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집으로 끌어다 놓고, 집안사람들은 전부 나를 모르는 체했는데, 그들의 눈빛도 다른 사람들과 완전히 똑같았다. 서재로 들어가자 밖에서 문을 잠갔다. 꼭 한 마리 닭이나 오리를 가둬놓듯이 말이다.

─ 루쉰, <광인일기> 중 ─

 

99년 전 소설 루쉰의 ‘광인일기’에서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는 정신장애인은 한 마리의 닭이나 오리 취급을 받으며 집에 감금당한다. 주변에 어떤 피해를 주지 않고, 단 한번도 사람을 해친 일이 없는데도.

2017년도의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30일 강제입원을 어렵게 하는 개정 정신보건법이 시행됐지만, 여전히 정신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병원에 강제로 입원당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들을 위해 외롭게 그러나 열심히 뛰는 인권 변호사가 있다. 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인 권오용(58) 변호사다.

 

권오용 정신장애연대 사무총장. <사진=월요신문>

 

지난달 25일, 개정 정신보건법 시행 직전에 그를 만났다. 그는 지난해 9월 정신보건법 24조에 대해 전원일치로 ‘헌법 불합치’를 이끌어낸 노련한 변호사다. 그 과정의 어려움에 대해 그는“정신보건법 24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7번이나 했는데 모두 헌재까지 가지 못하고 법원에서 기각당했다”고 토로했다. 칠전팔기셨네요, 하고 물으니 “헌재가 좀 전향적으로 결정했으면 했는데…사실 좀 실망했다”며 허허 웃었다.

권 변호사는 ‘공안 검사’ 출신이다. 85년도에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88년도에 마산지방검찰청 검사로 발령받았다. 당시 29세의 젊은 나이였다. 공안 검사가 어떻게 인권 변호사가 됐을까. 그 사연을 직접 들어봤다.

국회 입법청원 활동하는 권오용 사무총장(가운데). <사진=월요신문

인권 변호사가 ‘공안 검사’ 출신이라니 상당히 의외다. 사연이 있었나.

그때는 나이가 어렸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하라는 대로 했다. 사정 보지 않고 여러 사람 잡아들였는데 적성에 안 맞았다. 그런 걸 무시하고 해야 하는데 성격이 여리니까 무시가 안 되더라. 일은 쌓이는데 부담은 크고 스트레스 쌓이고…연말 쯤 되면 일이 정말 많아지는데 잠도 못 자고 술을 많이 마시는 생활을 반복했다. 그러다 결국 93년도 겨울에 극도의 불안감에 빠지게 돼 병원에 입원했다.

 

치료하면서 힘든 일을 많이 겪으셨을 것 같다

벗어나는데 정말 힘들었다. 터널같고 암흑같은 시간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하니 ‘그런 일이 있었지’라고 생각하지만, 그때는 가족들도 나도 아무 희망이 없었다. 지인이 운영하는 부산의 한 병원에 입원했다. 그런데 그냥 입원시켜놓고 약 주는 것 말고는 다른 걸 안했다. 어려움을 호소하면 주사를 놔주고, 그럼 잠이 들고. 자꾸 약을 먹으니까 나중에 부작용이 생겼다. 지금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사람을 다루면 안 되는 거였다. 의학적인 지식이 없으니까 그냥 의사가 알아서 하나보다, 그렇게만 생각했다. 나중에 의대 교수인 처남이 부산에 내려와서 나를 보더니 ‘여기 오래 있으면 안 된다. 망가지겠다’며 퇴원하라고 했다. 그때는 강제입원 제도가 없었는데도 퇴원이 어려웠다. 병원비를 다 내고, 현직 검사에 의대 교수가 퇴원하겠다고 하는데도 퇴원을 안 시켜줬다. 결국 처남의 도움으로 퇴원해서 서울로 왔는데, 좋은 환경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나중에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우울증이 왔다. 세상에 부모님이 안 계시니까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검사하다가 이렇게 망가졌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완쾌됐나

우울증은 하루아침에 낫지 않는다. 그때 나는 스스로를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약을 버리며 나으려고 애를 썼다. 교회에 다니면서 조금씩 회복했는데 아내의 도움이 컸다. 아내는 내가 병이 있는데도 지혜롭게 행동했다. 내 망상에 대해 화내지 않고 ‘그래 그래’하면서 들어주고 안심시켜줬다. 어떻게 보면 나는 혜택을 입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혜택을 입지는 않는다. 경제적으로 어려우면 그런 도움을 못 받는다.

 

언제부터 정신장애인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나.

95년도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2000년도에 사회복지 공부를 시작했는데, 거기 멘탈 헬스라는 분야가 있다. 책에서 보면 외국은 이미 50-60년대부터 정신장애인의 탈원화, 즉 병원 밖 치료가 도입됐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책은 정신장애인을 병원에 가두는 등 거꾸로 가서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개인적인 경험은 해 봤지만 정신장애인의 전체적인 상황은 잘 몰라서 정신보건센터 전문가들과 스터디를 하면서 전모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정신장애인의 병원 수용보다 탈원화가 맞다는 결론을 얻고 행동으로 옮겼다. 강연을 다니고 정신과 의사들과 미팅을 하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렇게 열심히 하다보니 시에서 정신장애인의 퇴원 심사를 맡겼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활동해도 탈원화 진행은 잘 안 됐다. 왜 그럴까, 고민하다가 탈원화가 쉽지 않은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정신장애인들이 스스로 힘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0년도에 정신장애인 가족들과 정신보건 전문가들을 모아 함께 정신장애연대(카미)를 설립했다.

 

정신장애인 심사를 하면서 느낀 점은.

정신질환자의 재입원 심사는 공무원 3명, 변호사 1명, 정신과 의사 1명으로 총 5명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맡는다. 그런데 그때 기록을 보면 1년에 퇴원 기록이 1명도 안 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위원들은 환자 얼굴 한번 못 보고, 의사는 사인만 해 준다. 그래서 환자들이 어떤 상태인지 직접 보기 위해 병원에 한번 가보자고 했다. 가 봤더니 환자들이 멀쩡했다. 환자 중에는 정말 심각한 사람도 있었지만 멀쩡한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내 생각엔 현재도 정신입원한 사람들 중 절반은 정상인이라고 생각한다. 얼굴 한번 보지 않고 6개월마다 100여명을 계속 사인만 하면서 재입원시키니 양심에 가책을 느껴 중간에 그만 뒀다.

 

정신장애연대(카미)에서 어떤 활동을 했나.

카미는 초창기부터 국회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하고 장애운동가나 여러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포럼을 열었다. 이후에도 국내 정신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을 국제사회에 알려왔다. 2014년도에는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 ‘카미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했고 아태장애인포럼(APDF)에서 정신장애인의 강제입원 문제를 놓고 전문가 미팅을 했다.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공식적인 행사는 아니지만 참여자 의견을 말하는 사이드 이벤트 시간이 있는데 그때 병원에서 학대당하고 감금당한 사진을 보여주고 발표했다. 이후 유엔에서 강제입원이 유엔 협약에 반하니 폐지되어야 한다고 정부에 권고했다. 또 강제입원 피해자들과 헌법학 교수 등 200여명과 함께 국가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2014년도에는 정신보건법 24조에 대해 헌법 소원을 냈다.

 

인권 변호사를 하며 기억에 남는 일은.

박경애씨 사건이다. 강제입원 피해자인데, 작년에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결국 이 분 사례로 헌법 불합치 결정까지 났다.

2013년도 12월에 신사동 동장님하고 부동산업 하시는 60대 남성분이 찾아오셨다. 박경애씨가 자기 동네 사는 아주머니인데, 멀쩡한 사람인데도 자녀들이 강제입원을 시켜서 퇴원을 못하고 있으니 도와달라는 거였다. 내가 돕고 싶어도 본인 의사를 들어야 하니까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분이 자기는 고아로 컸다면서 ‘고아와 과부는 하나님이 돌보신다고 했다. 그래서 꼭 하나님이 돌보실 거라고 믿는다’고 말하더라. 그러면서 퇴원하게 해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그래서 만나기로 했는데, 법적 조치가 들어갈 것 같으니까 병원에서 이분을 돌연 퇴원시키고 강화도에 있는 병원으로 몰래 옮겨버렸다. 어찌어찌 다시 연락이 닿아 접견하고 법적 조치에 착수했다. 헌법소원을 하려면 소원에 맞는 대상자가 있어야 하는데, 박경애씨는 입원한 경우라서 유리했다.

 

헌법 불합치 결정까지 2년이 걸렸다. 왜 그랬는지 과정이 궁금하다.

불합치 결정까지 7번 각하되는 과정이 있었다. 처음엔 각하 당했다. 그때 (각하한) 주심이 이정미 헌법재판관이었다. 8번째는 법원에서 위헌재판을 제청하니까 그 권위를 인정해 헌재에서 전원재판부가 열렸다. 헌재에 자료를 많이 제출했다. 정신보건법이 국제법 위반이고 적법한 절차도 없이 인신 구금하고 자유를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가지 법리를 들이대고 외국의 판례, 학자들 논문, 유엔 권고문 등을 제출하고 헌법학 교수하는 친구들 자문도 많이 받았다. 결국 2016년 9월 29일 전원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났다.

헌재 판결은 나라 사정과 국민 여론, 예산 등을 파악해서 적당히 타협하는 정치적인 경향이 있어서 크게 기대 안 했다. 그때 헌법재판관이 판결문을 낭독하는데, 내용이 점점 헌법 위반으로 선고될 것 같았다. 결국 전원일치 헌법 불합치 결정이 내려졌고, 결정문을 보니 그동안 자료에서 밝힌 내용을 헌재가 다 인정했다.

 

헌재 판결이 났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미흡하긴 하지만 정말 굉장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좀 실망했다. 헌재에서 좀 더 전향적으로 결정을 내리면 더 좋았지 않았겠나 싶었다. 유엔 권리협약 12조에는 ‘법적 평등’이라는 규정이 있다. 정신장애로 발달이 느리거나 현명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더라도 본인 의사 결정은 본인이 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치료결정에 동의하고 강제입원 시키는 건 차별이고 유엔 협약 위반이다. 인간 존엄성의 본질을 생각하면 자기 결정을 남이 대신해선 안 된다.

 

정신장애인들이 바깥에 활보하면 위험하다는게 일반인의 생각인데 헌법재판소도 그런 부분을 고려하지 않았을까.

정신장애인이라고 해도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는 확률은 정상인보다 현저하게 낮다. 또 ‘치료보호감호법’이라고 해서 정신장애를 가진 범죄자를 치료하는 법률도 있다. 이미 정신장애인의 범죄 예방 대책이 법적으로 있는데 왜 이중으로 (강제입원 조항을) 넣어야 하나. 장애가 있어도 한 성인의 자기 결정을 남이 대신하는 건 법적 차별이다.

사실 정신병원에 있는 분들은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여리고 약한 사람들이다. 강제입원의 또 다른 이유는 ‘치료’인데, 정신병은 증상만 억제하지 원인을 모른다. 약만 먹어도 되는 거면 입원 필요 없이 약을 처방하면 된다. 강제입원 시킬 이유가 없다. 병원에 갇히면 오히려 사람이 더 망가진다. 갑자기 사회와 단절돼 직장도 못 다니고 가족들에게도 버림받는다. 치료를 폐쇄된 공간에서 할 게 아니라 열린 공간에서 인도적으로 해야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 등, 정신장애자들의 범죄가 사회 문제가 되는게 오늘의 현실이다. 법원에서도 정신장애자로 판단되면 정상인과 양형에서 차이를 둔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그런 예외와 차별을 없애야 한다. 장애인이라도 범죄자는 범죄자다. 따라서 범죄에 대한 처벌을 받으면 된다. 아무리 정신장애인이라도 정신병원에 가두는 것보다 감옥을 더 두려워한다. 대신 감옥에서 치료를 받게 해 줘야 한다.

 

장애인 인권 변호사로 활동해오면서 힘든 점은.

어려움은 항상 있다. 일단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적고 이해도가 낮다. 환자들이 나와서 사고치고 범죄 저지르지 않을까 이렇게만 생각한다. 내가 만나본 장애인에 대한 느낌은 다르다. 처음엔 무기력해보이지만 보석 같다. 모두 똑똑하고 소중하다. 정신장애 때문에 사회에 뒤처져 자기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잃은 것뿐이다. 나와 함께 활동하는 장애인 중에는 서울대 출신도 있고 우수한 분들이 많다.

 

정부와 정치권에 바라는 점은.

국제법이 만들어지면 이에 맞춰 실천이 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느리다. 국회가 자체적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데 인권단체에 ‘법안 만들어 와라’고 한다. 하루하루 생계가 버겁고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만들겠나. 우리가 입법청원을 하지만 원칙에 따라 법을 만들고 공포하는 곳은 국회고 정부다. 그런 부분을 좀 신경써주면 좋겠다.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그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어디로 가시냐고 물으니 청각장애인 재판이 있단다. 무슨 재판인지 궁금해서 다시 물었더니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다며. 연금 지급을 거절당한 청각장애인을 위해 변론해야 한다는 것만 말했다. 사람들이 그를 장애인 인권변호사로 부르는 까닭을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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