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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착한 이웃⑪ 정택진 수화 통역사>그의 손은 늘 말한다. 농아인의 삶에 귀 기울이라고…
정택진 수어통역사가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는 의미의 수어를 보여주고 있다.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농아인의 귀와 입이 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수어(手語) 통역사 정택진(54)씨의 말이다. 그의 손은 늘 바쁘다. 손으로 노래하고 온갖 희노애락을 표현한다. 농아인들을 위해서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농아인들을 위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

정씨는 항공고등학교를 우등 졸업하고 대한항공 정비사로 일했다. 그런 그가 하던 일을 접고 수어통역사로 나선 것은 보다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서였다. 어버이날인 5월 8일 인천농아인협회 사무실 인근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첫 인상이 선해보였다. 첫 질문을 던졌다.

- 수어 봉사를 언제부터 했나.

1984년 9월, 22살 때 처음 수어를 배웠다. 당시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수어로 율동을 배워보면 좋을 것 같아 시작했다. 수어를 통해 봉사를 하게 된 것은 청각장애인의 고초를 알게 되면서부터다. 청각장애인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을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시비가 붙었을 때 피해를 당했는데도 가해자로 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사 소통이 어려운 때문이다. 그런 현실을 직접 목격한 뒤 청각장애 아동생활시설인 성동원를 찾아가 봉사를 시작했다. 성동원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아내는 청각장애인이었다. 아내의 입과 귀가 되기로 결심했다. 대한항공 정비사 직업을 그만둔 뒤 본격적으로 수어 통역사로 나섰다.

- 주로 어떤 봉사를 하나.

농아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긴급 상황을 돕는다. 응급실이나 교통사고 현장 등 촌각을 다투는 현장이 대부분이다. 최대한 빨리 가야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거나 생명을 구할 수 있다.

한 번은 3중 추돌 교통사고가 난 농아인 부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들의 차에 블랙박스가 없어 상황이 복잡했다. 다행히 현장에 빨리 도착해 수어 통역을 했다. 경찰서, 보험사, 병원에 연락을 취해 잘 마무리했다. 농아인들은 수어 통역사가 없으면 사고를 당해도 합의금을 못 받고. 치료도 못 받는 등 불이익을 받기 쉽다. 때문에 그들이 정당한 권리를 찾게 도와주고 있다.

- 수어 통역을 요청하는 농아인들은 얼마나 되나.

아내가 청각장애인이라서 아내의 친구들로부터 연락이 많은 편이다. 이외에도 그동안 인연을 맺은 농아인들, 그들의 소개를 받은 또 다른 농아인들까지 다양하다. 보통 업무가 끝나거나 주말에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거리가 너무 멀 경우에는 가까운 곳의 수어 통역자를 연결해준다.

- 농아인들을 도우면서 기억에 남는 일은.

지난해 2월 24일부터 국회에서 필리버스터(무제한 연설)를 했을 때 국회방송에 수어 통역이 없었다. 알아보니 국회에서는 무제한 연설에 수어 통역 전례가 없었고 예산도 없어서 수어 통역을 못한다는 입장이었다. 농아인들의 입장에서는 수어 통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26일 밤 11시 20분경 SNS에 글을 올려 전국에 있는 수어 통역 자원봉사자를 20명 모집했다. 이후 자원봉사자 명단이 국회로 넘어갔고, 국회의장의 결단으로 10여일 넘게 릴레이 수어 통역을 했었다. 그때 무리해 입원을 했고, 10년 전 수술한 인공 고관절이 부서져 재수술을 받았다. 그래도 매우 보람 있었다. 또 하나, 비장애인인 70대 아버지와 40대 청각장애 아들이 대화가 안 된다고 해서 통역을 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완고했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손으로 전달했고, 맘 속 깊은 곳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었다. 결국 아버지와 아들은 소통이 되지 않아 오해가 쌓였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서로의 마음을 알고 부둥켜안으면서 울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지난해 2월 필리버스터 당시 농아인들을 위한 수어 통역이 이뤄지는 모습. <사진=정택진 수어 통역사 제공>

- 수어 통역 봉사를 하면서 겪는 어려운 점은.

수어 통역을 가면 비장애인들이 수어 통역사를 청각장애인과 같은 사람(편)으로 오해해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농아인들에 대한 비장애인의 인식 부족도 어려운 부분이다. 수어 통역을 하면서 그 부분까지 설명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 인천농아인협회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인천광역시 수어 통역센터 운영에 관한 조례가 2017년 1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인천농아인협회에서는 법과 조례에 맞춰 큰 틀에서 로드맵을 구상하고 있다.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은 인천 지역에 24시간 수어 통역 서비스를 구축하고, 수어 통역센터를 설립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다. 그중에 하나가 후배 통역사를 키우는 일이다. 이를 위해 30여년 간 현장에서 경험한 통역 노하우를 정리 중이다. 또 노래와 시, 뮤지컬을 수어로 표현하는 ‘수어 갈라쇼’ 발표를 구상 중이다. 장애인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에는 수어 시인이나 수어 싱어가 많이 없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발레, 현대무용, 재즈, 마임 등을 직접 배웠다. 수어 갈라쇼를 통해 수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보여주고 싶다.

- SNS를 통해서도 농아인들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스마트시대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SNS를 활용해 농아인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사건 사고나 사회적 이슈를 수어로 해설한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SNS를 통해 농아인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데 효과가 크다. 지난 1월에는 학교를 중퇴한 농아인들에게 방송통신학교에 진학해 공부해보자는 수어 영상을 올렸다. 이후 전국에서 10여명의 농아인들이 방송통신고등학교(방통고)에 입학했다. 현재 전국 16개 시·도에 42개의 방통고가 있다. 일반 고등학교에서 교육부의 지원을 받고 부설 형식으로 운영되는 형식이다. 그런데 막상 농아인들이 방통고에 입학해보니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 당국에서 농아인들을 위한 학습지원이 안 된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농아인들과 연대해 학교, 교육청, 교욱부에 건의하고 항의하고 글을 올려서 일부 수어통역 자원봉사를 받게 했다. 다만, 아직도 수어 통역 지원이 되지 않는 학교가 있어서 해결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 중이다.

- 수어 봉사자의 입장에서 일반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 실제로 지하철에서 수어를 하고 있으면, 저기 좀 봐라,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일이 많다. 주변에 농아인이 있으면 편견으로 대하지 말고도와 줄 일이 없을까 생각해주면 좋을 것 같다.

 

 

 

김미화 기자  mhkim@n591.ndsof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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