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월요신문 허창수 기자] “재벌·대기업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사람 중심, 중소기업 중심으로 변화시켜 경제민주화와 소득주도 성장, 국민성장을 함께 추진할 수 있는 최고의 적임자라 판단했다.”

지난달 21일 문재인 대통령이 장하성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를 청와대 정책실장으로 임명하면서 한 말이다.

장 실장은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다.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은 1997년 이후 대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줄기차게 요구해온 탓에 ‘재벌저격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특히 삼성전자 주총 때마다 참석해 삼성 공격에 앞장서 ‘삼성 저격수’로 불리기도 한다. 이같은 개혁적 성향의 장 실장이 문재인 정부의 정책 컨트롤타워를 책임지게 되자 재계의 긴장감도 높아졌다.

인선 발표 후 현재까지 ‘장하성표’ 개혁정책의 청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간 장 실장의 발언을 종합해보면 큰 그림은 그릴 수 있다. 핵심은 ‘양극화 해소’와 ‘재벌개혁’이다.

장 실장은 지난달 21일 인선 발표 후 청와대 춘추관 브리핑실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모든 사람의 삶은 일에서 시작되고, 일을 하는 이유는 소득을 내기 위한 것”이라면서 “외환위기 이후 20년 동안 국가경제는 크게 성장했지만 가계소득은 그만큼 늘지 않았다. 소득을 만들기 위한 일자리 그리고 그 소득으로 국내 수요가 창출돼 기업 투자가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불평등 해소의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한 일자리 창출과 양극화 해소에 정책구상의 방점을 두겠다는 의미다.

한국 사회의 일자리 및 양극화 문제를 바라보는 장 실장의 시각은 지난 2015년에 발간한 저서 ‘왜 분노해야 하는가’에서도 확인된다. 이 책에서 장 실장은 “한국이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을 빠르게 늘려왔음에도 불구하고 불평등 완화 효과가 낮은 이유는 원천적인 분배의 불평등이 악화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의 불평등 구조는 재분배 정책만으로 교정할 수 있는 범주를 이미 넘어섰다. 때문에 근본적인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원천적 분배’, 즉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을 직접적으로 해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장 실장은 임금과 고용의 불평등을 야기한 원인으로 대기업 독식 구조에 주목했다. 그는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의 삶이 더 나아지지 않고 소득 불평등이 악화됐다는 것은 성장의 성과가 골고루 분배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그 근원에는 노동소득으로 분배돼야 할 몫과 중소기업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을 재벌 대기업이 독차지하고 있는 고용구조와 기업 구조가 있다. 그 결과 절대 다수의 국민들과 중소기업은 패자가 됐고 대기업은 승자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 실장은 그러면서 “잘못된 임금 분배 구조와 고용구조, 기업구조를 개혁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불평등을 완화하는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때문에 장 실장에 대한 인선 발표 후 재계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재벌 때리기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제기됐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장 실장은 “재벌개혁에 ‘두들겨 팬다’는 표현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며 선을 그었다. 대신 “재벌개혁을 한다는 것은 새로운 강자, 새로운 중소기업의 성공 신화가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라며 “기존 재벌에 인위적·강제적 조치를 하더라도 그 빈자리를 메울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성장이 없다면 오히려 문제가 된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장 실장이 재벌개혁을 추진하더라도 ‘재벌 해체’와 같은 급진적인 개혁이 추진될 가능성은 낮다. 대신 △소액주주 권한 확대를 통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나 △일감몰아주기·납품단가후려치기·횡령·배임·탈세 등 불공정행위를 바로 잡는데 방점을 둔 점진적 개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에서는 장하성 실장의 침묵이 예상보다 길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명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이렇다 할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해소 문제를 놓고 경총이 반발할 때도 침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계는 긴장하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태풍 직전의 고요함이 느껴진다. 칼을 빼들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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