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업을 수화로 하며 농인의 정체성 일깨워”

<사진=월요신문>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지난 12일 오전 9시, 우이동에 위치한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소보사)’을 찾았다. 우이동 주택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면 우거진 산 아래에 한적한 시골집같은 소보사가 불쑥 나타난다.

소보사에 들어가기 전 유투브 영상에서 배운 수어를 허공에 저어봤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이름은 김혜선입니다.’ 그때 마침 한 여자애가 뛰쳐나왔다. 외지인의 허우적거리는 손짓을 빤히 쳐다보던 아이가 씩 웃었다. 그리곤 ‘반가워요’라고 손짓했다.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소통되는 느낌!

대안학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 <사진=월요신문>

소보사는 국내 최초 청각장애인을 위한 대안학교로, 올해 3월 처음 문을 열었다. 개교 이전에는 농인을 위한 공부방을 10년간 운영하다 ‘대안적 농교육’의 꿈을 키웠다. 국내 농교육 현실이 열악하기도 했고,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리고 청인 사회에 억지로 적응하게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김주희 소보사 대표교사는 “일반이든 대안이든 특수학교든, 교육과 아이들의 삶이 너무 분리되어 있다. 검정고시 패스하려고, 대입 준비하려고 공부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농인들이 자신의 삶에 적용되고 도움 되는 공부를 어떻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대안학교를 열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016년 교육부가 발표한 ‘특수교육통계’에 따르면, 국내 170개 특수학교 중 청각장애인을 위한 특수학교는 14개에 불과하다. 국내 청각장애인 학생은 총 3,401명인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이중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농인 학생은 25.3%고, 나머지는 일반학교로 진학한다. 김 교사는 “대한민국의 특수교육은 농인보다 지적·지체장애 중심이다. 때문에 농인을 위한 수화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선생님들도 수화를 잘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치료나 재활로서 교육이 아닌, 농인으로서 정체성을 잘 반영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보사는 농인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인 ‘수화’로 모든 수업을 진행한다. 기존 농인 교육이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인 수화를 버리고 청인 사회에 적응하는데 초점을 맞췄다면, 소보사는 농인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중점을 둔다.

<사진=월요신문>

김 교사는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병원이다. 의사들은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은 아이가 잘 듣고 말 잘하게 하는 것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부분 소리를 잘 듣게 하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고 언어치료를 받게 한다.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수화를 보여주면 말을 안 하니까, 절대 수화를 가르치면 안된다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농인에게 수화는 ‘언어’다”고 강조했다. 김 교사는 “농인은 수화를 통해 첫 번째 언어를 가진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언어인 한국어를 배운다. 바른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언어로서 수화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소통을 통해 배우는 친밀함

소보사는 미취학 아동을 위한 ‘공동육아 어린이집’과 청소년을 위한 초·중·고 통합 대안학교로 나눠 운영한다. 올해는 처음 학교를 연 터라 공동육아 6명, 초등생 3명, 중학생 1명 총 10명의 학생들을 모집했다. 김 교사는 “농인 대안학교라는 새로운 시스템에 선생님이나 학생 모두가 적응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소규모로 시작했다. 입학 신청을 하신 분이 30명 정도 됐는데, 학교와 집이 너무 멀거나 아이가 어린 경우 부분 참여하는 식으로 조율했다”고 말했다.

수화로 함께 토론하는 아이들. <사진=월요신문>

커리큘럼은 어떨까. 소보사의 교사들은 심사숙고해 만든 교육과정을 입학설명회를 거치며 완전히 바꿨다. 처음에는 국·영·수·사회·과학 등 기초 과목이 포함된 과목을 만들었지만 아이들 한명 한명과 만나 면접을 보는 과정에서 각 아이들에 맞춘 교육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주희 교사는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고, 도움이 되는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활동 위주의 교육으로 전환했다. 한 학기에 주제를 정하고, 그 주제 안에서 활동을 하면서 교과가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했다. 올해 주제는 ‘친밀함’이다. 처음에는 ‘나’에 대해서 친밀해지고, 학교와 친해지고, 학교 구성원들, 지역사회, 농사회, 청인사회로 점차 친밀함의 대상을 넓혀가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예를 들면, ‘나와 친해지기’는 내 몸에서 시작한다. 몸이 어떻게 구성돼있는지 배우면서 치수를 재는 단위를 알기도 하고 성교육을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벽에 자신의 몸을 대고 그린 후 서로에게 편지를 써 줬다. <사진=월요신문>

소보사의 아침은 동네 산책으로 시작한다.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미에서다. 학교 근처 둘레길을 도는 30분간의 산책이 끝나면 기숙사 겸 학교인 ‘공동생활집’으로 돌아가 수업을 듣는다. 수업의 시작과 끝은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 수업은 요일별로 정해진 주제 안에서 활동을 하며 진행한다. 금요일에는 오전에 수화 독서를, 오후에는 야외 활동을 나간다. 하루 일과는 오후 3시면 끝난다.

학생들은 밝고 다정했다. 올해 12세 된 상일이는 부모님 모두 농인이시라 수화를 가장 잘 한다. 그래서인지 농인 선생님이 수화로 ‘빨간 부채 파란 부채’를 읽자 똘망똘망한 눈으로 쳐다본다. 소보사에 들어설 때 가장 먼저 뛰쳐나와 반겨준 여자아이는 진이(10)다. 외국인 학생도 잇다. 이름이 오스카(12)인 그는 기자의 서툰 수화를 알아보고 “이름이 혜선?”이라고 답했다. 오스카는 부모님 모두 농인이지만, 어머니 쪽이 외국 분이라 한국 수화를 잘 모른다. 하지만 친구들과 소통하며 한국 수화가 일취월장 하고 있다.

수화로 독서하는 시간. <사진=월요신문>

특수학교를 다니다가 소보사로 온 박예준(16) 학생은 “또래 친구들이 없긴 하지만 선생님들하고 말이 잘 통해서 좋다. 이전 학교에서는 이유도 모르고 많이 혼났는데 소보사에서는 혼나도 왜 혼나는지 (수화로) 알려준다. 어제는 선거연령 하향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이전학교에서는 토론하거나 선생님들과 그렇게 대화해 본 적이 없다. 이 학교에 오기 잘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 연령대가 다양해 수업 진행에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김 교사는 “수화에 익숙한 친구도 있고 그렇지 않은 친구도 있어서 상황에 맞는 교육이 필요하다. 산책 같은 통합 수업은 함께 진행하고, 각 연령대로 분리해야 하는 수업은 그에 맞게 진행한다”고 답했다.

소보사는 교육청의 인가를 받지 않은, 제도권 밖 대안학교다. 일반적으로 비인가형 대안학교는 교육비 등 모든 학교 운영비를 학부모가 충당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 소보사의 학비는 기존 기숙형 대안학교보다 절반 이상 저렴한데다 입학금은 없다. 학교 운영이 가능하냐고 물으니 “학교를 운영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학비로 아이들 먹이고 체험활동 가고 수업 교재를 구입한다. 대신 교사 인건비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청인들의 대안학교는 교육의 다양성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도 해서 학비가 비싸도 낸다. 소보사는 청각장애 교육뿐만 아니라, 농인교육의 대안을 제시하는 새로운 모델이다. 때문에 대안교육의 가치를 보고 오기보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오는 분들이 많다. 소보사 선생님들은 학부모들이 돈 때문에 농인 대안교육이라는 가치를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어야겠다고 마음을 모았다”고 전했다. 그는 “학교를 시작하며 장기적으로 볼 때 교사 인건비는 확보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개교 직전에 한 후원처의 후원이 취소돼 학교 건물이나 인건비 조달에서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이미 입학을 결심한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 수 없으니 강행했다. 고맙게도 10년 이상 함께 일해 온 선생님들이 교통비조차 자비로 해결하며 함께 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소보사는 오는 9월 2학기부터 입학정원을 늘리는 것을 논의 중이다. 김 교사는 “청인들이 말을 배우는 것처럼 농인들은 수화로 언어를 배워야 한다. 또래들이 더 늘어나면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구성원이 많아지니 교육에 더 좋다. 기다리시는 분도 계셔서 빨리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 위주로 선정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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