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아기 사진 보고 자원봉사 결심”

김연식 항해사의 그린피스 활동 모습. <사진=그린피스 제공>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이웃’의 지리적 경계선은 어디까지일까. 여기 지구 반대편에서 생사를 걸고 ‘난민 구조선’에 오르는 이가 있다.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 3등 항해사 김연식씨다. 김씨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지중해에서 난민 구조 활동에 뛰어들었다.

김씨에게 지리적 경계선은 없다. 김씨가 생각하는 ‘이웃’은 지역과 인종을 초월한 ‘인류애’와 맞닿아 있다. 그는 과거 이력도 범상치 않다. 지역 신문사 기자에서 돌연 항해사의 길을 택했다. 그때 그는 29살이었다. 피나는 노력 끝에 항해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수많은 나라와 항구를 누비며 2등 항해사가 됐다.

그린피스 환경보호선 '에스페란자에서 일하는 김연식 항해사. <사진=김연식 제공>

 

김씨는 상선 1등 항해사 승진을 앞두고 그린피스 환경보호선 3등 항해사로 옮겼다. 연봉도 반 이상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거 도전이 자신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였다면 그린피스로의 이적은 이웃의 더 나은 삶을 위해서였다. 그의 도전은 멈추지 않고 지중해 난민구조 활동까지 이어졌다.

 

김씨의 마음을 움직인 난민구조 사진. <사진=스토리펀딩 '지중해를 헤매는 쿠르디의 친구들'>

 

김씨의 마음을 움직인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그린피스에서 근무하던 그는 독일 출신 선원으로부터 지중해에서 죽어가는 난민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아기 난민 사진을 봤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를, 물에 젖은 아기를 구조대원이 품에 안은 사진이었다.

김씨는 4월 12일부터 5월 4일까지, 5월 28일부터 6월 18일까지 두 차례에 거쳐 난민구조선에 오른다. 보름간만 난민구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기간 안에 전력으로 난민들을 구조해야 한다. 말이 구조이지 물 위에 뜬 시체를 수없이 건져야 하는 ‘중노동’이다. 그걸 감수하고 자원봉사에 나선 까닭에 대해 그는 “아주 작게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연식씨와의 일문일답.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나.

2015년부터 국제 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의 환경감시선에서 일하고 있다. 환경감시선에서는 전 세계 곳곳에서 모인 활동가들과 함께 생활하며 국제 이슈를 가까이 접한다. 지난해 4월 북극에서 이탈리아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odovico einaudi)의 연주를 촬영하기도 했다. 녹아내리는 빙하의 슬픔을 전 세계에 알린 캠페인이었다. 지난달에는 브라질 아마존 하구에 잠수함을 내려 최초로 이 지역 산호 지대를 탐사했다. 덕분에 근방에서 석유를 채굴하려는 석유기업을 제지할 수 있었다.

 

지중해에서 사망하는 난민들이 아직도 많은가.

지중해는 죽음의 바다다. 지난해만 해도 시리아와 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등에서 난민 30만여 명이 지중해를 건넜고 이 중 5천여 명이 익사하거나 실종됐다. 원래 유럽 각국에서 지중해 난민을 구조하는 마레 노스트럼(Operation Mare Nostrum) 활동이 있었지만, 2014년 10월 유럽연합이 작업을 중단했다. 한 해에 15만 명이나 구조하던 활동이 중단된 것이다. 2015년도에는 모로코 접경지역에 난민을 막는 5미터 높이 장벽이 섰고 각국 정부는 구조 작전을 접고 해안선을 순찰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이로 인해 사망하는 난민 수가 늘고 있지만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 지금 저 바다에서 일어나고 있다.

 

지중해 난민 구조에 나선 계기는.

지난 2월경 독일 출신 선원이 난민 구조선에서 일할 항해사를 찾는다고 했다. 배를 몰 사람은 많지만 무임금으로 일할 사람은 드물다. 동료 선원은 그런 뜻으로 물어왔고 아기 난민을 구한 사진을 보여줬다. 물에 흠뻑 젖어 발가벗은 아기를 구조대원이 품에 안고 급히 모선으로 복귀하는 사진이었다. 오래 따지지 않고 Sea-Watch에 자원봉사를 신청했다.

 

Sea-Watch는 어떤 단체인가.

Sea-Watch는 독일 시민들이 만든 민간 난민구조단체다. 중단된 마레 노스트럼 작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지난 2014년 설립됐다. 독일 시민들은 십시일반으로 작은 배를 구입하고 자원봉사자를 모았다. Sea-Watch는 설립 첫 해 6개월간 2천여 명, 이듬해인 2015년에는 5천여 명, 2016년에는 2만여 명의 난민을 구조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후 후원이 늘면서 지난해 좀 더 큰 Sea-watch 2호를 구입해 난민구조에 공을 들이고 있다.

 

넓은 바다에서 난민구조가 쉽지 않을 텐데 어떻게 구조하나.

난민 수색구조는 낮밤 없는 격렬한 노동이다. 때로는 물에 뜬 시신을 건지는 섬뜩한 일도 피할 수 없다. 자원봉사자들은 숨을 참고 온 힘 쏟아 100미터를 달리는 것처럼 전력 질주해야 한다. 한번 구조 작업에 나가는 기한을 보름으로 제한한 때문이다.

지중해 휴양지 몰타(Malta)섬은 민간 난민구조대의 전진기지인데, 수많은 구조단체들의 모항이다. 로마 본부의 조정 아래 ‘국경없는 의사회’나 MOAS, SOS지중해 등 민간단체들이 구역을 나눠 쓴다. 구조작업은 몰타를 중심으로 북서쪽 시칠리아(Sicily)섬과 북동쪽 크레타(Crete)섬, 남쪽으로는 리비아 연안을 아우르는 지중해 중부 전역을 수색하며 이뤄진다. 수온이 올라 난민이 증가하는 8개월간 열여섯 팀이 순서대로 구조작업을 한다.

 

난민이 탄 배를 식별하는데 문제는 없나. 특히 밤에는 육안으로 찾기 어려울텐데.

난민 보트는 레이더에 안 잡힌다. 쉬지 않고 망원경으로 수평선을 살펴야 한다. 조난 보트를 발견하면 즉시 달려가 먼저 건강상태를 점검한다. 구명조끼와 생수를 제공하고, 스피드보트를 띄워 실종자를 수색한다. 동시에 로마 본부에 보트 위치를 알려 큰 구조선을 호출하는 사이 의료팀이 노약자를 돌본다. 난민들을 구조한 뒤에는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유럽 땅에 내려준다. 구조된 사람들은 국제법에 따라 난민 자격을 얻어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일반적인 자원봉사하고 차원이 다른 것 같다. 가족들의 반대는 없었나.

난민구조선에 오르겠다고 하자 한결같이 응원해줬다. 부모님은 배에서 일하는 걸 싫어하셨는데, 이번에는 다른 말씀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제가 하는 스토리펀딩에도 말없이 후원해주셔서 가장 힘이 됐다. 그 외 친구, 그린피스 동료, 지인들 모두 이번 여정을 꾸리는데 적극 도움을 줬다. 덕분에 하루 만에 후원목표액의 60%인 300만원이 모였고, 일주일새 90%를 채웠다. 무척 감사한 부분이다.

 

스토리 펀딩으로 후원금 모집을 하고 있다. 후원금은 어떻게 쓰이나.

후원금은 모두 난민구조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데 사용된다. 난민구조에 필요한 건 선박, 인력, 소모품이다. 소모품은 구명조끼와 담요, 생수, 구급약 등을 말한다. 선박과 인력은 이미 준비되었지만 소모품은 끝이 없다. 배와 사람이 있는데도 소모품이 모자라 활동을 접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다음카카오 스토리펀딩을 기획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지중해 난민을 직접 구조하거나 원조한 사례가 없다. 내가 중간에서 노력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지중해에 직접 도움을 주는 다리를 이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난민구조선에서 맡은 임무는 정확히 뭔가.

Sea-Watch 제 4차(4월12일~5월4일)와 6차(5월 30일~6월 17일) 수색구조팀의 일등항해사로 배정됐다. 일등항해사는 선박의 현장반장쯤 된다. 선상 구조는 학교와 비슷한데, 선장은 관리자인 교장이고 1등 항해사는 교감쯤 되겠다. 항해와 선박 내부운영의 실무를 맡는다.

 

신문기자에서 부정기 화물선 항해사, 그린피스 항해사, 그리고 난민구조대원까지 남다른 삶을 선택해왔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단순하다. 표현이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조바심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짧다는 조바심, 특히 젊은 혈기로 현장에서 뛸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물론 예순이 넘어서도 일할 수 있겠지만 그 때는 그때의 일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하고싶은 일에 대한 조바심 때문에 일단 덤비고부터본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지만 다수가 행동한다면 세상은 더 나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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