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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나무이야기] 굶주림의 자취를 담은 이팝나무
  •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 승인 2017.05.02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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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들어 피워올린 이팝나무의 꽃은 영락없이 하얀 밥사발 위에 고봉으로 담은 쌀밥을 닮았다. <사진=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하늘이 주는 만큼만 먹으며 살아야 했던 그 시절, 보릿고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었다. 그때도 지금처럼 봄날, 모내기 철이면 어김없이 마을 앞논에는 순백의 꽃을 피우는 나무가 있었다. 배고픔에 지친 농부에게 온 나뭇가지에 무더기로 피어난 하얀 꽃차례는 간절히 소망했던 쌀밥으로 보였다.

한해 농사의 시작이랄 수 있는 모내기에 나서는 농부들은 오로지 농사가 잘 되어 쌀밥을 풍성하게 먹을 수 있기를 바랐다. 굶어 죽는 한스러운 죽음만큼은 없어야 했다. 꽃을 바라보며 들녘에 나서는 농부들은 사발 위로 넘칠 만큼 퍼담은 고봉밥처럼 환하게 꽃이 피면 “올 농사는 필경 풍년이 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무의 이름을 아예 ‘쌀밥나무’ 혹은 ‘이팝나무’라 불렀다.

드디어 도시의 가로수로 서 있는 이팝나무에서 꽃잎이 터져나왔다. 남녘에서는 흔히 볼 수 있던 우리 토종나무이지만, 중부지방에서는 보기 힘들던 나무다. 차츰 따뜻해지는 기후 변화 탓에 최근 들어 중부지방에서도 앞다퉈 심어 키우는 나무가 됐다.

높지거니 자라면서 온 가지에 화려한 꽃을 피우는 나무는 많지 않다. 이팝나무는 그러나 느티나무 못지 않게 크게 자라면서도 온 가지에 하얀 꽃을 한가득 피운다. 이팝나무가 벚나무보다 더 좋은 건, 꽃이 피어있는 개화 기간이 길다는 데에도 있다. 벚나무가 고작해야 이레에서 열흘 사이에 서둘러 낙화하는 것과 달리 이팝나무는 특별한 변수만 없다면 적어도 보름에서 스무 날 정도까지 꽃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은은한 향기까지 품었다.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은 어린 생명의 넋을 위로하는 의미로 살아남은 진안 마령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의 이팝나무들. <사진=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오래 된 이팝나무 일곱 그루가 줄지어 서 있는 곳이 있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평지리의 마령초등학교 운동장 가장자리다. 일곱 그루의 이팝나무는 우리나라에 살아있는 이팝나무로는 가장 오래 된 이팝나무 가운데 하나다. 대개의 오래 된 나무가 그렇지만 마령초등학교의 이팝나무 역시 옛 사람들이 모질게 살아온 삶의 자취를 담고 있다.

나무가 처음 심어진 사백 년쯤 전의 이야기다. 흉년은 나랏님도 어찌할 도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보릿고개를 맞이한 사람들은 들에서 산에서 나뭇가지를 벗겨 묽은 죽을 끓여 먹으며 주린 배를 달랬다. 흙이라도 파먹으며 허기를 달래는 건 하릴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건 소화 능력을 갖춘 어른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오로지 어미의 젖을 매달릴 힘밖에 없던 아기들에게는 나무껍질도 흙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기들은 무시로 굶주림을 울음으로 토해냈다. 소나무 껍질로 지은 송기죽 한 숟가락으로 겨우 끼니를 때운 어미는 아기의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젖가슴을 풀어헤쳤다. 아기는 어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지만, 어미의 빈 젖에서는 묽은 젖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아기는 하염없이 어미의 젖을 빨았다. 그리고 마침내 어미의 품에 안긴 채 아기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숨을 거두었다.

아비는 아기의 주검을 들쳐업고 뒷동산에 올라 양지바른 녘에 고이 묻었다. 작지만 봉분도 했다. 아비는 굶어 죽은 아기를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었다. 봄이면 하얀 쌀밥처럼 하얀 꽃차례를 무더기로 피워내는 이팝나무! 아비는 아이의 봉분을 향해 “살아서 먹지 못한 쌀밥, 죽어 넋이 되어서 눈으로라도 실컷 먹으라”며 손을 모았다.

가난했던 시절의 자취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사백 년 세월을 살아온 진안 평지리 이팝나무. <사진=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마을에 이팝나무 동산이 이뤄진 건 그게 시작이었다. 흉년이면 굶어 죽는 어린 생명이 하나 둘 이어졌고, 사람들은 아기무덤가에 이팝나무를 심었다. 굶어 죽은 넋이 눈으로라도 쌀밥 한번 실컷 먹으라는 소망의 표시였다. 세월 지나 아기무덤을 갈아엎은 마을 사람들은 그 자리에 다시 이 땅의 주인 되어야 할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 마령초등학교를 세웠다. 학교 운동장 가장자리에 서 있는 일곱 그루의 이팝나무는 그때 그 아기무덤가에 서 있던 나무들이다.

지금 도시에서 환하게 피어나는 이팝나무 꽃차례! 그 깊은 속내에는 모질게 살다 한스럽게 죽어간 생명의 자취가 담겨있다.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자리잡고, 수굿이 사람살이를 지켜준 세상의 모든 나무가 그렇다. 우리 곁의 나무를 허투루 바라볼 수 없는 이유다.

화려하게 꽃을 피우면서도 크게 자라는 이팝나무의 뜸직한 줄기. <사진=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고규홍 나무칼럼니스트  www.solsu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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