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시는 길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이끌어요”

서울성모병원 별관 6층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복도에서 수녀와 영양사가  만나 환자와 관련해 논의 중이다.

[월요신문 권현경 기자] 죽음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하지만 우리는 죽음에 인색하다. 입에 올리는 것마저 거북해한다. 살아 있을 때 건강과 행복을 추구하는 ‘웰빙’도 좋지만 인간의 존엄성을 간직하며 평화롭게 삶을 마무리하는 ‘웰다잉’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좋은 죽음을 맞을 수 있을까.

호스피스 병동은 ‘웰다잉’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이다. 라틴어가 어원인 호스피스는 ‘삶의 편안한 마무리를 위한 총체적 돌봄’이란 뜻이다.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환자와 가족을 매일 곁에서 보듬어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환자의 아름다운 죽음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있을까.

12일 오후 서울성모병원 별관 6층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를 찾아 병동 업무를 총괄하는 라정란 수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팀장을 맡고 있는 라정란 수녀

호스피스 완화의료라는 게 무엇인가.

호스피스 완화의료는 말 그대로 더 이상 적극적인 치료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보다는 통증 경감과 신체적 증상 조절, 심리·사회·영적 돌봄을 통해 ‘남은 삶의 질 향상’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의료서비스를 말한다.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죽음만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운 생의 마감과 가족과의 이별을 돕는 게 목적이다. 정부에선 지난해 7월부터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국민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지정해 운영 중이다.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에는 어떤 분이 대상인가.

항암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고 판단되는 말기 암환자가 대상이다. 현재까지는 여명이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암환자만 해당됐다. 8월부터 만성호흡기 질환, 간 질환, 에이즈 질환이 추가된다. 환자는 의식이 명료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해야한다. 왜 모든 환자를 다 받지 않느냐고 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우리가 환자를 위해 도와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팀은 어떻게 구성돼 있고 어떤 역할을 하나.

전문팀은 의사, 간호사, 사회사업가, 원목자, 자원봉사자, 영양사, 약사, 요법치료사로 구성된다. 환자와 가족이 경험하는 다양한 문제를 효율적으로 돕기 위해서다. 팀은 매주 회의를 갖고 환자 니즈의 맞는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머리를 모은다. 복지사와 봉사자는 환자와 상담한 내용을 바탕으로 가족 소풍, 외식, 만남과 화해 등을 임종 전 환자의 소원성취프로그램을 기획한다. 의료비에서 할 수 없는 여기 드는 비용은 후원회를 통해 충당한다.

가족 사별로 인한 상실 스트레스가 크다고 들었다. 이에 대한 가족 돌봄도 이루어지나.

‘사별 상실 스트레스’라는 말이 있다. 가족을 잃은 상실감은 보통 13개월에서 3년 정도면 사별 상실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이상 길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별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비슷한 고통을 겪은 다른 사람들과 슬픔을 나누는 것이다. 이들은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 봉사자와 복지사는 일정 기간마다 전화 통화로 사별 가족이 어떻게 지내는지 파악하고 위험요소는 없는지 챙긴다. 치료가 필요할 경우 심리치료나 정신치료로 연결한다. 일 년에 두 번씩 추모예식을 갖고 사별 후 힘든 과정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환자의 입원부터 임종까지를 매번 겪으실 텐데 어떤 때 가장 안타까운 마음이 드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환자나 가족을 만나면 너무 안타깝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가족들과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의료진에 치료 해달라고 따지고 들면 설득하는 게 어렵다. 간혹 임종이 임박했을 때 가정사와 같은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해결하는데 도울 시간이 없어 마음이 아프다.

병명을 알고 죽음 맞는 환자가 대부분인가 어떤가.

70%정도 말기 인 것을 알고 오고 90%정도 병명을 알고 온다. 주로 고령이신 분들은 병명을 모르신다고 보면 된다. 개인적인 생각에는 환자 본인에게 솔직하게 말기 상태인 것을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치료 통증 등 고통을 겪는 것은 환자 본인이고 법은 본인이 의사 결정하게 돼있지만 현실은 가족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소원성취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많을 것 같다. 이야기 좀 해 달라.

40대 후반 남자 환자 분이 췌장암 말기로 왔다. 입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퇴원을 시켜 달라고 했다. 이유를 들어보니 5살 난 아들과 어린이날 캠핑을 가기로 한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는 거다. 봉사자들과 모여 이 아빠 환자와 아들이 캠핑카 캠핑을 할 수 있도록 기획 했다. 아들 레고 선물을 미리 준비하고 환자가 외출을 나갈 수 있도록 상태를 각별히 살폈다. 그러던 중 환자 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임종실로 옮겨졌다. 그 시간 아이는 휴게실에 놀고 있었다. 환자가 임종하는 순간 레고 선물을 들고 아이에게 아빠가 전해달라고 했다고 달려가 전했다. 아들은 선물을 받자, 임종실로 달려가 “아빠 나랑 약속 잊지 않았구나, 아빠 고마워”라고 하는데 환자가 들었는지 편안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을 봤다. 아이는 그 기억을 평생 갖고 살아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한 번은 고2 딸을 둔 엄마 환자가 유방암 말기로 입원했다. 남겨두고 갈 딸에 대한 걱정이 큰 이 엄마를 위한 고민 끝에 딸에게 앞으로 살아갈 구체적인 계획을 편지로 쓰게 했다. 딸은 엄마 앞에서 큰 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그 엄마는 딸의 미래가 머릿속으로 그려진다며 안심했고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봉사자가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봉사자들은 호스피스 봉사야말로 모든 봉사의 총체인 것 같단 말을 많이 한다. 목욕, 발마사지, 노래부르기, 사별 관리, 소원성취프로그램, 가정 호스피스 방문 등 육체적, 정신적 소모가 큰 편이다. 시간을 내서 이 사람들과 함께하다보면 사실 얻는 게 훨씬 더 많다. 봉사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철학이 뚜렷한 긍정적인 분이어야 한다. 죽음이 끝이라고 생각하거나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환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봉사를 희망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봉사에 참여하실 수 있나.

일 년에 두 번 호스피스 일반인 교육을 실시한다. 호스피스가 무엇인지, 대상자, 어떤 봉사를 하는지에 대해 3일 교육 받은 자에 한 해 신청을 받는다. 봉사에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직장인, 학생 등 시간 할애를 감안해 서류검토 후 예비기간 3개월 동안 수습기간을 거쳐 적격성을 판단한다.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봉사자만의 특징이 있다면.

서울성모병원은 국내 최초 1987년 3월 호스피스과가 신설됐다. 자원봉사팀도 그때 꾸려져 호스피스 교육과 활동을 시작했다. 긴 시간 운영해 온 만큼 조직이 탄탄하게 갖춰져 있다. 매년 새로운 맴버가 들어오고 60명 정도 유지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남자 만 65세, 여자 만 60세 봉사활동 정년이 정해져 있다. 목욕만 한다거나 발마사지만 한다거나 특정한 봉사만 반복적으로 하게 되면 보람을 덜 느낀다. 종합적 봉사활동에는 육체적 건강이 중요해 정년을 둔 것이다.

앞으로 환자를 위해 더 신경 쓰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여기 오신 모든 환자분들이 죽음을 잘 수용하고 마지막 시기를 편안하게 마무리하길 소망한다. 임종을 잘 맞을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다양화하는 것. 신체적인 것 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 심리적, 영적인 것들을 도울 수 있도록 강화 발전 시켜야겠단 생각을 하고 있다.

라정란 수녀님에 이어 예은주 자원봉사 팀장을 만나 16년 간 호스피스 봉사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 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 예은주 자원봉사 팀장

처음에 어떻게 호스피스 봉사를 시작하게 됐나.

호스피스를 잘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막연히 직장 그만두면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다. 어떤 봉사를 할 수 있을까 고민 끝에 미용기술을 배웠다. 시골에 다니며 어르신들 머리 손질을 해드리면 좋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다 호스피스 교육을 듣고 마음이 이끌려 지금까지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때 배운 미용기술을 여기서 잘 활용하고 있다.

봉사활동 시간은 어떻게 되나.

화·금 오후조(12시 반-4시 반)로 활동 하고 있다. 여기는 특정봉사만 하는 게 아니라 종합적으로 다 한다. 사별가족 관리와 모임 준비, 가정 호스피스 방문, 팀 회의, 소원성취프로그램 기획, 장지수행 등 활동 시간 외적으로 하는 게 더 많다.

봉사할 때 각별히 주의하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나.

환자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하거나 실수를 하더라도 사과하고 용서 받을 시간이 없다. 환자 분들이 원하는 게 있다면 당일에 다 해드리는데 중점을 둔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무엇인가 해드려야겠다고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 같이 옆에 있어주는 것. 이야기 들어주는 것. 원하는 것이나 가려운 곳을 긁어드리며 시간을 같이 보내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임한다. 환자들은 늘 봉사자의 도움에 고맙고 미안해 한다. 그런 마음을 갖지 않게 하고 자존감을 높여드리는데 힘쓴다. 그동안 살아온 삶이 잘못되지 않았고 잘 살아오셨다는 말씀을 많이 드린다. 환자와 이야기 하다보면 마음을 열어주고 몸을 맡겨주시는 데 감사하다. 나도 언제 아플지 모른다. 임종이 가까워 왔을 때 이분들처럼 할 수 있을까. 잘 준비해서 가시는 분 보면 부러울 때가 있다.

잘 준비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본인의 현재 상태를 수용하는 것. 못 받아들이고 부정하는 분도 많다. 그 다음은 가족과 주변 분들과 좋은 관계로 정리하는 게 잘 준비하는 게 아닐까.

봉사하면서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은데.

육체를 많이 쓰는 봉사라 힘들지만 그건 순간이다. 정신적으로 훨씬 풍요롭다. 나이가 많건 적건 잘 돌아가는 분 보면 나도 저렇게 갔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봉사하면서 인생 선배들로부터 배우는 것도 많다. 인격적인 성숙도 자연스럽게 이루진다. 가족과 주변사람들에게 잘하게 된다. 사람들과 관계에서 아옹다옹하지 않는다. 죽음을 늘 곁에서 보다보니 초연해진 것 같다. '저게 뭐 중요해~’ 크게 욕심 없다. 동행해보니 잘 사신분이 잘 돌아가시는 것 같다. 준비를 잘 한 분 가족은 많이 울지도 않는다. 환자 중에는 한 명 한 명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를 남기거나 사용처를 밝힌 돈 봉투를 두고 가시는 분도 봤다.

그동안 봉사하면서 기억에 남는 환자가 있다면.

최근 임종하신 분 중 40대 여자분으로 항암치료로 뼈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집에 가길 요청해 도움을 주고자 알아보다보니 재혼가정에, 어린 아들이 있었다. 환자는 가정 호스피스로 전환했다. 한 날 집으로 방문했는데 물건 하나 붙잡을 힘이 없는 분이 집에서 밥을 하고 있었다. 너무 안타까웠다. 가족 소풍을 기획 하던 중 환자가 넘어져서 골절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돌아가셨다. 그동안 너무 외로워 했다. 관심을 못 받고 살아온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예은주 봉사자가 미용봉사를 하고 있다.

보람을 느낄 땐 언제인가.

항상 보람 있다. 환자분들이 미용실에 못 간다. 항암치료 때문에 몰골이 말이 아니다. 목욕시켜 머리 예쁘게 손질해드리고 예쁜 모습 보여드리고 보내드릴 때 미용 배우기 참 잘했다 생각한다.

언제까지 봉사활동 할 생각인가.

감사하는 삶, 알 수 없는 기쁨이 봉사의 묘미가 아닌가. 여건이 되면 정년까지 계속 하는 게 소망이다. 매일 즐겁지 않으면 봉사하지 않아야 한다. 여기가 너무 좋고 행복해서 한다. 집이 원당이라 왕복 3시간. 힘들지 않냐 묻는 분들이 많다. 한 번도 나가고 싶지 않은 적이 없다. 거짓말 같이 들리겠지만 너무 기쁘게 하고 있다.

호스피스 봉사를 하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마음이 따뜻한 분이면 된다. 무엇을 하겠다는 의욕에 찬 사람보다 삶의 마지막 길을 함께 하고자 하는 분이면 좋겠다.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오해하고 두려워하는 분들이 많다. 겁낼 것 없다. 우리 모두 결국 다 겪게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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