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선거캠프와 러시아 간 내통 의혹을 조사할 특별검사로 임명된 로버트 뮬러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뮬러 국장은 10년간 FBI를 이끄는데 있어 모범적 사례를 만들었고, 법 집행과 국가안보 수호에 흠잡을 데 없는 역할을 수행했다. 미국이 직면하고 있는 위협과 국방부 장관 및 중앙정보국 국장의 교체 일정 등을 감안했을 때 FBI의 연속성과 안정성이 현시점에서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2011년 5월 12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로버트 뮬러 당시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임기를 2년 연장해 줄 것을 의회에 요청하면서 한 말이다. 공화당 정권에서 발탁됐고, 4개월 뒤 10년 만기 은퇴를 앞둔 미국 최고 정보기관장에게 민주당 정권이 임기 연장을 부탁하는 이례적인 상황이었다. 상원의 만장일치로 임기가 2년 연장된 뮬러 전 국장은 2013년 9월 4일 12년의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다.

FBI를 떠나 2014년부터 로펌 ‘윌머헤일’에서 일하던 뮬러 전 국장이 다시 미국 정가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지난 17일(현지시간) 미국 법무부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대선캠프의 러시아 내통 의혹’에 대한 특검수사를 결정하고 이를 진두지휘할 특별검사로 뮬러 전 국장을 공식 임명하면서다. 이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마녀사냥”이라며 항변했다. 하지만 상당수 미국 언론과 정치권은 “흠 잡을 데 없는 훌륭한 선택이다. 미국인들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뮬러 전 국장의 임명으로 백악관이 패닉에 빠졌다. 트럼프 대통령 임기의 끝이 시작됐다”는 주장도 나온다.

뮬러 전 국장이 공화 민주 양당의 환영을 받은 것은 ‘강직한 이미지’ 때문이다. 그는 FBI 국장 재임 시절 ‘어떤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음으로써 FBI의 권위를 바로 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때문에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수사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와 관련 필립 무드 전 FBI 부국장은 뮬러 전 국장의 특검 임명 소식에 “작금의 정치적 혼란을 수습할 적임자가 임명됐다. 뮬러 전 국장은 리더십·판단력·추진력 3박자를 갖춘 최고의 리더다. 정부, 의회, 언론의 눈치를 보지 않고 목표를 향해 강직하게 수사만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2004년 부시 행정부의 ‘불법도청 재인가’ 시도를 막아낸 것은 뮬러 전 국장의 강직한 성품을 보여주는 대표적 일화다. 당시 백악관의 주요 참모들은 9.11 테러 이후 테러 분자를 쫓는다는 명목으로 영장 없이도 도청이 가능한 방안을 추진했다. 이에 뮬러 전 국장은 “대통령이 계속 밀어붙인다면 FBI 국장직을 사임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했고 부시 전 대통령은 결국 자신의 계획을 포기했다. 당시 뮬러 전 국장은 야당인 민주당에서조차 ‘영웅’이란 칭송을 받았다.

행정부는 물론 의회, 언론과 동시에 충돌한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06년 FBI는 민주당 소속 8선 의원인 윌리엄 제퍼슨 의원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당시 FBI는 제퍼슨 의원이 의회에 대한 영향력을 이용해 기업으로부터 수십만달러를 착복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한 상태였다. 하지만 결정적 증거를 발견하지 못해 혐의 입증이 어려워지자 뮬러 전 국장은 의원실을 압수수색 하기로 결단했다. 의회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미국 헌정 사상 처음인 만큼 반발이 심했다. 당시 제퍼슨 의원 측은 “한 푼도 착복하지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하면서 FBI의 함정수사라는 점을 부각시켰다. 의회도 “삼권분립을 위반하는 처사”라며 초당적으로 반발했다. 백악관 역시 “압수수색을 한 물품을 제퍼슨 의원에게 돌려주라”며 뮬러를 회유했다. FBI의 의원사무실 수색을 전하는 언론들도 군사작전에서 사용되는 “공습(raid)”이란 단어를 써가며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뮬러 전 국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사임 카드를 꺼내들며 고집스러운 수사를 이어갔고 결국 증거를 찾아냈다. FBI는 제퍼슨 의원이 10만 달러가 든 돈가방을 받는 영상 증거물을 확보한 데 이어, 워싱턴 D.C.에 있는 제퍼슨 의원의 자택 냉장고에서 숨겨진 현찰 9만 달러를 발견했다. 의원사무실 압수수색과 관련해 연방법원으로부터 합법 판결도 받았다. 반면 뇌물수수, 불법자금전송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제퍼슨 의원은 13년형을 선고받았다.

뮬러 전 국장에 대한 관심과 기대는 그의 뛰어난 업무능력에도 기인한다. 특히 9·11 테러 이후 FBI에 대테러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뮬러 전 국장이 취임한 지 1주일 만인 2001년 9월 11일 ‘9·11 테러’라는 대형 참사가 발생하자 테러를 사전에 경고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FBI에 집중됐다. 이에 뮬러 전 국장은 즉각 조직 개혁에 착수했다. 폭력·마약조직 추적·검거 등 FBI의 전통적인 업무는 뒤로 돌렸다. 대신 테러 사전예방, 테러조직 소탕을 최우선 순위로 올렸다. 특히 대테러 업무를 위한 정보 취합·분석 기능 강화에 주력했다. 9·11 테러 이전에 테러 모의와 관련된 주요한 단서들이 포착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조합·분석해 사전 대응하는 작업이 소홀했다는 판단에서였다.

조직 개편 결과 FBI 범죄수사 요원은 18%가 줄어들었다. 반면 대테러담당 요원은 106%, 정보 애널리스트는 205% 급증해 정보분석 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뮬러 전 국강과 제임스 코미 전 FBI 국장과의 인연도 조명 받고 있다. 둘은 미국 언론이 “쌍둥이”, “전우”로 묘사할 만큼 오랫동안 함께 손발을 맞춰왔다. 특히 2004년 부시 행정부의 ‘불법도청 재도입’ 시도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협력하며 더욱 긴밀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코미 전 국장은 뮬러 전 국장의 후임자다. 2013년 9월 4일 뮬러 전 국장이 퇴임하고 그의 뒤를 코미 전 국장이 곧바로 이었다. 이들은 개인사도 닮았다. 두 사람 모두 버지니아주에 있는 대학을 졸업했고, 일류 로펌의 길을 걷는 대신 연방 검찰의 길을 선택했다. 이런 인연을 들어 워싱턴 정가에서는 “코미 전 국장이 자신이 가진 정보를 뮬러 특검에게 충분히 공유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뮬러 전 국장은 권력기관장으로서의 자기관리에도 철저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핸디캡 13의 골프 애호가로 유명하다. 하지만 FBI 국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업무 관계자는 물론 FBI 내부 간부와도 일절 골프를 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부인과만 라운딩을 했다.

지난 2013년 코미 전 국장의 모교인 윌리엄앤메리대 졸업식 연설에서 뮬러 전 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똑똑하고, 적극적이며, 정확하고, 설득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직하지 않다는 평판을 받게 되면 고통이 따른다. 이 평판을 바꿀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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