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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착한 이웃⑲> 바우네 밴드 한경희·최순덕 부부“암 투병 중에도 봉사, 장애인 노약자에게 희망을 부르다”
'바우네밴드' 공연울 마친 뒤 다정한 모습의 한경희, 최순덕 부부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7월 10일 월요일 점심,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다산노인요양원은 한창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다. 오늘의 손님은 ‘바우네밴드’(한경희·최순덕 부부). 이들은 한 달에 두 번씩 이곳을 찾아 노인들을 위해 공연을 하고 있다. 오늘 공연의 첫 순서는 부부의 탱고 시범. 뒤이어 한경희 씨가 그동안 익혀온 민요와 판소리 실력을 뽐낸다. 최순덕 씨도 장구와 색소폰을 연주하며 남편의 열창에 힘을 보탰다. 보름만의 방문이 반가운 노인들도 직접 마이크를 잡고 “내 나이가 어때서”를 열창하며 흥을 올렸다. 조용했던 요양원이 오랜만에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한 시간 남짓의 공연을 마친 부부는 이미 땀으로 범벅이다. 하지만 열띤 반응 덕분인지, 부부의 얼굴에서는 행복한 미소가 떠나질 않는다. 공연 후 찬물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있는 한경희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봉사를 처음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가?

원래 서울에서 경찰로 근무하다가 1998년에 진급하면서 정선으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아내가 우유배달을 했는데, 나도 가계에 보탬이 되려고 같이 했다. 돌리다보니 매일 유제품이 남더라. 대리점에서는 유통기한이 하루만 지나도 폐기하는데, 사실 다 먹을 수 있는 거라 아까웠다. 우유배달을 아침에 하고, 저녁에 남은 유제품을 모아서 정선에 있는 요양원, 독거노인, 고아원 등에 가져다주기 시작했다. 받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셨다.

당시 시설들은 매우 열악해서 냄새도 심하고 지옥이 따로 없었다. 아내가 어르신들을 좋아해 목욕도 시켜드리고 귀청소도 해드렸다. 그러면서 봉사라는 게 뭔지 알아가기 시작했고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전문적으로 공연을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 ‘바우네밴드’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었나.

1998년 정선으로 이사 왔을 때, 하얀 진돗개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강원도에 와서 얻은 반려견이라, 강원도 사람들을 뜻하는 ‘감자바우’를 따서 바우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후 식당을 열었을 때도 ‘행복이 가득한 바우네’라고 간판을 달았다. 식당 이름이 길었는지 이웃들이 줄여서 ‘바우네’라고 불렀다. 그래서 공연을 다니면서 ‘바우네밴드’라고 소개하기 시작했다.

 

- 간암으로 힘들었다고 들었다. 봉사를 계속하기 어려웠을 텐데.

2003년 간암이 발병했다. 절제수술을 했는데도 재발해서, 많이 살아봐야 2~3년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5년 6월 명예퇴직을 했다. 퇴직하는 날 마지막으로 가족사진을 찍었다. 가족들은 그게 마지막 사진이란 걸 몰랐다. 영정사진도 찍었다. 아내에게는 정복을 입고 독사진을 한 장 찍고 싶다고 둘러댔다. 유서도 다 써놓은 상태였다.

명예퇴직을 하고 중국에 건너가 간이식수술을 받았다. 이후 거부반응이 발생해 그해 12월 다시 중국에서 2차 수술을 받았다. 남들은 한 번 받을 수술을 두 번 받았으니, 우여곡절이 많은 편이었다. 두 번째 수술을 받았을 때는 정말 사경을 헤맸다. 하지만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강했고, 곁에 있어준 아내도 많은 도움이 됐다. 간암으로 힘들었을 때는 여유가 없어 봉사를 다니지 못했는데, 2006년부터 다시 봉사를 시작했다.

 

- 2005년에 이식수술을 받았는데, 2006년부터 봉사를 다시 시작하는 게 가능한가.

갑자기 몸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당연히 힘들었다. 나는 거의 집에서 쉬고 아내는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문봉사를 하지는 못하고 어르신들을 식당에 모셔서 음식을 대접했다. 몸이 좀 움직일만해지고 나서는, 따뜻한 음료를 노점하는 어르신들에게 돌리는 일부터 다시 시작했다.

탱고 시범을 보이고 있는 바우네밴드 한경희, 최순덕 부부

 

- 어머니와 아들도 몸이 불편하다고 들었다. 사정이 어려운데 어떻게 봉사할 힘이 나나.

그건 다 아내 덕분이다. 지금은 요양원에 계시지만, 어머니가 18년간 치매를 앓으셨다. 아내가 그동안 식당을 꾸리면서 아픈 나와 어머니를 홀로 보살펴왔다. 어머니 흉보는 것 같아 좀 그렇지만, 시집살이도 어마어마하게 했다. 치매에 걸리신 후에는 용변을 가리지 못하셔서 그 수발도 아내가 다 했다. 그래서 아내가 지난 2012년에는 삼성효행대상도 받았다.

아내는 인생에 무슨 일이 닥쳐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팔자 사납다고 불평할 만도 한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마음이 약해서 남 다치게 할까봐 운전도 못하는 사람인데, 이런 면에서는 정말 강한 사람이다. 각설이 타령으로 유명한 박종수라는 분이 있는데, 아내를 보고 관세음보살님이라고 하더라. 내가 바깥일을 했지만, 사실 우리 가족의 기둥은 아내다. 내게는 인생의 멘토같은 사람이다.

 

- 본격적으로 음악공연으로 봉사하게 된 것은 언제부터인가. 계기가 있었나.

2008년에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공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딱히 배우게 된 계기가 있다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하는 게 꿈이었다. 사실 2003년에 간암 절제수술을 하고 나서 배우려고 했는데, 암이 재발하면서 중단했었다. 2008년에 다시 악기도 사고, 아들과 함께 배우기 시작했다.

가족이 함께 음악을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부러웠다. 아내도 내가 3년을 설득해서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했다. 일단 시작하니 내가 6개월 배운 것을 2개월 만에 배우더라. 재주가 많은 사람이다.

 

- 색소폰 연주 말고도 댄스스포츠, 판소리, 민요 등 공연 구성이 다양하다.

봉사를 하면서 어떻게 어르신들을 즐겁게 해드릴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면서 댄스스포츠를 배우기 시작했다. 댄스스포츠는 10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중 5가지는 배웠다. ‘안숙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가입해서 판소리도 배웠다. 그 모임에 80대 어르신들도 많아서 우리가 가면 막내다.

공연 레퍼토리를 개발하다보면 하루가 부족하다. 처음에는 색소폰으로 트롯트 연주만 했다. 그러다 민요를 불러드렸더니 너무 좋아하시더라. 판소리도 많이 좋아하신다. 레크레이션 강사, 웃음치료사 자격증도 땄다. 지금은 각설이 타령을 배우는 중이다. 이제는 한 시간 정도는 우리 부부 둘이서 거뜬히 채울 수 있다. 공연 레퍼토리가 다양해야 보는 사람도 더 즐겁지 않겠나.

 

- 공연장 반응은 어떤지 궁금하다.

보통 처음 공연을 가면 어르신들이 힘들어하시니까 20~30분 정도만 공연을 해달라고 한다. 이곳(다산노인요양원)에서 처음 공연할 때도 음악을 틀었더니 한 할머니께서 시끄럽다며 호통을 치셨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요양원에서 공연봉사를 하는 사람들 중 양방향 소통을 안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냥 자기 할 것만 보여준다고 어르신들이 흥이 나지는 않는다. 오랫동안 봉사를 해오다보니 어르신들이 어떤 걸 좋아하는지 잘 알게 됐다. 그래서 어르신들 반응이 좋은 노래 위주로 공연을 구성한다. 오늘 부른 노래들도 다 검증된 것들이다. 민요는 새타령, 달타령, 진도아리랑 같은 것을 좋아하신다. 판소리도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즐겨 부른다. 그 대목에서 눈물을 많이 흘리시더라.

 

- 무보수로 봉사하러 다니다보면 경제적인 부분도 걱정이 될 텐데.

공직생활을 하다 퇴직해서 연금을 받고 있다. 하던 식당도 2년 전에 그만두고 임대를 줘서 임대료 수입도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아껴 쓰면 우리 가족 생활하면서 봉사하기에는 모자라지 않는다. 아들이 몸이 불편해서 종종 큰돈이 들어갈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잘 지낸다.

 

- 아들도 함께 색소폰 연주를 하며 봉사를 다닌다고 들었다.

지금 군청 복지과에서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어서 오늘은 봉사를 같이 오지 못했다. 아들도 봉사하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지금 32살인데 살면서 40번 넘게 수술을 했다. 지체장애, 청각장애, 척추 등 아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태어나자마자 인공항문을 다는 수술을 했다. 비강도 막혀서 코로 숨쉬기가 힘들다. 억지로 숨 쉬는 연습을 하다 보니 오히려 폐활량은 좋아지더라. 그래서인지 우리 가족 중에 아들이 색소폰을 가장 잘 분다. 사진도 잘 찍어서 아들이 찍어준 사진을 블로그에 많이 올려놨다.

 

- 공연하는 모습을 보니 단순히 봉사한다기보다는 즐긴다는 느낌을 받았다. 힘든 와중에도 봉사하면서 항상 젊고 재밌게 사는 비결이 뭔가.

일하다 죽기는 싫다는 생각이 들어 2년 전에 식당을 그만뒀다. 일이 취미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하면서 살고 싶다. 그리고 나 혼자 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과 나누면서 하고 싶다. 그래서 어르신들 앞에서 공연 봉사를 한다.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즐겁고 행복해진다. 댄스스포츠도 아직 5개를 더 배워야 하고 판소리도 6대목밖에 못 익혔는데 10대목은 채울 예정이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아내는 가끔 좋은 집도 사고 싶다고 하는데, 연금도 있고 가진 것에 만족하자고 한다.

바우네밴드 한경희, 최순덕 부부가 민요를 부르며 흥을 돋구고 있다.

 

- 봉사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몸이 힘든 건 하나도 없다. 다만 가끔 요양시설 종사자들이 어르신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언짢다. 어르신들에게 잘 하지 못하는 시설은 냄새부터 난다. 요양사들이 신경을 안 쓰고 자주 씻겨드리지 못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봉사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상처가 된다. 봉사하러 가겠다고 연락을 해도 반응이 좋지 않은 경우가 있다. 꽃동네 같은 경우는 가지 않는다. 거기는 지명도가 워낙 높아 봉사자들이 줄을 서있다. 꽃동네에서 운영하는 신내노인요양원에 봉사가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복지사가 봉사 일정이 꽉 찼다면서 오면 오고 말거면 마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봉사자들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대형시설일수록 관료화되는 경우가 많다. 요양병원 원장, 이사장들이 무슨 벼슬하는 것처럼 목에 힘을 주고 다닌다. 따지고 보면 다 국가에서 지원받는 복지시설이다. 공무원도 공복이라고 하는데 요양시설 운영하는 것을 벼슬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공연봉사를 하러 가면 오히려 일이 늘어난다고 귀찮아하는 종사자들도 있다. 내가 시설에 입소한 장애인·노인들과 너무 가깝게 지내는 것도 싫어하더라.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3년 간 봉사를 다녔던 장애인 시설도 있는데, 요새는 가지 못한다. 전화를 해봤는데 일정이 있다면서 오지 말라고 하더라. 나는 지금도 가고 싶은데, 그걸 못하니 속상하다. 그것 말고는 힘든 점은 없다.

 

- 봉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장애인요양시설에 공연을 다니면서 만난 정아라는 친구가 있다. 50이 넘은 장애인인데 평생을 누워 지냈다. 그 친구는 내가 봉사를 가면 이미 알고 있다. 내 차는 LPG라서 소음도 작은데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온 걸 알아채는 거다. 그 친구가 어떤 노래를 즐겨 부르는지 아나?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다. 그 친구는 움직이지 못하고 평생을 누워 지냈다. 걸어서 시설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그 노래에 담아 부르는 거다. 그 노래를 듣는데 가슴이 너무 아팠다.

 

- 봉사 일정은 어떻게 되나. 이곳 말고도 정기적으로 봉사를 하는 곳이 있나.

요즘은 보통 한 달에 8~10번,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다닌다. 처음에는 내가 먼저 요양시설에 연락을 해서 봉사를 다녔다. 요새는 이름이 조금 알려졌는지 연락이 와서 가는 경우도 많다. 이곳(다산노인요양원)도 원장님이 다른 요양원에서 공연하는 것을 보고 정기적으로 공연을 와달라고 요청을 하셨다.

이곳 말고도 정기적으로 가는 곳이 많다. 가평 성빈센트환경마을, 포천의 산정호수 노인요양센터, 철원군 근남면 노인대학, 연천 무지개정원복지센터 등에서 한 달에 한두 번 정기적으로 공연 봉사를 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식당 임대계약이 3년 남았다. 3년간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봉사를 다닐 계획이다. 그 뒤에도 내 몸이 움직일 때까지 봉사를 다니고 싶다. 건강을 잘 유지하면 80살까지도 봉사하러 다닐 수 있지 않겠나. 나이가 들면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다. 가족과 함께 지내다가 혼자가 되면 굉장히 힘들다고 한다. 전국에 공연을 다니면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 외로운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다.

 

임해원 기자  sthintheai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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