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 고령군 지산동의 대가야 왕릉급 고분 발굴현장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김주경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가야사 복원’ 지시를 놓고 학계의 의견이 분분하다. 상당수 학자들은 가야사 복원 그 자체에는 찬성하는 분위기이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순수한 학술 연구 사안이 자칫 정치적 논리로 변질될 가능성 때문이다.

대표적인 학자가 하일식(연세대 사학과⁕한국고대사학회 회장) 교수다. 하 교수는 4일 한국고대사학회 홈페이지를 통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첫째, 대통령이 역사의 특정 시기나 분야 연구나 복원을 지시하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 설사 그런 생각을 갖고 있더라도 학계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의 논의를 거쳐 중장기적 지원책이 마련되도록 하면 될 일이다. 역사 연구자들이 대통령의 지시로 그동안 안하던 연구에 새삼 몰두하고....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가야사 연구가 다른 분야에 비해 부진한 것은 배경과 이유가 있다. 이것들이 대통령의 지시로 단기간에 나아질 수는 없다.

대통령의 지시가 있으면 관료들은 예산을 배정할 것이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추진실적을 청와대에 보고해야 한다. 연구비가 책정되면 거기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지자체들은 전시관이다 박물관이다... 건설업계와 결합하여 공사를 벌일 것이며. 영호남 교류다 뭐다 해서 여러 지자체들이 동서교류축제, 가야 축제를 벌이면서 예산을 쓰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계좌에 실제 입금되지 않고 영원히 입금 안 되는 '경제유발효과'를 들먹일 것이다.

각종 발굴이 짧은 기간에 추진될 것이며, 복원이란 명목으로 여러 사업들이 추진될 것이다. 이런 양상은 불을 보듯 예상된다. 예전에도 흔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벌써 관련 지자체들이 고고학, 고대사 연구자들에게 연락해온다는 소문도 들린다.

문화 관광 등은 또 다른 차원이겠지만, 역사의 특정 시기 연구를 대통령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역사를 잘못 가르친다고 국정교과서를 지시하고, 혼이 비정상이라는 등. '상고사 정립' 방침을 지시했던 박근혜 정권의 악몽을 벗어난지 아직 몇 달 지나지도 않았다.

둘째, 가야사를 연구, 복원하는 것이 영호남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사업이라는 이야기는 "역사를 도구화"하는 발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언급은 지자체들이 예산 받으려고 내세우는 기획 슬로건을 그대로 수용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문제이다. 실제로 이런 사업을 벌여서 영호남의 벽이 허물어진다고 믿는 사람이 학계에 있을까? 내 주변에는 없다. 고고학이나 역사,  문화를 연구하는 사람들 중 누가 이런 이야기가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이겠는가? 여지껏 그런 것이 없어서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생겨나고 이어지고 있는가?!

농담이지만, 영호남 '지자체 장들의 친목'이 돈독해질 수는 있을 것이다. 막대한 예산을 받아 이리저리 다니며 행사 벌이고 기공식하고... 웃자고 하는 이야기이지만, 가야 고분에서 발견되는 보배고둥, 이모가이 조개를 찾아서 시군 의원들과 함께 북큐슈나 오키나와를 찾는 행사를 할 지도 모르겠다. 농담이지만, 그런 일이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런 주장과 달리 문 대통령의 지시를 환영하는 학자도 있다. 대표적인 학자가 가야사연구의 권위자로 꼽히는 주보돈 경북대 사학과 교수다. 주 교수는 7일 본지통화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그동안 정체돼 있던 가야사 복원이 탄력받게 됐다”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어 주 교수는 “가야사 복원은 특정지역에 치우친 것이 아닌 영·호남에 걸쳐 두루 할 수 있는 사업이어서 서로 간의 벽을 허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또 “문 대통령 지시에 담긴 뜻은 학문적으로 위축됐던 가야사를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한 차원 더 발전시켜나가자는 의미로 봐야 한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이어 “벌써부터 가야 문화권에 속해있는 시군 지자체들이 마케팅을 펼치며 예산 획득 경쟁에 돌입한 모습을 보이는 데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했다.

주 교수의 이런 지적은 가야사 복원에 드는 예산이 효율성 있게 사용돼야 한다는 뜻이다. 김해시는 2000~2004년에 걸쳐 1290억원의 예산을 투입해 대성동 고분군 등 가야사 1단계 복원 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이후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가야 왕궁 복원사업도 추진하고자 했으나 예산 부족으로 중단됐다.

주 교수는 “당시 가야사 복원과정에서 상당 수 예산지원이 김해에만 이뤄졌다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복원 사업에 집중한 나머지 학문적 연구기반은 제대로 조성되지 못했다는 것. 그는 “예산을 지원해 사업이 추진될 당시 가야사 연구를 해왔던 다른 지자체에서 엄청나게 반발했다. 왜냐하면 가야사 전체에 대한 복원연구가 이뤄져야 하는데, 김해라는 지역 특성에 맞춰 가야 역사에 대한 해석이 이뤄지는 등 자칫 역사 연구의 부작용이 우려됐다”고 말했다.

주보돈 교수는 “가야사 연구복원에 영·호남이 함께 참여해 소통하는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고대사를 연구하는 일에 정치논리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