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와 통기타 배우는 어르신, 치안은 덤이죠”

문화파출소 강북. <사진=월요신문>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가정폭력 피해자 A씨는 매주 토요일 동네 파출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문화체육부와 경찰청이 협력해 만든 ‘문화 파출소’에서 진행하는 집단미술치료를 받기 위해서다. 경찰의 든든한 보호는 ‘덤’이다.

문화파출소는 치안센터 공간을 활용해 범죄피해자 심리치료와 지역주민의 문화생활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지난해 6월10일 서울 강북에 위치한 수유6치안센터(문화파출소 강북)에서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전국에는 9개소의 문화파출소가 운영 중이다.

문화파출소 개소 1주년을 맞아 수유6치안센터를 찾았다. 8일 오전 10시 30분 치안센터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자지러진다. 웃음소리를 따라가니 지역 유치원과 연계한 문화 프로그램 ‘오감자극 놀이극’이 센터 2층에서 한창이다. 이 외에도 문화파출소에서는 통기타반, 꽃꽂이, 손뜨개, 발레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매주 월·화·목요일마다 열린다. 지난해 6월 개소식 후 지금까지 총 641명의 주민들이 문화파출소를 찾았다. 프로그램 참여자를 대상으로 한 자체만족도 조사 결과는 95.6점, 매우 높은 수치다.

지역 유치원과 연계한 프로그램 오감자극 놀이극. <사진=월요신문>

 

어려움은 없을까. 문화보안관 최소진 대표는 “시작이 만만하지는 않았다. 주민들과 잘 협력하기 위해 여러 차례 설명회 과정을 거치고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며 “파출소 담당이신 센터장님의 역할도 중요한 것 같다. 치안센터에 동네 주민들이 드나드니 꺼려하는 센터장님이 간혹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 문화프로그램 운영 사업자가 구해지지 않아 난항을 겪은 제주 서문파출소에 대해서는 “제주도는 지역 특성상 외지인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어렵다. 아직 사업시행 초기인 만큼 어느 정도 시행착오를 이해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문화파출소 강북의 강점은 ‘주민밀착형’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라며 “프로그램 강사를 지역 주민을 발굴해 선정했다. 기존 문화센터는 단순한 강사-수강생의 관계에서 끝나지만 문화파출소는 주민들이 능동적으로 문화생활을 꾸려가는 것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달부터는 지역 동아리 지원 프로그램을 신설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추리닝 발레’와 ‘꽃을 만나는 시간’이다. 최 대표는 “지역에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계신다. 어르신들이 발레를 배우고 싶어 하시면서도 발레복 타이즈를 부담스러워하시는 경우가 있어서 편안하게 추리닝을 입고 배우는 발레 프로그램을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추리닝 발레' 수업을 듣는 주민들. <사진=월요신문>

 

주민들의 반응도 긍정적인 편이다. 지난해 문화파출소를 열자마자 수강등록을 한 강명화(64)씨는 “작년에 정년퇴직 후 문화수업 3개를 신청해 들었다. 지금은 추리닝 발레와 통기타 수업을 듣고 있다”며 “지난해 11월 초에 수업이 끝나고 4월 새로운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손꼽아 기다렸다. 계속 수업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파출소장님과 함께 통기타 수업을 듣는데, 가장 못하신다”며 “예전에는 동네 파출소장이 누구인지도 몰랐는데 이렇게 주민들과 함께 하니 좋다”고 덧붙였다.

치안센터를 담당하는 김춘식 센터장은 경력 30여년 차 노련한 경찰관인 동시에 통기타 열혈 수강생이다. 김 센터장은 “예전부터 통기타를 배우는 게 소원이었다”며 “마침 문화파출소 프로그램에 통기타가 있어서 일과시간 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어 귀찮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평소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귀찮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젊었을 때는 흉악한 범인들과 마주하다가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니 좋다. 앞으로도 경찰관들이 주민들과 함께 지내며 (문화파출소에) 적극 참여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는 “파출소는 1인 근무라 남는 공간이 많은데, 지역주민에게 개방되어 공간을 잘 활용하니 좋다”고 덧붙였다. 김 센터장은 매주 화요일 지역주민들과 먹거리를 나누는 ‘나눔밥상’ 시간에 직접 파출소 옥상에서 재배한 상추와 고추를 내놓기도 한다.

김춘식 소장. <사진=월요신문>

김 센터장과 인터뷰를 마치니 때마침 유치원 어린이들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내려왔다. 아이들이 그를 보고 달려들었다. 그러자 그가 아이들을 한아름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곳이 왜 문화파출소인지 깨닫게 한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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