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뜬 것은 드라마 ‘모래시계’ 덕분일까 정의감 때문일까. 어쩌면 둘 다일 수 있다. 20여 년 전 그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그의 워딩은 “부장님 한번만 봐 주십시오”였다.

이정규 편집인

그가 그렇게 사정한 이유는 분명했다. 사건 수임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모래시계검사로 이름을 날리다가 변호사 개업을 한 직후였다. 필자는 그때 사건 데스크를 맡고 있었는데 귀를 의심케 하는 첩보를 입수했다. 모래시계 검사의 수임에 관한 첩보였다. 즉시 취재에 들어갔고 첩보가 팩트임을 확인했다. 기사 작성에 들어가기 전 본인에게 수임 여부를 물었다. 반론권 보장 차원이었다. 그는 가타부타 변명을 하지 않았다. “부장님 한번 봐주십시오” 그 한마디로 수임 사실을 인정했다.

기사를 쓸 것인지 덮을 것인지 고민했다. 고민한 이유는 딱 하나. 변호사로서 직업 윤리에 관한 것이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처럼 그런 뜻에서 사건을 수임을 했는지 아니면 돈을 목적으로 수임을 했는지, 심증은 갔지만 판단이 쉽지 않았던 탓이다.

대체 무슨 사건이기에 그러냐고? 지금 그 일을 공개하지는 않겠다. 단, 사건의 성격상 모래시계 검사가 맡기에는 부적절했다는 정도는 밝혀둔다.

20여년이 지난 그 때 일을 새삼 끄집어낸 이유는 순전히 ‘세탁기’ 때문이다. 그는 대선후보 토론에서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돌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 말을 듣고 자가당착을 느꼈을 국민들이 꽤 있을 듯하다.

스스로 빨래의 대상이 세탁기 운운 하다니. 자발적으로 세탁기 안에 들어가도 시원찮을 판에……. 그를 기소한 검사와 유죄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1심 재판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기 전에 그가 해야 할 일이 있다. 자기 성찰이다. 왜 이렇게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지, 그 원인에 대해 깊이 성찰해야 한다. 지금 지지율대로 선거를 치르면 본인은 물론이고 당의 파산도 불문가지다.

지지율을 올리려면 모래시계 검사 시절의 정신을 회복해야 한다. 그때 국민들이 모래시계 검사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붙여준 건 정의로움과 강직함 때문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그에게서 그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그의 지지율은 그 반증인 것이다. 그 간단한 이치를 잊고 오로지 보수 프레임 하나로 돌파하려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경제 현안에 대한 인식도 준비가 안 된 후보라는 인상을 줬다. 그는 대선 토론에서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이유를 “강성 귀족노조와 국회의 반기업 정서 탓”이라고 주장했다. 얼핏 들으면 그럴 듯한 주장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업인들이 더 잘 안다. 기업들이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과거엔 저임금이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현지 내수시장 확대가 목적이다. 한마디로 견강부회(牽强附會)다.

이정규<본지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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