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태 분식회계추방연대 대표

세월호 사고가 있었고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하여 선실로 들어간 선생님들 중에 사망한 분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분들 중에서 두 분이 기간제 교사였다고 한다. 이 두 분은 기간제 교사를 이유로 순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고 나서야 순직으로 인정받는 절차가 진행 되게 되었다.

이것은 과거 조선시대에 있었던 신분제와 전혀 다름이 없는 것 아닌가? 오죽하면 순직을 인정하라는 소송을 제기하자는 여론이 사회에 큰 반응을 일으켰을까? 한 마디로 국가와 제도권이 비정규직을 지켜야 하는 마지막 선이라도 되는 것처럼 버틴 것에 불과하다. 이런 저런 이유에 매달리지 않고 ‘기간제 교사 순직인정 하라는 지시했다’라는 기사를 보면서 속이 후련하다는 느낌을 대부분의 국민이 가졌을 것이다.

교육계에서는 비정규직 교사를 기간제라 칭한다. 계약을 맺고 근무하던 기간 중에 사고를 당하면 당연히 정규직 교사와 동일한 법적 지위가 부여되어야 하는데 무슨 논리로 지금까지 반대를 한 것일까? 무슨 핑계거리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세월호 선장처럼 제 혼자 살기 위하여 도망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학생들을 구하기 위하여 선실로 도로 내려갔던 선생님들이었다. 그런데 기간제라서 순직 인정이 불가하다는 논리는 기가 막힐 일 아닌가? 비정규직이 조선시대의 천민도 아니고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이것이 비정규직 문제의 한 단면이다.

더구나 필자가 듣기로는 학교에서 교직원 회식이 있으면 기간제 교사는 빼고 한다고 한다. 그리고 현대자동차에서 있었던 ‘왜 쳐다봐? 비정규직 폭행사건과 비정규직과 함께 노조원이 될 수 없다고 결정한 기아자동차노조 결정 등이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문화’의 실상이다.

반면에 2016년 삼성전자의 남자 직원평균 급여가 116백만원이다. 반면에 삼성전자 하도급거래 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의 남자직원 평균급여는 49백만원이다. 이 정도 차이는 적정할까? 이렇게 질문하면 ‘삼성전자는 한국의 최고 회사인데 그 정도 차이는 당연한 것 아닌가?’ 라며 오히려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삼성전자의 남자직원은 연간 지급급여가 8.3조 원이며 여직원은 연간 지급급여가 2조원이다. 이를 인당으로 환산하면 남자직원이 116백만원이며 여직원이 81백만원이다.

삼성전자 1차 제조하도급업체 중의 하나인 주성엔지니어링은 ‘상장업체’이며 주식시장에서는 이름이 잘 알려진 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주성엔지니어링의 남자직원 일인당 연평균급여는 49백만원이고 여직원은 29백만원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의 일인당 평균급여도 동종업계와 비교하면 적지 않은 금액이나 삼성전자와 비교해보면 남자직원 일인당 평균급여는 삼성전자의 42%이며 여직원 일인당 평균급여는 삼성전자의 34% 수준이다. 더구나 주성엔지니어링의 용역하도급 직원은 최대로 보더라도 35백만원 정도를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삼성전자 남자직원 평균급여는 116백만원이고 주성엔지니어링 남자직원은 49백만원이고 주성엔지니어링의 비정규직은 35백만원 수준이 된다. 이러한 소득차이가 정상으로 생각된다면 독자의 사고방식에 문제가 없는가 생각해볼 일이다. 어찌 되었든 이런 것을 ‘소득차이 과다’ 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사회양극화’ 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저런 소득차이가 한국의 국민소득 배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를 비교해서 살펴보자. 한국의 상위1%가 국민전체 소득의 14.2%를 차지한다. 상위 10%가 국민전체 소득의 48.5%를 차지한다. 따라서 상위 10%에서 1%로를 제외한 나머지 9%가 전체 소득의 34.3%를 차지한다. 당연히 소득의 불평등이 미국 다음으로 심각하다.

소득상위 1%에는 대기업 및 공기업과 주요언론의 임원이상이 해당된다. 나머지 상위 9%에는 대기업과 공기업 주요언론사의 직원들이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잔여 90%는 이에 속하지 못한 하도급업체 및 각종 중소기업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앞에서 예를 든 것과 같이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소득격차 심화를 누가 만든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 재벌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할 수가 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첫 번째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제도와 문화에 대한 책임은 정부와 정치권에 있다면, 두 번째 문제 소득격차 심화는 재벌이라 칭하는 대기업 및 공기업에게 그 책임이 있다.

그러면 선진국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하였을까? 필자가 근무하였던 미국의 노동자는 2년의 비정규직이 끝나면 정규직 전환이라는 원칙이 있다는 한국제도를 부럽다고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파견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이 인상 되지 못하는 더 나쁜 결과만 초래하고 있다. 이것은 기업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공직 사회도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대부분의 기업 및 조직이 2년마다 새로운 파견직을 채용하는 꼼수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선진국에서는 파견근로직으로 10년을 한 직장에 다닐 수도 있다. 따라서 비정규직 직원의 임금수준은 늘 정규직의 일정수준을 유지한다. 매년 정규직 인상과 동일한 인상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규직은 매년 3~5% 인상을 하지만 비정규직은 2년마다 늘 신규직원을 뽑는 것이니 인상이 거의 없다.

따라서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면 당연히 그 차이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처음에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의 70% 수준이라 하자. 그러면 그 비율이 1대 0.7이다. 그러나 5년과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하는가를 살펴보자. 5% 인상을 전제로 계산해보면 5년 뒤에는 1.2와 0.7 그리고 10년 뒤에는 1.5와 0.7이 된다.

지금과 같은 법과 제도 그리고 기업의 편법에 의하여 구조적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득격차가 매년 커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저 계산에 의하면 5년 뒤에는 정규직의 57%이며 10년 뒤에는 정규직의 47% 수준이다. 소득격차가 가면 갈수록 커지는 이유다. 더구나 1차 제조하도급업체에 대한 납품가격 인하 요구에 의하여 1차 제조 하도급업체 직원의 급여수준은 대기업의 60% 이상이 될 수가 없는 구조이다. 2차 3차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1,2,3차 용역 도급업체 직원은 더 더욱 저 임금에 노출될 수 밖에 없다.

비정규직 차별하는 제도와 문화 그리고 불분명한 파견과 하청관련 법, 여기에 2년에 한 번씩 신규 채용하는 악습과 용역하도급을 악용하는 교묘함 등이 한국의 사회양극화를 만들고 쓸데 없는 소송을 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파견근로법을 제정할 때 다음과 같이 하였다면 지금과 같은 부조리한 모습은 사라졌을 것이다.

만약 ‘파견근로법’ 제정 시에 제한 없이 ‘파견근로직’을 허용하고 오히려 ‘용역도급’을 금지하였다면 지금과 같은 법적인 혼란은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비정규직을 대기업의 직원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생각과 비정규직을 허용하면 대기업이 이를 악용할 것이라는 우려로 지금과 같은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우스꽝스런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에서 보듯이 한국사회를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선진국과 같은 법체계로 가는 것이 문제해결이 될 수가 있다. 필자의 견해는 이렇다. 완전히 100% 정규직만으로 기업을 운용하라고 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반면에 기업이 파견직과 용역하도급을 무한정 사용하게 하는 것은 터무니 없는 일이다. 선진국은 파견직을 일정 범위내에서 인정하되 용역하청도급을 제한한다.

따라서 다소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하도급거래법에서 제조 및 건설이 아닌 모든 용역거래를 금지하고, 파견근로법에서는 파견근로자를 직종관계 없이 허용을 하되 사용범위 즉 정규직의 몇 퍼센트로 제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현재 진행중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이라는 우스꽝스런 재판은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기업이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간에 직접고용을 해야만 한다. 그러면 문제는 단순해지고 해결하기가 쉬워진다. 선진국이 이렇게 운영하고 있는 것은 이미 여러가지 시행착오를 거쳐서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선언적인 비정규직 대책은 실효성이 없다. 기업들은 용역도급업체 직원들은 비정규직이 아니라며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그러면 세월이 가고 다음 선거시점이 도래한다. 이런 방식으로 대기업이 버틸 것이다. 따라서 말 한 마디 하면 모든 비정규직이 사라진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법을 바꾸면 즉 하도급법에서 더 이상 용역거래를 허용하지 않으면 정규직으로 채용하던가 아니면 파견직으로 채용할 수 밖에 없다. 대부분의 기업이 현재의 하청직원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려 할 것이다. 여기에 비정규직 비율이 정규직의 일정수준을 초과할 수 없도록 법제화만 하면 된다.

그리고 2년이 지나면 정규직 전환하라는 규정을 삭제하면 매년 임금인상이 정규직과 같은 수준으로 진행될 수가 있다. 따라서 해가 가면 갈수록 정규직은 급여가 인상되는 반면에 파견근로자는 늘 신입사원이 되는 식으로 소득격차가 커지는 모순은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삼성전자 정규직 채용만 아니라 삼성전자 비정규직 채용도 신문지면에 등장할 것이다.

“비정규직일지라도 삼성전자 직원의 신분이 좋은가? 아니면 삼성전자 용역하도급 ○○업체의 신분이 좋은가?”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이 삼성전자 비정규직 신분이 좋다 할 것이다. 더구나 비정규직이 임금이 정규직의 70% 이상으로 유지된다면 두 말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법을 변경하자고 하면 야당도 함부로 반대하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선진국이 하고 있는 방법이고 대부분의 근로자도 원하기 때문이다.

병을 완치하려면 ‘대증요법’이 아니라 ‘근원치료법’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제 20년 전에 잘못 제정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소득격차는 더 커지고 소송은 엄청나게 많아진다. 기업은 소송에서 이기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고 전력투구할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낭비다. 이제 하도급거래법과 파견근로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청운용’은 적법하다며 재벌들은 끝까지 버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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