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대신 협동, 주입식 대신 창의력 길러요”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오디세이 학교. <사진=월요신문>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획일적인 입시교육, 극한 경쟁, 사교육 과열 등 기존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은 변함없이 제기돼왔다. 그렇다면 참교육의 길은 어디에 있을까. 우리 사회에 대안학교가 늘고 있는 것은 기존 교육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함께 참교육을 향한 열망이 뜨겁기 때문이다. 첫 대안학교가 생긴지 20년, 학교는 본연의 역할을 해내고 있을까. 본지는 <교육의 길을 묻다/대안학교 탐방> 첫 번째 순서로 서울 종로에 위치한 오디세이 학교를 찾았다.

 

 

스스로 생각하는 힘 길러

오디세이 학교는 엄밀히 따지면 ‘대안학교’는 아니다. 기존의 대안학교가 공교육을 완전히 대체했다면, 오디세이 학교는 고등학교 1년간만 대안학교와 비슷한 교육과정을 밟는다. 지난 2015년 서울시 교육청은 3개의 민간기관과 협력해 대안교육과정인 ‘고교자유학년제’를 만들었다. 오디세이 학교는 교육청과 4개의 민간기관이 협력해 고1 학력이 인정되는 고교자유학년제 과정을 운영하는 곳이다.

학생들은 오디세이 학교 수료 후 본래 학교의 2학년생으로 돌아갈 수 있다. 또 본인이 원할 경우 1학년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디세이 학교는 1년 동안 학생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와 방향을 찾는데 주력한다. 때문에 지식 위주의 교과과정보다 글쓰기, 합창, 목공, 프로젝트 수업 등 창의력과 실생활에 초점을 맞춰 커리큘럼이 짜여 있다.

오디세이 학교(꿈틀학교)의 시간표. 연극, 비보이, 랩 등 문화예술계 수업이 다양하다. <사진=월요신문>

17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오디세이 학교 운영지원센터를 찾았다. 건물 3층에 위치한 센터로 올라가자 학생들과 마주쳤다. 학생들은 복장부터 기존 학교 학생과 달랐다. 교복 대신 옷차림이 자유분방했다.

수업 직전의 분위기도 일반 학교와 달랐다. 시간이 되면 울리는 ‘학교종’ 소리도 없었고, 선생님이 교실로 들어오기 직전의 묘한 긴장감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학생들은 편안하게 앉아 있었고, 다른 곳으로 돌아다니는 학생들은 없었다. 말쑥하게 키가 큰 남학생은 눈을 마주치자 깊게 허리를 숙였다. 무질서 속 질서감이 느껴졌다.

수업 직전의 오디세이 학교 학생들. <사진=월요신문>

정병오 오디세이 학교 운영지원센터 교사는 “중3과 고1 사이는 진로선택의 적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을 무조건 입시 경쟁으로 몰아넣는 것은 옳지 않다. 대부분 ‘일단 공부만 해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공부는 왜 하는지 막막해서 공부를 못 한다”고 말했다. 정 교사는 “이런 친구들을 위한 길을 열어준 것이 고교자유학년제다. 중1도 자유학년제가 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보다는 체험학습 위주다. 고교자유학년제는 심화된 진로탐색의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설명했다.

정 교사는 “학교는 아이들이 자기를 발견하고 세상을 탐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에 맞는 자극을 주면 아이들은 더 마음을 열고 스스로 공부하게 된다”며 “대안교육이 갖고 있는 좋은 컨텐츠들이 많다. 현 입시제도의 틀을 깨트리는 것도 좋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오디세이 학교는 아이들이 기존의 공교육 제도 안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갈 수 있도록 키워낸다”고 말했다.

오디세이 학교는 민들레학교, 꿈틀학교, 하자센터 등 3개의 민간 대안교육기관과 공교육 교사들로 구성된 '혁신파크'까지 총 4개의 기관과 협력하고 있다. 각 기관은 종로구 숭인동·화동, 영등포구, 은평구 등 서울 4개 지역에 흩어져 있어 오디세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교육과정에 따라 등교한다.

아이들은 기본적으로 기초 교과목과 함께 선택 수업을 한가지 들을 수 있다. 글쓰기, 인문학, 자치회, 여행 등 ‘생각’을 기르는 수업들이 공통교육에 포함되고 일반적인 교과는 수학, 영어, 한국사를 배운다. 선택교육과정은 각 민간기관의 특색에 맞게 공방작업, 인턴십, 국제협력, 문화예술, 문학·철학 등 6개 분야로 나뉜다.

지식 위주의 학습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지 않을까. 이런 우려에 대해 정 교사는 ‘스스로 공부하는 힘’을 강조했다. 그는 “학교를 거쳐 간 아이들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성적을 재거나 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고민이 뭔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복교한 아이들은 대부분 ‘다른 친구들은 막연하게 불안해하며 쫒아가지만 적어도 왜 공부하는지는 안다’고 말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없지는 않지만 ‘대학을 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서’ 공부한다. 아이들은 처음에 1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힘들어했지만 대부분 조금씩 성적이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송재형 서울시의원은 “대안학교 학생의 자퇴율이 28%”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정 교사는“1기 졸업생 40명 중 복교하지 않은 학생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퇴를 한 아이들은 ‘내 정도 실력이면 꼭 3년 고등학교 과정을 밟지 않아도 대학을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가진 아이들이었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처음 오디세이 학교에 온 아이들 중에 학교를 그만둘까 말까 고민한 친구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과정 수료 후 자신감을 갖고 공부를 시작했다. 예를 들면 한 친구는 게임중독이었는데 오디세이 과정을 거치면서 랩에 관심을 가졌다. 랩을 잘 하려면 국어를 잘해야 하고, 사회 현상도 잘 알아야한다는 필요성을 느꼈다. 그 뒤 자발적으로 국어와 사회 과목을 열심히 공부했다. 이렇게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면 자연스럽게 공부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정병오 오디세이 학교 운영지원센터 교사. <사진=월요신문>

정 교사는 “2기 학생들의 경우 82명 중 10명은 1학년으로 복교하고, 나머지 69명은 2학년으로 돌아갔다”며 “자퇴한 3명 학생은 '매니아' 성향이 강한 친구들이다. 한 친구는 별명이 ‘철도’였다. 자동차 비행기 철도 선박 등 교통 분야에 관한 한 전문가 수준이었다. 이런 아이들은 기존 학교에서는 자신들의 관심사를 충족할 수 없어 자퇴를 선택한다. (기존 학교에서) 그런 아이들을 단순히 숫자만 가지고 평가하는 바람에 타격을 많이 입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교육청의 ‘고교자유학년제’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시도교육청도 많아지고 있다. 정 교사는 “현재 자유학년제를 제대로 도입하고 있는 곳은 서울시가 유일하다. 경남교육청에서는 지난달 TF팀이 방문했고 전북, 광주 등 교육청에서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조만간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부가 행복한 아이들

오디세이 학교 3기 학생들. 학생들은 학교 복도 곳곳에 세월호 3주년을 맞이해 추모하는 작품을 전시해놨다. <사진=월요신문>

학생들 반응은 어떨까. 세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디세이 학교 학생들은 9시 30분에 등교해 30분간 ‘아침열기’ 시간을 갖는다. 단순한 ‘조례’가 아닌,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어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수업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한다. 이후 2시간 짜리 수업을 2개 듣는다. 5시 30분이면 수업은 끝.

2시간 수업이 지루하지 않냐는 질문에 김아연(17·해성여고)양은 “2시간인데도 전혀 졸리지 않다. 일반 학교에서는 수업시간에 자는 경우가 많지만 여기서는 수업 참여도가 높고 모두 집중해서 듣는다”고 말했다.

김양은 스스로 오디세이 학교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지만 끈질긴 설득 끝에 허락을 받았다. 김양은 “미술 쪽에 관심이 많은데 기존 학교에서는 많은 경험과 체험이 부족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검정고시를 생각했는데 너무 극단적이라서 고민하던 차에 오디세이 학교를 발견했다. 이 학교에서 나를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기존 학교 다니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하루에 한 번씩은 운다고 한다. 밤 11시에 야자 끝나고 아침 일찍 학교 가는 생활의 반복이다. 공부도 교과 위주다. 그런 공부가 생각하게 하고 말하게 해주는지 잘 모르겠다. 오디세이 학교는 생각을 깊이 있게 표현하게 해준다”며 만족해했다.

임준한(17·휘봉고)군은 아연양과 중학교 동창이다. 음악에 관심이 있던 차에 김아연양이 오디세이 학교를 소개해줘서 ‘친구 따라 강남 간’ 케이스다. 임군은 “처음에는 고민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 마치고 대학 가고, 제가 생각한 계획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보다 고등학교가 빡빡하고 기존 학교는 예체능 쪽으로 기회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임군은 “오디세이 학교는 문화예술 쪽 프로그램들이 많다. 지금 선택한 수업들도 전부 음악 쪽으로 맞췄다. 기본적으로 창작 활동을 할 시간을 보장해줘서 좋다”고 말했다.

이영인(18·배명고)군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쭉 홈스쿨을 하다가 부모님이 오디세이 학교를 제안해 입학했다. 그는 “원래는 분당 쪽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에 가려고 했다가 서류에서 탈락했다. 그래서 일반고로 진학할까 고민하다가 부모님께서 먼저 오디세이 학교에 갔다가 일반고를 진학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해주셨다”고 말했다. 영인 학생은 “오디세이 학교는 기존 학교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자유롭게 배울 수 있어서 좋다. 특히 팀 프로젝트가 재밌다. 세월호 관련한 음악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저희가 선택하고 기획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행복해보였다. 김아연양은 “중학교 때는 공부를 해도 잘 안되고, 공부를 못하면 앞이 캄캄했다. 무기력해졌다. 그런데 오디세이 학교에서는 뭘 하겠다고 하면 ‘그래 해봐’라고 하니까 자신감이 붙었다”고 말했다. 물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복교 이후 교과수업이나 진도를 따라갈 수 있을지 등 걱정도 많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오디세우스의 여정이 담긴 서사시 ‘오디세이’는 고난과 역경의 연속이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노랫말이 된다. 오디세이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도 노래하듯 공부한다. 그 곳에 왕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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