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 요청했으나 거절, 장례식 때 경찰 찾아와 협박”

국정원 임모 과장의 사망 당시 발견된 유서.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김혜선 기자] 국가정보원 민간인 해킹사건과 관련, ‘빨간색 마티즈’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전 국정원 직원 임모 과장의 부친이 ‘타살 의혹’을 제기했다.

13일 CBS노컷뉴스는 임 과장의 아버지인 임희문(80)씨를 만나 “이런 자살은 없다”며 타살의혹을 제기하는 유족의 주장을 보도했다. 임 과장의 부친은 “아들의 얼굴에 상처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놀랐다. 몸이 저렇게 당할 정도면 뼈까지 상했을까 걱정돼 오죽하면 감정(부검)을 해달라고 했다”고 사망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부친 임씨는 “간단하게 유서 쓰고 잠들게 하는 방법이 있을 텐데 왜 몸뚱이에 상처가 있고 얼굴에 안 터진 곳이 없나. 나만 본 것이 아니라 아들 염(시신을 씻고 수의를 입히는 일)을 한 사람들도 대번에 알아봤다”고 주장했다. 또 “아들은 자살할 성격과 상황이 아니었다. 자살이라는 결론을 받아들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 과장은 앞서 지난 2015년 7월 불거진 국정원의 민간인 해킹 사건의 ‘키맨’이었다. 민간인 해킹 사건은 이탈리아 해킹 전문회사 ‘해킹팀’이 다른 해커들에 해킹을 당해 고객정보가 유출됐는데, 이 목록에 ‘5163부대’ 명칭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일었다. 당시 국정원의 고객명은 ‘5163부대’는 국정원의 대외용 명칭이다. 국정원은 2012년 18대 대선 직전에 약 8억원을 들여 이 해킹 프로그램을 구매했고, 국내 휴대폰 모델이 출시될 때마다 이탈리아에 해킹을 요청하고 카카오톡 해킹 요청, 지방선거 직전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공격 요청 등을 한 사실이 드러나 선거개입과 민간인 사찰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임 과장은 이 해킹 프로그램의 구매 및 운영 실무를 담당한 팀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의혹이 날로 커져가던 7월 18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면 화산리의 한 야산 중턱에 세워놓은 자신의 중고 마티즈 차량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숨진 채 발견됐다. 사찰관련 자료들은 이미 삭제한 뒤였다. 그는 유서에 “정말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습니다. 외부에 대한 파장보다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혹시나 대테러, 대북 공작활동에 오해를 일으킬 지원했던 자료들을 삭제하였습니다”라고 적었다. 이 유서를 근거로 임씨는 단순자살로 사건이 종결됐고, 해킹 프로그램 ‘구매대행’ 역할을 한 나나테크 대표는 캐나다로 도피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임씨의 타살 의혹 제기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의 죽음을 둘러싸고 정치권은 물론 누리꾼 사이에서도 ‘이상하다’는 의견이 줄기차게 제기됐기 때문.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전병헌 최고위원은 임 과장의 마티즈 차량의 번호판과 CCTV 속 번호판이 다르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연봉 1억원의 국정원 직원이 왜 보름 전에 10년 된 마티즈를 샀는지 모르겠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경찰은 ‘음모론’이라고 일축하며 빛 반사에 따라 번호판 색이 다르게 보일 수 있다고 반박했다.

전병헌 위원이 제기한 번호판 의혹. 그는 경찰의 '반사에 따른 차이'라는 말에 "코미디에 가까운 해명"이라고 주장했다. 전 위원은 이 외에도 범퍼, 안테나 등이 달라 다른 차량이라는 주장을 했다. <사진=뉴시스>

또 다른 의혹은 임 과장의 실종신고 경위다. 임 과장은 사망 당일 새벽 5시경 집을 나섰는데, 그의 부인은 이날 오전 10시 쯤 소방서에 실종신고를 하고 ‘위치추적’ 신청까지 했다. 이에 ‘출근 5시간 만에 실종신고를 하는 게 이상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당시 한 언론사에서는 국정원이 임 과장이 출근하지 않자 부인에게 두 차례 전화를 걸고 “즉시 경찰에 (임씨를) 실종신고를 해라. 위치추적도 요청해야 한다”고 지시한 내용을 보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국정원은 “전반적으로 사실 관계가 다르다”고 반박했다.

부친 임씨는 그동안 타살 의혹을 제기하지 않은 이유가 외압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아들의 장례식 때 경찰이 ‘만약 아버님의 이유와 조건이 있어 (상황이) 뒤집어지게 되면 말썽이 되니까 좀 생각할게 있어야 할 것이다’, ‘언론 등 외부 접촉으로 상황이 바뀌면 장례 일정이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말이 협박으로 들렸다”고 말했다. 또 “며느리가 손녀(임 과장 딸)가 육사에 들어가 있으니 앞으로 피해가 있을까 걱정돼 덮으라고 말했다. 손녀 이야기만 아니었으면 바로 폭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 해킹프로그램(RCS)을 이용한 민간인 사찰 및 선거개입 의혹은 국가정보원이 최근 확정한 ‘적폐청산 태스크포스’의 13개 조사 항목에 포함돼 있어 임과장 타살 의혹이 밝혀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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