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생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만약 자신의 꿈이 학문을 하는 것이라면 배우자를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고. 일정한 연봉이 보장되는 교사나 공무원과 결혼해야 꾸준히 공부를 지속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공부만 해서는 일정한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지만 내심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공부를 지속하기 위해선 사랑도 하나의 도구로 삼아야만 하는 사회. 곱씹어볼수록 씁쓸한 현실이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이러한 현실을 담아낸 충실한 보고서다. 한번 생각해보자.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짜리 학생들 중 부모의 도움 없이 대학 입학금과 등록금, 월세, 식비, 교재비, 통신비, 주거비 등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 물론 가정형편이 넉넉해서 이 모든 비용을 손쉽게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결국 많은 학생들이 선택하는 최후의 수단은 바로 대출이다. 이렇게 얻은 빚은 학기가 지남에 따라 점점 늘어나고, 졸업할 때쯤 되면 수천 만 원에 달하는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된다. 혹시 대학원이라도 진학하게 되면 1억 원에 이르는 빚을 떠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우리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가난해진다는 역설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하기에는 임금수준이 턱없이 낮다. 졸업한 후에 직장을 얻어 대출금을 갚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 같이 청년실업률이 높은 시기에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렇다면 대학에 안 가면 되지 않냐고? ‘일단 대학은 나와야’ 기회가 열리는 사회에서 그러한 길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젊은이들이 이 나라를 헬조선이라고 부르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것을 어찌 ‘네가 더 열심히 노력하지 않은 탓’이라고만 몰아붙일 수 있을까.

살인적인 등록금, 비인간적인 장학금 지원절차, 가난한 학생들에게 전화로 협박하며 상환을 강요하는 한국장학재단 등 저자는 한국사회의 여러 구조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학생들은 대부분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며,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인간관계를 꺼리고,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잠을 설친다. 미래가 밝기라도 하다면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저당 잡힌 미래는 암울하기 짝이 없다. 결국 수많은 대학생들이 인생의 날개를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나락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결론을 맺으며 네 가지 방안을 내놓는다. 첫째, 등록금을 대폭 인하하거나 대학교육을 전면 무상화해야 한다. 둘째,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더라도 불합리한 시스템에 저항하며 당당하게 살아가자. 셋째, 대학이 아니더라도 청년들이 배움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장소와 플랫폼이 필요하다. 넷째, 기본소득을 비롯한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저자의 문제의식에는 전적으로 공감하면서도 이러한 해결책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는 조금 의문스럽다. 우선 등록금을 인하하는 문제부터 살펴보자. 한국대학의 수입원은 크게 등록금과 정부 지원으로 나뉘는데, 등록금을 줄이면 대학은 학생들에 대한 투자부터 가장 먼저 줄이기 마련이다. 다시 말해 교육의 질이 하락한다는 이야기. 이는 서울시립대의 반값등록금을 둘러싼 논쟁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이다. 반면 등록금을 인상하는 데는 커다란 사회적 부담이 따르기 때문에 대학은 항상 정부 지원에 사활을 건다. 실은 정유라 사태도 교육부의 지원을 받기 위한 프라임 사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지 않았던가.

보다 현실적인 방안은 영국의 사례를 참고할 수 있을 것 같다. 영국은 1998년까지 대학 무상교육을 실시하다가 이후 값비싼 등록금을 도입하는 길을 밟았다. 왜 그랬을까? 학생의 수는 증가하는데 비해 자원은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에서 발생하는 교육의 질 저하를 막기 위해 대학교육은 유료화 되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영국 정부는 학생들에게 직접 지급되는 보조금과 대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대학에게 지원되는 돈은 확연히 줄어든 반면, 학생들이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확연히 늘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상환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까?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을 얻었을 경우, 그리고 거기서 받는 월급이 일정 수준 이상(£21,000)인 경우 그중 일부(9%)가 매달 자동적으로 세금과 함께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돈이 있건 없건 추심을 강행하는 한국장학재단과 비교하면 훨씬 인간적인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 있을까?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없애는 대신 등록금 인상과 기부금, 기여입학제에 대한 규제를 풀어주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공립대학에 지원을 집중해 등록금을 대폭 인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동시에 학생들이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보조금과 대출을 크게 늘려야 한다. 대출 상환제도 역시 좀 더 인간적으로 다듬어야 할 것이다. 최소한의 소득을 올리지 못한다면 추심을 유예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학문을 대하기에 앞서 최소한 인간으로써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숨을 쉬며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충분히 배우고 공부하며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임하영

1998년 끝자락에 태어났다. 지금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는 대신 홈스쿨링으로 공부했다.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펼져질지 잘 알지 못하지만,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며, 정치, 경제, 사회, 역사, 철학에 관심이 많다. 최근 <학교는 하루도 다니지 않았지만>이라는 제목의 에세이집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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