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들이 가장 좋아하는 착한기업 되고 싶어요”

폐소방 호스로 만든 가방. <사진=파이어파커스>

[월요신문 김미화 기자] 소방서에서 버려지는 폐소방 호스를 재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곳이 있다. 국내 유일의 소방 패션 브랜드 ‘파이어마커스(Fire Markers)’가 그 주인공이다. ‘소방의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 ‘소방의 흔적이 있는 제품들’이라는 뜻을 가진 파이어마커스. 이곳의 이름에는 소방관의 헌신을 기억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소방관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소방의 인식 개선을 위해 애쓰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29일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관양동에 위치한 안양창조경제융합센터에서 파이어마커스의 이규동 대표를 만났다. 양천, 보라매, 상봉 등에 위치한 공장에서 제품이 만들어지는 터라 딱히 고정 사무실이 필요치 않았던 그는 최근 이쪽으로 거처를 옮겼단다. 앳되어 보이는 얼굴을 한 이 대표가 파이어마커스를 만든 것은 지난 2014년 4월이다. 27살의 어린 나이에 회사를 세우게 된 계기에 대해 묻자 그에게서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는 답이 돌아왔다.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소방관을 꿈꿨던 이 대표는 소방방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한때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우연히 ‘세상을 바꾸는 천개의 직업’이라는 책을 읽은 후부터다. 이 대표는 그 책에서 폐소방 호스로 가방을 만들고, 수익금의 절반을 소방관에게 기부하는 영국 브랜드 ‘엘비스 앤 크레세’(Elvis & Kresse)를 알게 됐다. 평소 아버지를 통해 소방관들의 현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는 한국에서도 이런 브랜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대표는 “소방관들은 만능 서비스맨으로 포장되고 있다. 그런 인식들 때문에 소방관들은 힘이 들 수밖에 없다. 때문에 시민들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소방관들을 응원하는 기업이 있으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며 “소방호스는 소방관이 직접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소방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말했다.

이규동 파이어마커스 대표.

현재 파이어마커스에서는 수명을 다한 폐소방 호스를 활용해 가방, 옷, 지갑, 팔찌 등을 제작하고 있다. 폐소방 호스 수거는 일정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소방서 측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파이어마커스 측이 1톤 용달 트럭을 준비해 호스를 수거해가는 식이다. 이 대표는 “일반적으로 한 달에 한 번 소방서를 방문해 버려지는 소방호스를 수거하고 있다. 한 번에 모아놓고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이 없는 터라 수거 후 물건을 생산하고, 다시 수거를 한다. 서울에 있는 20여개의 소방서를 돌고 있는데 한 소방서당 50-100개 정도의 소방호스가 나온다”고 말했다.

이렇게 수거한 폐소방 호스는 호스 한 개당 세 개의 가방을 만들 수 있는 자원이 된다. 단단하고 두꺼운 소방호스로 패션 제품을 만드는 게 어렵지는 않을까. 제조 과정에 대해서 묻자 이 대표는 “단순 노동이다. 먼저 소방호스를 수거한 뒤 세척을 한다. 그 뒤 원형으로 된 호스를 잘라 펼친 상태로 이어 붙인다. 그 상태에서 디자인 샘플대로 가방이 만들어지게 된다”며 “당초 재단, 배송까지 모두 직접 했으나 1년 전부터는 공장을 통해서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파이어마커스의 폐소방 호스 수거는 소방서 입장에서 반가운 일이다. 소방호스는 화재 현상에서 필수적인 장비지만 폐기할 때는 재활용할 방법이 없는 골칫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폐소방 호스는 폐기물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버려지는 게 일반적이다.

호스 수거가 소방서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이뿐만이 아니다. 파이어마커스는 수익 중 일부를 소방장갑 기증에 사용하고 있다. 지난해만 해도 한 켤레당 6-7만원 하는 소방장갑을 8-90개 기증했다. 이 대표는 “파이어마커스를 시작하면서 소방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늘 했었다. 소방관인 아버지와, 주변에 소방관이 된 친구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다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이 부족해 사비를 들여 장갑을 사는 소방관들의 현실이 눈에 밟혔다. 소방장갑 교체 주기가 3년에 한 번, 5년에 한 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소방장갑 기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선행은 파이어마커스가 고수익을 얻어서 이뤄진 일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이 대표는 “가방 2-3개를 팔면 소방장갑 하나를 살 수 있다. 사실 파이어마커스의 수익이 많지는 않다. 하지만 작게라도 도움을 드린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영리적인 목적으로 수익을 챙기자고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기증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대표는 “소방장갑을 받은 소방관들에게서 인증 사진이 오기도 하고, 감사 메시지를 받기도 한다”며 “그럴 때 뿌듯하고 보람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사진=파이어마커스 홈페이지 캡쳐>

물론 파이어마커스의 사업 과정이 마냥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처음에는 폐소방 호스로 만들어진 가방이 거의 팔리지 않았다. 이 대표가 아르바이트를 해야지만 회사 운영이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파이어마커스는 소방관에게 소방장갑을 지원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그리고 이 일은 오히려 회사를 알리는 계기가 됐다. ‘소방관의 소방장갑을 바꿔주는 착한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이다.

이제 파이어마커스는 패션 브랜드를 넘어 생활 깊숙이 안전을 생각하고, 화재와 재난이 닥쳤을 때 직접 대응할 수 있는 아이템들을 고민하고 있다. 지난해 소화기에 감각적인 일러스트를 그린 작업을 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였다. 특별한 소화기가 있으면 일단 기억이 잘 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보여지는 곳에 소화기를 둔다는 것.

파이어마커스는 지난 2015년 소방복이 일반 시민에게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소방룩 패션쇼’를 열기도 했다. 소방복과 가까워지면 소방차 길 터주기 등 안전 문화도 좀 더 쉽게 확산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 대표는 “시민들이 안전해야 결과적으로 소방관이 안전할 수 있다. 시민들과 소방관을 연결할 수 있는 ‘안전’과 관련 된 제품들을 생각하고 있다”며 “현재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안전 가방과 화재용 마스크다. 생활 속의 안전, 생활 속의 소방을 실현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진=파이어마커스>

이처럼 파이어마커스는 폐소방 호스로 만든 패션 브랜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방 그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이 대표는 “파이어마커스의 목표는 ‘소방을 소방답게 만드는 기업’이 되는 것이다”라며 “패션이 저희의 주력 사업이지만, 소방과 관련된 부분에서 작업 범위를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이 좀 더 안전할 수 있는 사회로 가면 좋을 것 같고, 거기에 파이어마커스가 조금이라도 이바지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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