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진 5천회, 신발 1천 켤레, 도서관 5곳 짓기

마다가스카르 바오밥 나무 <사진=신미식 작가 제공>

[월요신문 권현경 기자] “짜라(최고) 마다가스카르”

원시 생명이 넘치는 곳, 세계에서 4번째로 큰 섬 마다가스카르. 이 곳에 ‘꿈꾸는 도서관’이 또 세워진다. 아프리카 전문 사진작가 신미식 작가와 ’아마다‘ 회원 40여명이 함께 기금을 조성해 만든 것이다.

신 작가는 그는 왜 마다가스카르에 애착을 갖고 도서관을 지을까. 10일 오전 11시 신 작가가 운영하는 용산구 청파동 갤러리 마다가스카르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아래는 신 작가와 일문일답.

신미식 사진작가

마다가스카르는 처음 어떻게 가게 됐나.

2006년 마다가스카르 관광청 마케팅팀이 초대해 방문했다. 첫 아프리카 여행이었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갔다.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해보니 ‘아 그동안 내가 사기 당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프리카 하면 불쌍하고 가난하다고만 들어왔다. 그런데 아이들의 표정이 너무 밝고 행복해 보였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아이들이 계속 생각났다. 그래서 보름 만에 무작정 다시 마다가스카르로 날아갔다.

마다가스카르는 어떤 나라인가.

마다가스카르는 아름답고 동화적인 나라다. 경제적으로는 에티오피아보다 3배는 못산다. 그런데도 마다가스카르를 궁핍한 나라로 여기지 않는 까닭은 천연의 환경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곳 사람들은 정말 착하다. 여행 중 100명의 사람을 만났을 때 9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인사를 건넨다. 아프리카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나라다.

마다가스카르 이야기 책 표지 사진 <사진=신미식 작가 제공>

사진작가로 마다가스카르 소개를 많이 해왔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마다가스카르 사람들의 순수함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의 눈동자가 너무 좋다. 처음 봤을 때 어떻게 저런 보석 같은 눈망울이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어릴 적에 시골의 가난한 집에서 살았는데 쌀이 없으면 고구마 삶아먹고 그래도 행복했다. 내가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것처럼 그들도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래서 마다가스카르에 더 애착을 느끼고 있다.

아프리카 전문 사진작가로 활동 중이다. 왜 아프리카인가.

45세 때 처음 아프리카로 갔다. 그곳 풍광과 주민들의 삶의 모습이 블랙홀처럼 나를 빨아들였다. 그 후 아프리카를 계속 찾았고 2006년 ‘마다가스카르 이야기’ 책을 내고 전시회를 열었다. 인터넷을 통해 알리고 방송에서도 자주 소개했다. 그러다보니 제법 알려졌다. 내가 쓴 책을 들고 여행하는 배낭객을 현지에서 만나기도 했다. 지금은 마다가스카르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미지의 세계를 세상 밖으로 꺼내놓은데 보람을 느낀다. 지금까지 아프리카를 54번 방문했고 다음 주 55번째 출국을 앞두고 있다.

마다가스카르에 도서관을 짓는 이유가 궁금하다.

아프리카 사진작가가 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아이들이었다. 그 아이들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 선물이 도서관이다. 도서관을 통해 아이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하고 싶었다.

모론다바 바오밥 거리에 지은 3번째 도서관 <사진=신미식 작가 제공>

세 번째 도서관 완공을 앞두고 있다. 소감이 어떤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이다. 모론다바에 세 번째 도서관 완공식이 24일 예정돼 있다. 도서관을 정말 아름다운 곳인 바오밥 거리에 꼭 짓고 싶었다. 바오밥 거리 입구에 30평 정도의 2층 건물로 지었다. 짓는데 2년 반 가까이 걸렸다. 그 거리는 우리나라로 치면 문화유산으로 지정돼서 함부로 건축을 못하는 곳이다. 선교사가 지역 국회의원에게 부탁해 지을 수 있었다. 아프리카 쪽은 일처리가 느린 편이다. 도서관을 짓도록 해달라고 했더니 일 년 만에 돌아온 답변이 학교를 지어달라는 요청이었다. 선교사가 학교를 짓게 되면서 나는 학교 안에 도서관을 짓게 됐다. 도서관은 강좌, 세미나, 특별활동 등 문화센터 역할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 외국인 관광객이 들어와 이용하고 도서관에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먼저 만들어진 두 도서관은 어디에 지었나.

첫 번째 도서관은 2013년 암빠나또바나 지역에 있는 학교 안에 교실을 리모델링해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 학교는 언덕에 위치해 있어 운동장이 없었다. 도서관을 만들면서 시에서 땅을 기증받아 운동장을 넓게 만들었다. 학생과 마을사람들이 함께 운동장을 이용한다. 두 번째 도서관은 타마타부 지역에 1층 건물을 새로 지었다.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도서관 하나 짓는데 2000만 원 남짓 비용이 든다. 이번엔 2600만 원이 들었다. 그때그때 후원하시는 분들도 좀 있고 나머진 내가 낸다.

위> 암빠나또바나 지역에 있는 1호 도서관, 아래> 타마타부 지역 1층 건물 2호 도서관 <사진=신미식 작가 제공>

도서관을 총 5개 짓겠다는 목표를 정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5개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 목표를 그렇게 정했다. 첫 결심은 2011년에 했다. 당시 나는 신용불량자였다. 그런데 준비하면서 수입이 생겼고 30% 정도 주변 분들의 도움 받아 도서관 하나를 완성했다. 숫자에 의미를 두기보다 힘들더라도 끝까지 해보겠다는 의지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마다가스카르 외에 아프리카 다른 지역에서도 좋은 일을 많이 해오고 있다. 주로 어떤 일인가.

처음 한 일은 신발 봉사다. 현지 선교사에게서 신발이 필요한 이유를 들었다. 시골 아이들이 파상풍으로 사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신발을 신으면 사망률이 25% 줄어든다고 했다. 뜻 있는 분들의 지원을 받아 신발 1천 켤레를 아이들에게 신겼다. 가족 사진도 빼놓을 수 없다. 몽골, 미얀마, 에티오피아, 마다가스카르 등을 다니면서 가족사진을 찍어주었다. 가족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몇 시간씩 걸어서 오는 걸 보면 가슴이 뭉클했다. 지금까지 5천 번 가량 가족 사진을 찍어줬다. 사진을 나중에 보내주겠다는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액자와 프린터를 갖고 다니면서 현장에서 찍어 바로 현상해 준다.

마다가스카르에서 야외 영화 상영을 한 적도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된 일인가.

문득 이 친구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영화를 안 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었는 것이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갈 때 스크린으로 6m 짜리 광목천을 만들어 챙겨갔다. 마당에 500명이 모여서 영화를 봤다. 킹콩, 성룡이 나오는 폴리스 스토리, 애니메이션 마다가스타르를 보여줬다. 반응이 너무 좋았다. 꼼짝도 안하고 세 편을 연달아 봤다. 그때 그 모습이 아직 눈에 선하다.

아프리카 언어에 불편을 느끼지 않나.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다. 여행자와 현지인이 어렵고 복잡한 얘기를 나눌 일은 거의 없다. 아프리카에 가면 차만 빌리는 경우는 드물고 기사 딸린 차를 빌린다. 길이 험해 위험하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대부분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단어로만 이야기해도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언어는 잘하면 좋겠지만 못한다고 해서 크게 문제될게 없다. 단지 조금 불편한 정도다. 100개 나라 넘게 여행을 했는데 영어를 더 잘했으면 깊이 있는 교류를 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언어 때문에 여행을 포기한 적은 없다.

얼마 전, 에티오피아 아이들을 초대했는데.

에티오피아에 있는 한별학교 학생과 선생님을 지난해 3명, 올해 5명 초대했다. 이번이 두 번째다. 이 학생들은 다른 나라를 가본 적이 없다. 이들에게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면 한국처럼 그들도 비전을 품을 것이다. 돈이 많아 하는 게 아니라 꿈을 갖게 해주고 싶어서다. 형편 닿는 대로 아프리카 선생님과 학생을 계속 초대할 생각이다.

앞으로 계획을 소개하면.

올 가을 에티오피아에 집을 지어주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 7년 동안 후원하고 있는 가족이 있다. 부모 없이 할머니와 아이 6명이 사는데 할머니가 시각장애인이다. 상황이 너무 안 좋아서 얘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가게 딸린 집을 지어줄 생각이다. 풍요롭거나 여유가 많아서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도 월세를 살고 있지만 마음이 시켜서 자꾸 하게 된다. 지금 나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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