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있다. 12일 국내에 정식 출간된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는 지난 6월 30일부터 인터넷 예약 판매를 시작해 이미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량 1·2위를 차지했다. 문학동네 관계자는 “당초 10만부를 준비했다가 예약판매 기간에 주문이 쇄도해 3쇄에 30만부를 준비한 상태”라고 밝혔다.

국내 독자들이 하루키에 열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루키는 1990년대 신세대 문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하며 국내 문화계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쳐왔다. 개인주의적 라이프 스타일과 독특한 문화적 취향을 중시하던 당시 젊은 세대에게 가벼운 문체와 독특한 구성으로 개인의 내면을 그려낸 하루키의 소설은 큰 인기를 끌었고, 이후 국내 문단에서도 하루키의 영향을 받은 ‘하루키 키드’들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하루키의 소설을 읽고 있는 여성에게 한 남성이 “노르웨이의 숲에는 가보셨나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내용의 휴대전화 광고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루키 문학이 거둔 대중적 성공과는 달리, 평단의 평가는 엇갈린다. 2006년 30대 신진 문인 95명을 대상으로 한 교수신문의 설문조사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19명의 표를 받아 ‘가장 과대평가된 문인’으로 뽑혔다. 당시 설문조사에 참여한 문인들은 “후기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상업성이 지나치다”, “스무 살 초반의 감수성에 기댄 작품”등의 혹평을 내렸다.

올해 5월 열린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유종호 비평가는 “골빈 대학생들이 하루키를 너무 좋아한다”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군중으로서의 독자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군중들이 문학에 대한 평가를 하고, 거기에 따라가게 되는 것이 정당한 것이겠는가”라며 하루키의 대중적 성공이 문학계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기영 소설가도 “하루키의 세계적 성공은 그의 초국적 미학에 의한 것이 아니라 미국 출판업체의 사업 성공 덕분”이라고 폄하했다.

하루키에 대한 혹평은 일본 평단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나치게 미국문학의 영향이 드러난 문체, 생소한 소재나 유명 작가를 열거하면서 삶에 대한 성찰은 등한시하는 가벼움 등이 비판받아 왔다. 1979년 하루키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을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오에 겐자부로는 “창조를 위한 훈련으로서 미국 소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면, 저자에게도 독자에게도 헛된 시도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문학평론가 다케우치 신 역시 ‘1Q84 어떻게 읽을 것인가’에서 하루키의 문체를 “외국문학 특유의 수사법을 일본어로 번역할 때 생기는 위화감을 하나의 양식미로 승화시킨 ‘암호화에 의한 스노비즘(속물 근성)’”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하루키에 대한 비판이 지나치다는 의견도 있다. 임순만 국민일보 전 편집인은 2013년 국민일보에 게재한 칼럼을 통해 “어법과 소설방법론을 자신만의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어 세계에서 가장 잘 소통하고 있는 작가를 우리의 거대담론의 틀로 재단해보려는 시도는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김연수 소설가도 “무라카미 문학은 역사나 사회·집단보다는 좀 더 개인화된 사람들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다른 나라, 특히 세계의 젊은 독자들과 더 쉽게 소통할 수 있는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며 하루키 작품의 세계화를 사업적 성공이라고 폄하하는 의견을 반박했다.

하루키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도 2012년 국내 출간된 인터뷰집 ‘오에 겐자부로, 작가 자신을 말하다’에서 하루키 문체의 독창성을 인정하며 입장을 바꿨다. 그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외국문학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기존 일본문학과는 달리 구어체 문장으로 재창조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무라카미 씨는 요즘 들어 자신의 구어체를 새로운 문체로 향상시키고 있다고나 할까, 확고히 굳히고 있어서 세계 곳곳에서 작품들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신선한 눈부심은 나로서는 달성 불가능한 것이지요”라고 높게 평가했다.

하루키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는 일본 내에서 하루키 문학의 집대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대평가된 작가’부터 ‘노벨문학상 후보’까지 극단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하루키가 이번 작품을 통해 평단의 비판을 잠재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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