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프랑스의 안철수’ 에마뉘엘 마크롱이 대선에서 승리했습니다. 지긋지긋한 60년 기득권 정당 구조를 깬 ‘변화와 미래’라는 시대정신의 승리입니다. 내일 치러지는 한국의 대선도 변화와 미래를 선택할 것입니다.”

대선 하루 전날인 8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와 박지원 상임중앙선대위원장이 한 발언이다. 의석수 하나 없는 신당을 이끌고 대선에서 승리한 ‘마크롱 바람’이 한국에서도 불기 바라는 기대감이 묻어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당선 소식에 안 후보측이 반색을 한 데는 이유가 있다. 마크롱 대통령과 안 후보가 여러 면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우선 두 사람은 젊은 정치인이라는 점이 닮았다. 39세의 마크롱은 역대 프랑스 대통령 중 가장 젊다. 안 후보도 55세로 국내 대선주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다.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기득권 정치를 거부하고, 신당을 창당해 중도와 통합, 협치와 미래를 강조한 점도 닮았다. 마크롱의 경우 창당한지 1년여 된 새내기 정당 ‘앙 마르슈(En Marche)’를 이끌고 대선에 승리했다. 안 후보 역시 민주당에서 뛰쳐나와 국민의당을 창당하고 그 세를 몰아 대선 주자로 달려왔다. 두 사람은 성공한 젊은 경제인이라는 점, 정치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 등에서도 유사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프랑스 정치에 이변을 일으켰던 ‘마크롱 바람’이 한국에서는 불지 않았다. 9일 발표된 19대 대선 최종 개표 결과 41.08%의 득표율을 기록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역대 대통령 선거 최대 표차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면 한때 양자구도 대선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를 앞서기도 했던 안 후보의 득표율은 21.41%에 그쳤다. 안 후보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24.03%)에게도 밀려 2위 자리마저 내줬다.

프랑스와 한국에서 이틀 간격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비슷한 배경을 가진 두 후보 중 한 사람은 압도적 승리를, 다른 한 사람은 쓰라린 패배를 경험한 것이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차이는 무엇일까.

운·재능·전략·정치환경 뒷받침 한 마크롱

의석 하나도 없는 비주류 신생 정당의 후보였던 마크롱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운, 재능, 치밀한 전략, 정치 환경 등의 요건이 뒷받침 됐다.

우선 거대 좌우 정당인 공화당과 사회당이 자멸한 탓이 컸다. 대선 레이스 초반 지지율 선두를 달리던 제1야당 공화당의 대선 후보 프랑수아 피용은 올해 초 ‘세비 횡령’ 스캔들이 불거지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피용이 후보 사퇴를 거부한 것도 마크롱에게 호재였다. 공화당에서 피용 대신 알랭 쥐페 전 총리가 후보로 나설 경우 마크롱과 마린 르펜을 모두 제치고 승리한다는 여론조사들이 많았다. 집권 사회당 대선 후보로 마뉘엘 발스 전 총리 대신 브누아 아몽 전 교육장관이 선출된 것도 행운이었다. 발스 전 총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졌던 아몽이 후보가 되면서 전통적인 사회당 지지자들의 표가 이탈하는 결과를 낳았다.

양당 후보들이 속한 정치적 스펙트럼 역시 마크롱의 운신의 폭을 넓혀줬다. 피용은 공화당 내에서도 사회적으로는 가톨릭 보수주의에 속하고, 경제적으로는 대처리즘에 근거한 강한 우파 성향의 정치인이다. 반면 2014년 올랑드 정부의 긴축정책과 노동법 개정에 항의하다가 교육장관에서 경질된 아몽은 기본소득 보장제를 공약으로 내거는 등 중도좌파 사회당에서도 왼쪽에 있는 인물이다. 이런 양당의 뚜렷한 좌·우 구도는 기존의 좌·우를 뛰어넘어 새로운 종도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마크롱에게는 호재였다.

거대 양당이 힘을 못 쓰는 가운데 구체제 청산을 지향하는 사조 ‘데가지슴’(degagisme)이 선거의 화두가 된 것도 호재였다. 애초 프랑스 급진좌파 ‘프랑스 앵수미즈’의 장뤼크 멜랑숑 후보가 들고 나온 데가지슴은 결과적으로 멜랑숑 뿐만 아니라 마크롱, 극우 마린 르펜 등 소수정당 후보들에게 유권자들이 주목하게 만들었다.

마크롱이 르펜을 상대로 결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데는 ‘공화국 전선’(Front republicain)이 작용한 영향도 컸다. ‘공화국 전선’이란 극우세력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제반 정치세력이 연대해 대항하는 프랑스 특유의 정치 현상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4년간 나치 지배 경험이 있는 프랑스인들에게 극우는 여전히 위험한 존재다. 그 결과 마크롱은 도시, 농촌과 직군을 가리지 않고 전 지역ㆍ계층에서 르펜에 우위를 점했다. 반면 반(反)이민, 반세계화, 반유럽연합을 내세운 르펜은 국민전선(FN)의 거점인 북부 지역과 난민 문제에 민감한 일부 남부 해안도시에서만 강세를 보였다.

마크롱의 치밀한 전략과 예리한 판단력도 주요했다. 경제장관을 지내며 올랑드 정부에 대한 낮은 지지율을 경험한 마크롱은 지난해 4월 사회당과 공화당의 당파 싸움으로 잊혀진 중산층의 목소리를 듣겠다며 ‘앙 마르슈’를 창당했다. 마크롱은 이후 ‘그랑데 마르슈(Grande Marche, 큰 전진)’ 캠페인을 벌여 지지자들을 결집했다. 특히 ‘마크롱의 정치조직 ‘앙마르슈!’는 2만5,000여명의 유권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여론을 취합한 뒤 공약에 반영했다. 중도를 지향하며 좌우를 넘나드는 실용주의 행보도 부동표를 껴안는 데 한몫했다. 마크롱은 부자증세 등 진보적 가치를 견지하면서도 지속된 경제 위기를 감안해 주 35시간 근로제 완화, 법인세율 인하(33.5%→25%) 등과 같은 보수적 관점을 표방하기도 했다.

지난 3일 르펜과의 양자 TV토론은 승기를 굳히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 비방과 인신공격으로 일관한 르펜을 마크롱은 해박한 지식과 날카로운 말솜씨로 압도했다. 르몽드는 이날 토론에 대해 “극우 세력을 상대로 정상적으로 토론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중상모략과 협박에 기대온 르펜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고 평했다.

안철수 실패 요인은?

반면 마크롱에 비견되며 대선 승리를 기대했던 안 후보가 패한 요인은 무엇일까.

우선 당초 국민의당이 그렸던 ‘문-안’ 구도가 무산된 점을 들 수 있다. 각 당 경선이 끝난 뒤 안 후보 측은 민주당 경선 당시 안희정 후보에게 갔던 중도 진영의 표가 안 후보에게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자유한국당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은 만큼 보수층의 지지도 안 후보에게 모일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보수층 표심이 홍 후보로 결집되는 양상이 펼쳐졌다. 그 결과 안 후보는 ‘양강구도’ 하에서 문 후보와 1위 다툼을 하는 대신 ‘1강 2중 구도’ 하에서 홍 후보와 접전을 벌여야 했다.

국민의당 최대 지지기반인 호남 민심이 이탈한 것도 패배의 원인이 됐다. 안 후보는 국민의당 후보로 확정된 뒤 대선 후보에서 사퇴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지지층 등을 흡수하며 문 후보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특히 양자대결 시 안 후보가 문 후보를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뒤집기가 가능하다는 관측도 나왔다. 이때부터 본격화된 안 후보의 보수층 껴안기는 오히려 호남 지지층을 잃는 결과로 이어졌다.  

잇따른 실책도 지지율 하락세의 원인이 됐다. 안 후보는 지난 4월 “대형 단설유치원 신설을 자제하고 현재 사립 유치원에 대한 독립운영을 보장해 시설 특성과 그에 따른 운영을 인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단설유치원 논란’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젊은 엄마들의 거센 반박 여론을 초래해 지지율 급락의 결정타가 됐다. 지난달 23일 열린 제3차 TV토론에서는 “제가 갑철수입니까, 안철수입니까”, “제가 MB 아바타입니까”라며 민주당의 조직적 네거티브 문건 의혹을 추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에게 ‘갑철수’, ‘MB 아바타’ 이미지만 심어주며 ‘최악의 정치적 질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밖에 안 후보가 자신의 국회 보좌관을 사적인 업무에 이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가 하면, 안 후보의 아내 김미경 서울대 교수의 특혜 채용 논란도 불거졌다. 심지어 문 후보의 아들 문준용씨의 한국고용정보원 특혜채용 관련해 제기한 의혹 중 일부 사실을 정정하며 사과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관련 이용주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장은 지난 4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의 친척이 고용정보원에 특혜채용 됐다’고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 “권양숙 여사의 친척 부분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돼 이를 정정한다”고 밝혔다.

안 후보는 선거유세가 막바지에 접어든 지난 4일부터 5일간 유세차에서 내려와 ‘뚜벅이 유세’를 진행했다. 이른바 ‘안철수 걸어서 국민 속으로’라는 캠페인의 취지와 결과는 좋았다. ‘가장 안철수다운 모습’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결과를 뒤집기에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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