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서울시 문화예술과>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서울시에서 지하철 승강장안전문에 게시할 시 작품을 공모한다. 서울시는 지난 2008년부터 “바쁜 일상에 쫓기는 시민들에게 문학을 통해 잠시나마 정서적 여유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지하철 승강장에 시를 게시해왔다. 올해는 7월 12일부터 8월 2일까지 시민 공모로 시 100편을 선정하며, 선정된 작품은 2년간 게시될 예정이다.

지하철 광고수익보다도 시민들의 문화적 풍요를 선택한 공익사업이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오히려 차갑다. 게시된 작품의 수준이 낮을뿐더러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표현이 담긴 작품들이 게시되는 경우도 잦았기 때문이다. “앞집 남자의 사글세방에 울리는 여자의 고성에 맥을 못쓰는 천정/ 밤길을 달리는 여자의 외마디 소리는 난몰라 어떡해” (삼류인생), “'맑'스는 맑음의 덩어리/ (중략) 반박이 불가능한 이 빵에/ 입을 대는 순간/ 포도주보다 붉은 혁명의 밤이/ 촛불처럼 타오른다” (‘맑’스), “부자는 가난한 자들의 노동을 파먹고/ 가난한 자는 부자의 동정을 파먹고” (공생) 등의 시는 선정적 표현, 이념편향, 계층갈등 조장 등의 이유로 민원이 제기되어 철거됐다.

‘좋은 시’의 기준은 다양할 수 있지만, 지하철은 전 연령층이 이용하는 공공장소다. 따라서 보편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수준의 시가 게시되어야 한다는 것이 시민·문인들의 지적이다. 시민들은 공모전 소식이 알려지자 트위터에 “#스크린도어_시”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자작시를 올리고 있다. “문이 열리네요/ 그대가 들어오죠/ 내리면 타야지 / ○○놈아”, “아재 아재요/ 다리를 오므려라/ 오므리지 않으면 구워먹으리” 등 패러디를 통해 지하철 이용문화를 풍자한 시들이 대부분이다. “이 문에서/ 스무살 청춘이 죽었다./ 점심에 먹을/ 사발면 하나 남기고”처럼 구의역 승강장안전문 수리 중 사망한 김군을 추모하는 시도 올라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다.

문인들도 지하철 시 사업에 부정적이다. 김상혁(38) 시인은 “사람들이 얼른 대여섯 줄 읽고 이런 걸 시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생각한다. 더 까놓고 말하면 머리 뜯으며 생각 정리하고, 엉덩이 종기 나게 쓴 시가 모욕당하는 것 같다”며 지하철에 게시된 작품의 낮은 수준을 비판했다. 아예 지하철에 시를 게시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황현산(72) 문학평론가는 “공공기관이 공공영역에 작품을 내건다는 것은 그걸 사회적 미학적 모범으로 추천하는 것이다. 그건 누가 어떤 기준으로 해도 위험한 일이다”라며 지하철 시 사업을 철회할 것을 주장했다. 장정일(55) 소설가 또한 “지하철 같은 공공장소에는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멈추시오’, ‘돌아가시오’ 같이 필수 불가결한 것만 있어야 한다. 내가 외국 여행을 갔을 때,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저런 알지 못할 ‘안내문’이 적혀 있다면 무척 당황할 것이다.”라며 차라리 승강장 안내문을 깨끗하게 비워두자고 말했다.

문인단체에서 추천을 받다보니 오히려 제대로 된 선정기준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 문인단체 관계자가 지하철 공모전 당선을 위한 족집게 강의를 여는 등, 지하철 시 사업이 문인단체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하철 시 선정과 관련된 비판에 대해, 2016년 7월부터 개선안을 세워 시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전에는 저자를 배려해 공공성 시비가 있는 작품도 빠른 철거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개선안 시행 이후부터는 저자의 의사를 묻지 않고 곧바로 철거하고 있다. 문인단체와 관련된 잡음을 의식해, 문인단체를 추천 및 심사과정에서 완전히 배제했다. 심사위원단은 문인단체 대신 대학교수, 언론인 등 서울시에서 자체 선정한 문학관계자들로 구성했다. 심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심사위원 수도 작년 9명에서 올해 11명으로 늘리기로 결정했다.

시 관계자는 시민들이 트위터에 올린 시 작품들을 지하철 시 사업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하는 언론보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토로했다. 관계자는 “트위터에 올라온 시들은 지하철 시 공모전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며, “시민들이 승강장안전문에 게시된 시의 낮은 수준을 풍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시 사업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와 향후 개선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올해 9월 중 시민 만족도 조사를 통해 지하철 시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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