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오늘도 맑은 눈으로 바다를 살핀다, 또 한 생명을 위해

이 시대의 지옥, 지중해

2017년하고도 5월입니다. 첨단의 시대죠. 하늘에 드론이 날아다니고, 자율주행 자동차가 개발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고 새 지도자가 나타났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2천300을 넘었다죠. 시대는 진보하고, 더 나은 세상,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 시각, 저는 지중해에 있습니다. 지중해라는 말에는 묘한 설렘이 있습니다. 따뜻한 남국의 나라, 평화롭게 쉬어가는 휴양도시라 생각하죠. 아닙니다. 결단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 먼 바다에서 난민들이 소리없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의 지옥 아우슈비츠였다면, 오늘날 이 시대의 지옥은 여기 지중해입니다. 지금부터 지중해에서 난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지중해에서 목숨은 가볍다. 너무 쉽게 죽고, 다행히 쉽게 살기도 한다. 살려는 의지만 있다면. <사진제공=시와치>

7~9일째, 구조, 구조, 구조

반쯤 가라앉은 난민 보트에 접근하면 난민들은 살려달라, 구명조끼를 달라 아우성입니다. 구조대는 섣불리 접근하지 않습니다. 보트 주변을 몇 바퀴 돌며 난민들의 상태를 살핍니다. 환자가 있는지, 구멍난 곳이 있는지 등을 살핍니다. 그 사이 난민들은 조금 진정됩니다.

5미터 거리를 두고 접근합니다. 말을 붙입니다.

-자, 조용히 앉으세요.

-조용히. 앉으세요.

-조.용.히. 앉.으.세.요.

몇 번을 말해도 난민들은 아우성입니다. 한 사람을 지목합니다.

-자, 당신 이름이 뭐예요.

-아흐마드입니다.

-그래요. 아흐마드씨 반갑습니다. 자, 여러분 저는 지금부터 아흐마드씨와 대화합니다. 우리가 대화할 수 있도록 다른 분은 조용히 앉아주세요.

그제야 난민들은 조용해집니다. 그러면 구조 절차와 구명조끼 착용법을 설명합니다. 환자, 영유아, 임산부 등으로 구조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순서가 지키지는 일은 드뭅니다. 난민 모두에게 구명조끼를 입히고 보트로 구조선까지 10명씩 옮깁니다.

반쯤 가라앉은 난민보트. 난민들이 구명조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시와치>
반쯤 가라앉은 난민보트. 난민들이 구명조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사진제공=시와치>

그렇게 며칠간 난민 구조를 반복했습니다. 본디 선박 생활은 단조롭습니다. 매일 같은 장면이 반복합니다. 난민 구조현장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처음에야 아기를 구조하면 이를 어찌해야할지 막막하지만, 그것도 여러번이면 사람은 적응하기 마련입니다. 이제 우리 팀도 이 일이 몸에 익었습니다. 어느덧 구조대원들은 공장에서 볼트 조이듯 난민을 실어 나릅니다.

한 아버지가 여아를 높이 치켜듭니다. 딸을 먼저 구조해달라는 신호입니다. 아비는 압니다. 일이 잘못되면 딸과 영영 헤어질 수 있다는 걸. <사진제공=시와치>

 

텅 빈 눈동자들

저희 시와치 구조선에 300여명을 태운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람 무게만 20톤이 넘습니다. 구조선의 움직임이 둔해집니다. 난민을 위해 갑판에 간이 화장실을 두 개 만들었습니다. 간이 변기를 천으로 둘러 가린 게 전부입니다. 허나 화장실을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갈증에 고통스러워하는 이에게 허름한 간이 화장실마저 사치입니다.

 

사내에게서 아무데서도 보지 못한 약자의 표정을 본다. 남자는 유럽행 보트에 타기 위해 1천 킬로미터를 넘게 걸었다고 했다. <사진제공=시와치>
성인들은 스스로 머리를 비우고 텅 빈 눈으로 허공만 봅니다. 얼빠진 얼굴에 절망이 비칩니다. <사진제공=시와치>


성인들은 스스로 머리를 비우고 텅 빈 눈으로 허공만 봅니다. 얼빠진 얼굴에 절망이 비칩니다. 가족과 고향, 친구, 숟가락, 속옷까지. 가진 걸 전부 잃은 사람. 금반지나 돈, 전화기는 고사하고 당장 화장실 휴지조차 없는 사람. 심지어 인간 본연의 존엄마저 놓아버려 껍데기만 남은 것 같습니다. 아무데서도 보지 못한 약자의 표정입니다.

그 속에서도 꽃은 핍니다. 아이들은 이 상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새로 사귄 친구와 갑판을 누빕니다. 과연 신은 아이들 속에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상황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새로 사귄 친구와 갑판을 누빕니다. 신은 아이들 속에 있습니다. <사진제공=시와치>

빵 한 조각만 주세요.

“우리 아이에게 빵 한 조각만 주세요. 구석에서 감쪽같이 먹을게요.”

아이를 가진 엄마들은 조타실 문을 몰래 열고 속삭입니다. 열 살쯤 되는 아이도 찾아옵니다. 빵은 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에게 주면 다른 사람이 귀신같이 알아챕니다. 배는 혼란에 빠질 겁니다. 지금 중요한 건 오직 뭍에 안전하게 도착하는 겁니다. 빵이든 침구든 다른 걸 신경 쓸 때가 아닙니다.

난처합니다. 처음 거절은 쉽지 않습니다. 저는 큰 잘못을 저지르는 것처럼 시선을 피합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다른 엄마의 비슷한 애원이 이어지면서 저는 점점 무뎌집니다. 이제는 그들의 얼굴도 기억 못합니다. 대신 그 체취와 구슬픈 목소리만 아른 합니다.

저는 끝까지 냉정했고 그래야 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옳든 그르든 그런 상황에 놓인 제가, 그런 판단을 한 제가 밉습니다. 어쩌면 저는 점점 저를 미워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몸은 멀쩡하지만 마음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주저앉을 자리조차 없는 사람들

난민을 가득 실은 배에 바람 부는 지중해의 밤이 찾아옵니다. 춥고 배고픈 밤입니다. 다리를 쭉 뻗고 하늘을 보며 자는 이는 없습니다. 새우처럼 굽어져서 한 손은 머리를 괴고 다른 한손은 무어든 껴안습니다. 아는 사람인지 아닌지, 어쨌든 껴안습니다. 추워서 껴안고 외로워서 껴안습니다. 안고 안깁니다. 다 같이 껴안고 다 같은 꿈을 꿀 테죠. 다들 고향에서는 누군가와 꼭 껴안고 단 잠을 잤을 테니 말이죠. 꿈속에서 가족을 만나는 모양입니다.

파울로 코엘료를 읽습니다. 작가는 ‘걷지 말고 춤추듯 살라’했습니다. 여기, 걷기는커녕 주저앉을 자리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시 우리의 문학은 기뻐하고 슬퍼할 여유가 있는 자들의 말놀음은 아닌지요. 이곳이 지옥인 다른 이유는 사람이 점점 삐딱해져서 세상의 아름다운 문학마저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난민들은 갑판에 누워 다같이 껴안고 잠이 듭니다. <사진제공=시와치>

 

11일째, 귀항

저희는 그렇게 열하루 동안 난민 700여명을 세 차례에 걸쳐 구조하고 귀항했습니다.

저희 시와치는 징검돌 같은 존재입니다. 난민들이 리비아를 떠나 유럽으로 가는 길에 놓인 아주 작은 돌 하나. 그러나 이 돌을 밟고 안전하게 지난 사람이 수천, 수만이라는 사실의 의미를 저는 짐작도 못하겠습니다.

<사진제공=시와치>

지중해의 나날은 괴로웠습니다. 파도에 배가 넘어갈 듯 흔들리는 밤에는 밥도 못 삼키고 빈 속으로 잠을 청했습니다. 뭣 하러 고생길을 자초 했나 인간적인 후회를 하기도 했습니다.

몰타 항으로 돌아오는 날, 이탈리아의 한 변호사가 시와치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저희가 리비아 밀입국업자에게 뒷돈을 받고 난민을 수송한다는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대원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소식이었습니다.

다음 스토리펀딩 <지중해를 헤매는 쿠르디의 친구들>을 진행하면서는 수많은 악성 댓글을 받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게 우리에게 적대적입니다. 구름마저 태양과 우리를 갈라놓으려 하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입니다. 버티는 것. 꿋꿋하게 이 길을 가는 것.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맑은 눈으로 이 바다를 살피는 것. 그것만은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시와치 구급대원이 구조된 환자를 돌보고 있다. <사진제공=시와치>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부국입니다. 그런 우리가 이 시대의 과제에 얼마나 책임을 다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혹시 충분히 갖고도 더 갖지 못해 떼쓰는 아이는 아닌지요.

스토리펀딩을 진행하며 놀라운 일을 경험했습니다. 첫 날 하루만에 목표액의 6할인 300만원을 200여분이 후원했습니다. 보름 만에 목표액 500만원을 달성했지요. 지금은 이를 훨씬 넘어서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세상까지 살피는 많은 분들의 성원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온정으로 올해 지중해의 악몽이 조금은 보듬어지리라 믿습니다.

저는 잠깐 특별한 일을 할 뿐 늘 실수하고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생긴대로 자주 겁내고 비겁하게 살 겁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닙니다. 아니어야 합니다. 다시 지중해로 떠날 시간입니다.

약력, 김연식(35), 항해사

국제환경보호단체 ‘그린피스(Greenpeace)’와 난민구조단체 ‘시와치(Sea-Watch)’의 선박에서 항해합니다. 북극과 아마존, 파타고니아, 솔로몬제도 등 전 세계 이슈 현장에서 먹고 자고 숨 쉽니다. 인천일보에서 3년간 기자로 일했으며, <스물아홉 용기가 필요한 나이>의 저자입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