라, 참가자들이 절두산 순교 성지 쪽으로 이동했다. 인원이 많아 20여명씩 세 조로 팀이 나뉘었다. 각 조에는 답사를 진행해 줄 전문 해설사 한 명과 진행요원이 한 명이 함께 했다. 빗줄기가 강해진 탓에 이동하는 내내 어려움이 있었지만 참가자들 얼굴에는 설레는 표정이 가득했다.

그 중 진지하게 가이드북을 보면서 걸음을 옮기는 참가자가 눈에 띄었다. 자신을 마포구 성산동 주민이라고 밝힌 유필선 씨(75)였다. 유씨에게 뱃길 탐방에 참가한 계기에 대해 물었다. 유씨는 “지난해 이 프로그램을 알게 됐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 참여를 못했다. 올해는 행사 첫 날부터 참여하게 돼 감회가 새롭다. 절두산 순교 성지에 대한 역사도 알 수 있고, 배를 타고 평소 보고 싶었던 밤섬도 볼 수 있다고 해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이 절두산 순교 성지에서 전문 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절두산 순교 성지에 도착하자 각 팀이 나눠져 본격적인 답사가 시작됐다. 전문 해설사는 “양화나루에 우뚝 선 이 언덕은 누에의 머리를 닮았다고 해 잠두봉(蠶頭峰)이라 불렸다. 하지만 1866년 병인박해 이후로 ‘머리가 잘린 산’이라고 해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19세기 말 이 지역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참가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참가자들의 발걸음은 △절두산 성지 내 묘비 △김대건 신부상 △척화비 △순교자 기념탑 △오성바위 등으로 이어졌다. 전문 해설사는 상황에 맞게 천주교 도입, 병인양요, 천주교 박해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 참가자들은 전문 해설사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슬라이드 강의를 통해 봤던 동상이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열심히 사진을 찍는 중년여성이 눈에 띄었다. 다가가 인사를 나눈 뒤 소감을 물어봤다. 나이가 57세라고 밝힌 김씨는 “이곳에 오니 이상하게 마음이 위로되는 느낌이다. 천주교 탄압으로 처형당한 사람들을 생각해봤다. 그 시대에 산 사람은 아니지만 묵념을 빌었다. 그분들의 희생 때문에 오늘날 천주교가 발전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 중 가장 어려보이는 학생 두 명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12살 동갑내기 친구인 그들이 이번 프로그램에서 느낀 바는 무엇일까. 박시헌 학생은 “엄마의 권유로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됐다. 맨날 이 길을 지나다닌다. 답사를 하고보니 내가 보는 풍경들이 새롭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김지민 학생은 “선교사들의 희생이 감사했다. 나도 커서 미래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미소 지었다.

절두산 순교성지 코스의 다음 순서는 뱃길유람이었다. 참가자들은 잠두봉 선착장으로 이동해 준비된 배를 탔다. 선유도 공원을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배였다. 배가 이동하는 동안 당인리발전소, 밤섬 등 양화진을 둘러싼 주요 명소를 구경할 수 있었다.

“밤섬은 과거 하얀 백사장이 아름다운 한강의 명승지 중 하나였다. 이곳은 1968년 여의도 개발을 명분으로 폭파됐다가 2010년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생태보호구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은 불가능하다” 컬쳐앤로드 측의 설명이 이어지자 참가자들의 고개가 밤섬으로 향했다.

그 중 참가자 김소리(48)씨는 “일반인에게도 밤섬을 지나칠 수 있는 뱃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씨는 “일회성으로 밤섬을 보게 되는 게 아쉽다.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처럼 양화진 일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뱃길이 열렸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지금 왔던 코스를 개인적으로 찾아올 것 같다”고 말했다.

‘나의 양화나루 유람기’ 참가자들의 단체 사진.

절두산 순교성지 코스의 마지막인 선유도공원에 도착하자 비바람이 심해졌다. 선유도공원에서는 시간의정원, 녹색기둥의 정원, 선유정 등을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쯤 누군가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습니까”고 큰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프로그램 내내 참가자들을 인솔한 전문 해설사 강선애(58)씨는 “오늘 양화진 일대 역사를 소개하면서 보람을 느꼈다.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기뻤다. 앞으로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이 한강변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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