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일가에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9차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검찰·특검 측과 변호인단 간 신경전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정유라 승마지원’ 등이 핵심 쟁점으로 다뤄지고 있다. 양측의 법리공방이 치열하다보니 연일 10시간이 넘는 강행군이 펼쳐진다. 하지만 핵심 의혹을 입증할 구체적 증거나 증언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아 향후 재판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재판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삼성물산 합병·순환출자 해소 특혜 의혹’이다.

2015년 10월 1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발생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삼성SDI와 삼성전기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10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골자로 한 보고서를 작성했다.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과 정채찬 공정위원장의 결재를 거친 보고서 내용은 청와대와 삼성 측에도 구두로 전달됐다. 공정위 실무자들은 그해 11월 초 유권해석 결과를 삼성 측에 공식 통보하려 했다. 하지만 청와대와 삼성 측의 요구에 따라 공식 통보나 외부 공개는 않고 보류해 둔 상태였다.

2015년 12월 공정위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순환출자 고리가 강화됐다”며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500만주를 처분해야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삼성 측이 처분해야 할 삼성물산 주식이 1000만주라고 했던 당초 결정을 뒤집고 500만주로 유권해석을 내린 것이다.

특검과 변호인 측의 주장이 첨예하게 갈리는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특검은 공정위의 유권해석이 삼성에 유리한 쪽으로 바뀐 것이 ‘삼성→청와대→공정위’로 이어지는 뇌물 연결고리의 결과물이라는 입장이다. 정황 증거도 제시했다. 특검 수사에 따르면 공정위가 최종 결론을 내리기 전인 2015년 11월 김 부위원장과 삼성 미래전략실 김종중 사장이 만났다. 당시 김 사장은 김 전 부위원장을 만나 “1000만주는 너무 많다”며 “SDI 부분은 재검토해달라”는 취지로 부탁했고, 이후 김 전 부위원장은 공정위 실무진에 삼성물산 처분 주식수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는 게 특검의 주장이다.

관련 증언도 나왔다. 지난 24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17회 공판에 참석한 공정위 기업집단과 소속 A사무관은 “김 부위원장이 국·과장과 함께 불러 ‘유권해석 내용을 왜 삼성에 통보하려고 하나. 너네가 위원장이냐. 통보하지 말고 공정위 전원회의에 안건을 올리라’고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A사무관은 이어 “수차례 삼성에 통보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하지 말라고 너무 강하게 말해서 어느 정도 얘기하다 더는 말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김 전 부위원장은 김종중 사장을 만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공정위 실무진에 처분 주식수 재검토 지시를 내린 건 삼성 측 요청에 따른 게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 사장의 메시지가 ‘청탁’이 아닌 원칙에 따른 ‘재검토’였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 김 전 부위원장은 “김종중 사장과 만났을 당시 김 사장은 SDI가 보유하게 되는 삼성물산 주식 500만 주를 처분해야 한다는 공정위 해석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면서 “이후 실무진들이 작성한 보고서 내용을 살펴보니 법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돼 재검토를 지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특검이 ‘이미 위원장이 결정하고 삼성에 구두 통보도 됐는데 증인 임의로 재검토 지시가 가능하냐’고 묻자 “순환출자고리 해소 문제는 법리 해석에 대한 문제인 만큼 검토 과정에서 중대한 오류가 있다면 얼마든지 재검토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했다.

이재용 부회장 재판의 또 다른 쟁점은 ‘정유라 승마지원’ 의혹이다. 특검은 삼성 측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의 승마 훈련을 지원한 것이 최씨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도움을 줬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부회장이 2014년 9월 박 전 대통령과의 1차 독대를 전후로 최순실·정유라 모녀의 실체를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게 특검의 판단이다.

이와 관련 김종찬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는 29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이재용 부회장 20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로부터 ‘최순실이 삼성물산 합병에 도움을 줘서 삼성이 승마지원하게 됐다고 들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증언했다. 특검은 이를 근거로 “정유라에 대한 삼성의 거액지원이 결국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점이 드러났다”면서 “여러 가지 간접 증거들을 종합해보면 이 부회장은 2014년 9월 ‘삼성이 승마협회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당시부터 최순실의 존재를 알고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특검은 승마 중장기 로드맵도 최씨의 지시에 의해 대한승마협회에서 만든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변호인단은 “김종찬 전 전무의 진술이 ‘재전문 진술’에 불과하므로 합병에 대한 대가를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김 전 전무는 ‘최순실이 실제 합병을 도와준 것인지, 박원오 전 전무가 거짓말하는 것은 아닌지 알고 있느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박 전 전무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 일 뿐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면서 “박 전 전무의 말을 박상진 전 삼성 사장이나 황성수 전 삼성 전무 등 다른 사람에게 확인해 본 사실도 없다”고 진술했다.

이날 김 전 전무는 당초 삼성이 협회에 소속된 선수들을 모두 지원하려 했다는 발언도 했다. 김 전무는 ‘삼성의 승마지원이 정 씨만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못 들었느냐’는 특검의 질문에 “2020년 올림픽에 나가는 국가대표 선수를 위한 것이라고 들었다”면서 “삼성이 대한승마협회 회장사가 됐기 때문에 협회에 소속된 선수들을 지원하려는 것이라고 박원오 씨가 그랬다”고 진술했다. 김 전 전무는 이어 “삼성의 승마 지원이 정유라 개인을 위한 것으로 생각한 적은 없다”면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장래 유망 선수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본질’이 최순실의 개입으로 흐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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