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김성준 SBS NEWS 트위터>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보도로 SBS가 내홍을 겪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더라도 해당 보도는 '기사작성과 편집 과정의 기본 원칙을 소홀히 한데서 나온 보도참사’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보도 이후 대선캠프 간에 공방전이 가열되는 등 논란이 확산되자 SBS는 보도 몇 시간 만에 “기사작성과 편집 과정에서 게이트키핑이 미흡했다”면서 사과 및 정정 보도를 내보냈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일부 언론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대형 언론사가 대선을 코앞에 두고 파장이 큰 뉴스를 보도했다가 몇 시간 만에 사과 및 정정 보도를 한 것은 단순한 게이트키핑 실수로 넘기기엔 너무나 ‘치명적’이기 때문이다.

지난 2일 SBS 8시뉴스는 ‘차기 정권과 거래? 인양 지연 의혹 조사’라는 단독 기사를 통해 “세월호 선체조사위에 대한 특별법 시행령이 오늘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면서 “이에 따라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에 대한 조사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라고 보도했다.

문제가 된 것은 뒤이은 익명의 해수부 공무원과의 인터뷰다. SBS는 “이런 가운데 해수부가 뒤늦게 세월호를 인양한 게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 것이란 취지의 해수부 공무원 발언이 나와 관련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면서 관련 발언을 소개했다.

당시 익명의 해수부 공무원은 SBS 취재진에게 “솔직히 말해서 이거(세월호 인양)는 문재인 후보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라면서 “정권이 창출되기 전에 문재인 후보한테 갖다 바치면서 문재인 후보가 약속했던 해수부 제2차관, 문재인 후보가 잠깐 약속했거든요. 비공식적으로나, 공식적으로나. 제2차관 만들어주고, 수산쪽. 그 다음에 해경도 (해수부에) 집어넣고. 이런 게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SBS 측은 “해수부가 부처의 자리와 기구를 늘리기 위한 거래를 문 후보측에 시도했음을 암시하는 발언”이라고 분석했다.

SBS 보도 직후 더불어민주당은 ‘공무원의 공작적 선거개입 시도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공보담당은 “세월호 인양이 문 후보 측과 관련된 것처럼 보도한 SBS의 무책임한 태도에 강력히 항의하며 해수부 일부 공무원의 공작적 선거 개입 시도를 강력 규탄한다”며 “해당 보도에 등장한 해수부 공무원의 신분을 밝혀 법적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해수부 역시 해명자료를 통해 “기술적 문제로 인양이 늦춰지긴 했지만 차기 정권과의 거래 등이 있었다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인양과 관련해서는 어떠한 정치적 고려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같은 해명에도 불구하고 국민의당과 자유한국당이 문 후보에 대한 총공세에 나서면서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SBS 보도 직후 국민의당은 “세월호의 슬픔을 철저하게 자기 선거에 이용하는 문 후보에게 국민을 위한 대통령을 기대할 수 없다”며 “문 후보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으면 지금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공세를 폈다. 자유한국당 역시 “문 후보가 세월호 유가족 앞에서 악어의 눈물을 보이면서 뒤로는 인양시기를 두고 정치적 거래를 했다. 이는 양심 가진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패악으로 경악할 만한 일이다. 국정조사와 검찰 조사 등 가능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선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탄핵 직후 팽목항을 찾아가서 ‘얘들아 고맙다’고 말한 뜻을 국민이 이제야 알았다고 본다”고 비꼬았다.

하지만 SBS 보도는 몇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세월호 인양이 지연된 것을 ‘차기 권력의 눈치’를 본 것으로 프레이밍 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는 ‘세월호 인양에 3년이나 걸린 것은 그동안 해수부가 박근혜 정권의 눈치를 봤기 때문’이라는 일반 국민들의 상황인식과 상반된다. 게다가 지난해 12월 청문회 과정에서 공개된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인양을 지연시켰다는 합리적 의심을 가능케 하는 자료가 드러나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6개월여 뒤인 2014년 10월 27일 김 전 수석의 노트에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을 의미하는 ‘長(장)’이라는 글자 옆에 ‘세월호 인양 – 시신인양 X, 정부 책임, 부담’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SBS 보도의 근거가 부실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SBS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유력 대선 주자를 겨냥한 ‘충격적’인 보도를 내놓기 전 충분한 사실관계 검증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SBS가 근거로 제시한 것은 익명의 해수부 공무원 1명의 발언이 유일하다. 그밖에는 어떠한 객관적인 정황도 제시하지 못했고, 후속 보도도 없었다.

SBS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SBS 노조는 3일 논평을 통해 “문재인 대선후보와 관련된 세월호 기사를 잘못 보도한 것은 ‘취재와 기사 작성의 원칙이 무너진 데서 비롯된 보도참사”라면서 “SBS 전체의 신뢰를 무너뜨린 보도본부 책임자들에게 물을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SBS 노조는 특히 취재 교정과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점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노조는 “2일 보도된 SBS 기사는 기존과 다른 방향의 의혹을 새롭게 제시했다”면서 “그렇다면 이를 확실한 근거를 통해 뒷받침해야 한다. 복수의 취재원을 통해 재차 확인하고 비판의 대상 입장도 확인해 기사에 담았어야 했다. 이건 취재의 기본 원칙”이라고 지적했다.

SBS는 논란이 커지자 해당 기사를 삭제하고 3일 오전 3시35분경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조사 관련 보도 해명’이라는 제목의 해명 자료를 냈다. SBS는 “일부 내용에 오해가 있어 해명한다. 해수부가 문 후보의 눈치를 보고 인양을 일부러 늦췄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기사 내용과 정반대의 잘못된 주장”이라면서 “문 후보 측과 해수부 사이에 모종의 거래나 약속이 있었다는 의혹은 취재한 바도 없고 보도 내용에 포함되지 않았다. 기사 본래 취지와 다르게 오해가 빚어지게 된 점 사과한다”고 밝혔다.

같은 날 저녁 방송된 ‘8시뉴스’에서는 김성준 SBS 보도본부장이 직접 “세월호 가족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SBS 뉴스는 세월호 인양 관련 의혹 보도를 통해 해양수산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까지 세월호 인양에 미온적이었다는 의혹과, 탄핵 이후 정권 교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적극적으로 태도를 바꿨다는 의혹에 대해 방송할 계획이었다”며 “그러나 기사작성과 편집 과정에서 게이트키핑이 미흡해 발제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인식될 수 있는 뉴스가 방송됐다”고 설명했다. 

김 본부장은 이어 “다만 기사를 작성한 기자나 검토한 데스크를 비롯해 SBS의 어떤 관계자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거나 특정 후보를 폄훼하려는 의도는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 드린다”며 “또 오늘 새벽 해당 기사를 SBS 뉴스 홈페이지와 SNS 계정에서 삭제한 것은 사실과 다른 의혹과 파문의 확산을 막기 위해 보도책임자인 제가 직접 내린 결정이었다. 이번 사안과 관련한 모든 조치는 외부의 어떤 간섭도 없이 제 책임 아래 진행됐다는 점을 확인드린다”고 해명했다. 김 본부장은 그러면서 “이와 관련해 정치권은 이번 보도 내용이나 해명 과정을 정략적으로 이용하지 말아 주실 것을 요청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해수부는 4일 “SBS와 통화한 공무원은 목포 세월호 현장수습본부에 파견돼 언론지원 업무를 맡고 있던 3년 차 7급 공무원으로 확인됐다”면서 “해당 직원이 SBS 보도에 인용된 발언을 자신이 했다고 자진신고 함에 따라 즉시 대기발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해수부에 따르면 해당 직원은 지난달 16일부터 세월호 현장수습본부 언론지원반에서 근무를 하던 도중 SBS 기자에게 인터넷 뉴스 등에 떠도는 이야기를 언급했고, SBS 기자는 사전 동의 없이 통화내용을 녹음·편집해서 뉴스로 내보냈다. 하지만 SBS와 통화한 해수부 공무원은 세월호 인양일정이나 정부조직 개편 등에 대해 책임 있는 답변을 할 위치가 전혀 아닐 뿐만 아니라 해당 직원 자신도 뉴스를 보고 당황했다는 게 해수부의 입장이다.

현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SBS가 해당 기사를 보도한 경위 등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현행 공직선거법 96조는 ‘특정 후보자를 당선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선거에 관하여 허위의 사실을 보도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 또는 논평을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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