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리아에서, 사람들은 뭍으로 나온 물고기마냥 헐떡거리며 죽어갔다. 온 몸이 뒤틀린 채, 눈을 부릅뜨고, 아주 서서히…. 최소 86명이 사망했고, 그중 28명은 아이들이었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일부는 신속히 이웃한 터키의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며칠 뒤, 터키의 보건부 장관 레셉 아크다그(Recep Akdağ)는 희생자들의 소변과 피에서 사린가스가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이 참혹한 공습의 주범은 바로 독재자 바샤르 알 아사드(Bashar al-Assad). 자국민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점도 충격적이지만, 더욱 믿기 힘든 사실은 그가 한때 의사를 꿈꾸던 의학도였다는 것이다. 그는 스물세 살이 되던 해 다마스쿠스 의과대학을 졸업했고, 그 후 몇 년간 군의관으로 활동했다.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안과 전문가 과정을 밟으며 병원에서 실습을 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형이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급작스럽게 귀국했고, 2000년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Hafez al-Assad)가 세상을 떠나자 그 뒤를 이어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십 수 년이 지난 올해, 자국민을 무차별적으로 살상하는 만행을 저지르며 전 세계인들을 경악에 빠뜨린 것이다.

 

시리아 화학무기 공습으로 쌍둥이 아이를 잃은 압둘 하미드 유세프(Abdul Hamid Youssef). 그는 이번 화학무기 공습으로 아내를 포함, 20여명의 친지를 잃었다. <사진=Asaad Hanna, 시리아 인권운동가 트위터>

 

몹시 혼란스러웠다. 사람을 살려야 하는 의사가 어쩌다 살인기계가 되어버린 것일까. 과연 제정신으로 이런 일을 벌일 수 있을까? 광기에 사로잡혀 변태적 쾌락을 느끼는 건 아닐까? 차라리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이코패스라고. 권력이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고. 그동안 의사는 숭고한 직업이라고 믿었다. 의사에게는 단지 의술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샤르 알 아사드는 의사로서뿐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마저 저버렸다. 어쩌다 그런 반인륜적 인물로 끝맺음하고 만 것일까. 묻고 또 물어도 쉽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나와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사람이 있었다. 바로 프랑스의 의사 미셀 시메스. 나치 시절 두 할아버지를 강제수용소에서 잃은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인 직업과 연을 맺어 놓고, 어떻게 사람들을 더 이상 인간으로 여기지 않고 죽이고자 할 수 있을까? 너무 단순하고 순진한 질문임을 안다. 나는 표현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알고 싶다.”

이야기는 1946년 뉘른베르크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나치 전범재판이 얼추 마무리되던 무렵. 이번에는 생체실험에 가담한 의사들이 재판정에 불려왔다. 피고인석에 앉은 20명의 의사들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펼치며 자신의 행위를 변호했다. 첫째, 강제수용소의 수감자들은 환자가 아니라 범죄자일 뿐이므로 히포크라테스 선서에는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다. 둘째, 더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셋째, 자유로운 민간인이 아닌 복종해야 하는 군인 신분이었기 때문에 개인의 소신을 지킬 수 없었다. 넷째, 채식주의자 히틀러가 동물학대를 금지했기 때문에 법을 지키려면 생체실험이 불가피했다. 과연 진정 그러했을까?

아니다. 그들이 행한 실험은 의학의 진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죄다 끔찍하고 때로는 엽기적이기 그지없었다. 저체온증 연구를 위해 수감자들을 얼음 수조 안에서 죽게 했고,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일부러 티푸스와 콜레라를 접종하기도 했다. 근육 실험을 하겠다고 여성들의 무릎을 부러뜨렸고, 탈수증세를 연구한답시고 실험자들에게 바닷물만 먹였다. 뿐만 아니라 ‘하등 인류’를 박물관에 전시하기 위해 유대인들의 두개골과 해골을 수집한 사람도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들이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독일 유수의 대학에서 공부한 실력가일뿐 아니라,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진 나름 존경할 만한 인생을 살아왔다. 다시 말해 인생의 낙오자도 정신병자도 아니었다는 이야기. 우리와 마찬가지로 지극히 평범했던 사람들이 이런 잔인한 일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저질렀던 것이다.

쉽지 않은 물음이 제기된다. 도대체 의학은 무엇인가? 그리고 과학은 무엇인가? 학문과 정치는 정녕 분리될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면 과학에 발전을 가져왔다는 이유로 그들의 과실을 눈감을 수 있는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끊임없이 ‘아니오’라고 외치지 않는다면 이러한 역사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트럼프 대통령이 고문 합법화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고, 김정은이 정치범수용소 수감자들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실험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화학무기를 “광범위하고도 조직적으로 사용했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 역시 며칠 전 발표되었다. 이런 끔찍한 행위를 어떻게 단죄할 수 있을까? 가만, 나치에 부역한 의사들은 어떤 최후를 맞았지?

“1945년 5월부터 JIOA(미 국방부 합동정보목적국) 멤버들은 폐허가 된 유럽을 누비며 환대의 땅으로 새로운 과학자들을 찾아다녔다. 과거 나치들조차 환대하는 미합중국을 위해 말이다. 이런 간접적인 수단으로 타협하여 미국에 합류한 과학자들의 수는 1,600명에 가깝다고 추정된다.”

상당수의 나치 학자들이 미국으로 망명해 중앙정보국(CIA), 항공우주국(NASA), 혹은 국방부에 취직해 떵떵거리며 살았다는 결론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결국 이러한 비극을 막으려면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안타깝고 원통한 마음으로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임하영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져질지 잘 알지 못하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최근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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