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국민연금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찬성은 득일까, 실일까. 최근 일부 언론은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했다면 1조원의 손실을 입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사가 대표적이다. 반면 해당 기사가 터무니없이 과장됐다는 비판 기사도 있다. 전혀 상반되는 기사를 보며 독자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월요신문>은 어느 기사가 진실에 접근해 보도하는지 살펴봤다.

동아일보는 26일 기사에서 “국민연금이 합병에 반대했다면 최소 1조원의 손실이 발생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는 ▲합병 발표 후 주가상승으로 발생한 3,000억 가량의 이익 ▲합병 실패 시 예상되는 주가하락으로 인한 손실 4,000억 원, ▲삼성물산 경영개선의 실패로 야기될 추가적인 주가하락을 고려하면 국민연금이 입을 손실은 1조원을 초과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사진출처=동아일보 홈페이지 캡쳐>

반면 미디어오늘은 27일자 기사에서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등 일부 언론사의 주장이 비합리적인 가정에 기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3,000억 원에 달하는 주가상승으로 인한 차익은 합병발표 직전일(5월 22일) ~ 실제 합병 직전일(7월 16일)로 기간을 특정했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실제 합병 이후 주가하락으로 발생한 손실은 고려되지 않았다는 것. 게다가 합병 이전 삼성물산의 실적 난조와 주가 하락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측이 의도한 것이라는 의혹도 존재한다. 이러한 지적을 통해, 미디어오늘은 "1조원”이라는 손실추정치를 들어 삼성을 옹호하는 해당 기사를 ‘이재용 호위무사’를 자처한 언론의 그릇된 행태로 규정했다.

<사진출처=미디어오늘 홈페이지 캡쳐>

동아일보, 머니투데이 기사는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이 올바른 결정이었다는 인식을 준다. 찬성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1조원의 손실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를 폈기 때문이다. 하지만 ‘1조원 손실’ 주장의 명확한 근거와 출처를 밝히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해당 언론사는 전문가나 단체의 실명을 밝히지 않고 ‘금융계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렇다면 실제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은 타당한 결정일까. 이는 현재 진행 중인 이 부회장 재판의 핵심 쟁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해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합병이 경영승계를 위한 수단이었다면, 국민연금의 결정은 이 부회장을 돕기 위한 정치적 판단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삼성이 어떻게 국민연금을 움직였는지 수사할 필요가 있다. 반면, 합병과 경영승계가 무관하다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은 동아일보 등의 주장처럼 수익률을 고려한 사업상의 판단으로 이해할 여지가 있다.

당시 삼성물산 주식의 10.2%를 보유하고 있던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주식가치가 지나치게 낮게 평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양 사의 합병에 찬성하여 1,388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국민연금은 2015년 5월 26일 합병 발표 이전 삼성물산의 주식을 매도해 의도적으로 주가를 하락시켜, 제일모직의 대주주였던 이 부회장에게 유리하도록 합병비율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한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배제하고 국민연금 내부 임직원으로 구성된 투자위원회를 통해 의결한 것, 의결 직전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에 의해 위원 3명이 교체된 것도 이재용 씨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정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미 지난 8일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문형표 전 복지부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1심에서 각각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법원에서 합병과 경영승계의 연관성을 인정한 바 있다.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 부회장은 합병과 경영승계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3일 김신 삼성물산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외 삼성임원 5명에 대한 32차 공판에 증인으로 참석해, 양 사의 합병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특검의 주장을 부인했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 또한 합병이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에 실질적인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합병 전 제일모직은 삼성생명의 지분 19.3%,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 7.21%를 보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합병과 상관없이 이 부회장은 제일모직의 대주주로서 삼성전자에 대한 충분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하지만 이는 구 삼성물산이 소유한 삼성전자의 지분 4.06%를 간과한 것이다. 이 부회장 개인 소유의 삼성전자 지분 0.57%와 삼성생명이 가진 7.21%에 4.06%가 추가됨으로서, 신 삼성물산의 대주주가 된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은 강화되었다. 합병 과정에서 순환출자 구조가 강화되어 2015년 12월, 공정위에서 삼성SDI가 보유한 구 삼성물산과 구 제일모직의 주식 500만주의 처분을 통보했지만, 그 중 130만주는 이 부회장이, 200만주는 신 삼성물산이 구매했기 때문에 지배구조가 약화되는 일도 없었다. 결국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동시에 기존 순환출자구조를 해소하고 지배구조를 신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단순화하는 효과도 얻었다.

이처럼 합병과 경영승계의 연관성에 대한 정황 증거는 충분하지만 실제로 합병을 위해 이 부회장 측에서 정부에 청탁을 했다는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상태이다. 재판부는 특검 측에 이 부회장이 정부를 통해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청탁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 28일 재판에서 이 부회장과 최순실 씨의 대면이 예정되어 기대를 모았지만, 최 씨는 증인 출석을 거부했다. 재판은 30일에 이어질 예정이다.

한편 투기자본감시센터 윤영대 공동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국민연금의 결정이 사업상 판단이라는 변호인단 측의 주장에 대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 결정은 정해진 절차를 무시한 것”이며, 합병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손실을 입은 것은 명백하다”고 반박했다. 또한 윤 대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이건희 소유의 재산상속에서 발생하는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2013년 에버랜드의 상장부터 시작된 이재용 재산 증식 과정의 일부”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