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출처=한국납세자연맹> <그래픽=월요신문>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이른바 ‘검은 예산’으로 불리는 정부의 특수활동비 예산편성액이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특수활동비 관련 예산을 축소하는 한편 통제를 강화해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한국납세자연맹은 “2007년 이후 지난 10년간 특수활동비로 편성된 예산액이 총 8조563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면서 “사기업은 영수증 없이 돈을 지출하면 횡령죄로 처벌받는데 국민의 세금을 공무원이 영수증 없이 사용하는 것은 국민주권주의 원칙을 위반한 것이다. 정보기관을 제외한 청와대, 법무부, 감사원, 국세청 등의 특수활동비를 폐지하고, 정보기관의 특수활동비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납세자연맹 김선택 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선진국에서는 일부 예산이라도 우리나라 특수활동비처럼 전혀 공개하지 않고 사용하는 곳은 없다”면서 “고위공직자들이 국민의 세금을 영수증 없이 사용한다는 것은 제대로 된 민주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권위주의적·봉건적 잔재”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는 특수활동비부터 척결을 해야 한다. 특수활동비 관련 예산을 전면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국가 안보에 관한 사항이나 기밀 유지가 필요한 경우에는 비공개 보고 등의 방식을 통한 국회 통제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료출처=한국납세자연맹> <그래픽=월요신문>

한국납세자연맹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사용한 특수활동비 상위 5개 기관은 국정원, 국방부, 경찰청, 법무부, 청와대로 드러났다. 모두 권력·사정기관이다. 이들 기관에서 전체 특수활동비 예산(8조5631억원)의 95% 이상을 사용했다.

특수활동비를 가장 많이 사용한 기관은 국가정보원이다. 지난 10년간 국가정보원이 사용한 특수활동비는 총 4조7642억원으로 전체 특수활동비 예산의 55%를 차지한다. 그 뒤를 이어 국방부가 1조6512억원, 경찰청이 1조2551억원, 법무부가 2662억원, 청와대가 2514억원을 사용했다. 그밖에 국회(869억원), 감사원(401억원), 국세청(296억원), 미래창조과학부(294억원) 등에도 상당한 금액의 특수활동비 예산이 편성됐다.

특수활동비를 사용하는 기관들은 “국가·수사 보안상 은밀하게 수행해야 할 일에 특수활동비를 쓰는 경우가 많다”는 이유로 사용 내역 공개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지급된 특수활동비가 어떻게 사용된 지도 모른 채 해마다 액수가 늘고 있는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특수활동비를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하거나 횡령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도 있다. 지난 2007년에는 김성호 당시 법무부 장관이 부산에 있는 모교를 찾아가 지역 인사들에게 저녁을 사며 600만원을 특수활동비에서 사용해 물의를 빚었다. 2010년 8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선 신 후보자가 차관 시절 특수활동비 1억1900만원을 골프·유흥비로 썼다는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2011년에는 김준규 당시 검찰총장이 검찰 고위 간부 45명에게 검찰총장 특수활동비 9800만원을 나눠줘 물의를 빚었고, 2013년에는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헌법재판관 재직 때 특수활동비를 개인통장에 넣어 사용한 것이 드러나 후보직에서 물러났다. 2015년 5월에는 홍준표 경남지사가 특수활동비를 아내에게 생활비로 줬다고 밝혀 논란을 일으켰고, 같은 달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새정치연합 신계륜 의원은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시절 특수활동비를 자녀유학비로 썼다고 밝혀 논란을 증폭시켰다.

국가 예산의 사용은 어떤 식으로든 공개해 감시가 이뤄져야 한다. 특수활동비의 집행 근거가 되는 기획재정부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 작성 지침’은 특수활동비를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 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급 대상과 방법, 시기 등은 각 관서에서 업무특성을 감안해 집행하도록 하고 있다. 또 특수활동비의 사용처를 공개하는 것이 경비 집행의 목적 달성에 방해가 될 경우 집행내용 확인서를 생략할 수도 있다. 이처럼 모호한 증빙·편성·집행 규정은 유용, 횡령 등의 불법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만큼 하루빨리 개혁을 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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