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강제징용의 역사를 다룬 류승완 감독의 신작 ‘군함도’가 개봉 5일 째인 지난 30일, 누적 관객 수 406만 명을 넘어서며 천만 관객을 향한 순항을 이어갔다. 반면 지난 20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는 누적 관객 수 218만 명을 기록하며, ‘군함도’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거라던 예상을 빗나갔다. 놀란 감독의 전작 ‘인터스텔라’가 천만 관객 이상을 기록한 것에 비해 부진한 성적이다.

흥행 성적은 다르지만 두 영화 모두 죽음의 위협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탈출기, 혹은 재난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진다. ‘덩케르크’는 “이것은 전쟁영화가 아니다”라는 놀란 감독의 발언처럼 일반적인 전쟁영화의 문법을 전혀 따르지 않고 있다. 치열한 전투장면이나 극적인 순간에 나타나는 전쟁영웅의 활약상은커녕 피 흘리는 전사자의 모습도 찾기 어렵다. 심지어 독일군의 모습은 어뢰의 충격음이나 폭격기의 비행소음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전쟁영화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지나치게 담담한 서사구조에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평단에서 호평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영웅서사를 배제하고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재난 앞에선 인간의 보편적인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야심찬 뺄셈의 미학으로 특별한 전쟁영화를 조각했다”고 놀란 감독의 역량을 칭찬했다. 또한 “잔교에서의 1주일과 바다에서의 1일 그리고 하늘에서의 1시간이 서로 다른 서술자에 의해서 서로 다른 시간의 농도로 중반부까지 현란하게 교차 서술”되는 치밀한 연출력을 통해 영화 후반부의 무게중심을 강화한 점 또한 높게 평가했다.

해외 평론도 마찬가지다. “액션 시퀀스에 너무 많은 힘을 쏟은 탓에 극적인 요소를 상실했다”(슬랜트 매거진), “단순한 이야기를 극도로 단순화해버렸다”(시카고 트리뷴)며 내러티브의 문제를 지적하는 평도 있지만, “영화적 기교와 기술이 낳은 역작”(뉴욕 타임즈), “지금까지 놀란의 작품 중 최고다”(가디언) 등의 평이 지배적이다. 로튼토마토의 경우 31일 현재 신선도 93%를 기록하고 있으며 IMDB에서도 약 11만 명에게 평균 8.6점을 받았다.

‘군함도’도 관객의 기대와는 다른 영화라는 점에서 ‘덩케르크’와 비슷하다. 전쟁영화를 찍은 것이 아니라는 놀란 감독처럼 류 감독도 “군함도의 역사를 알리는 것이 영화를 제작한 첫 번째 이유는 아니었다. 순수하게 군함도 이미지를 보고 그 안에서 벌어질 법한 이야기가 저를 자극했다. 역사를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과 책무감은 오히려 작업 과정에서 생겼다”며 제작 동기를 밝혔다. 류 감독의 말처럼 ‘군함도’는 위안부문제를 다룬 ‘귀향’처럼 아픈 역사를 있는 그대로 그려낸 영화들과는 궤를 달리한다. 영화의 초중반은 강제동원 과정, 탄광 노동 등을 고증을 통해 사실적으로 담아냈지만, 후반부는 류 감독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스펙터클한 탈출 장면으로 채워졌다. 청산되지 못한 역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을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뜻밖의 액션 블록버스터에 당황할 수 있다.

‘군함도’에 대한 평단과 관객들의 반응은 ‘덩케르크’와 사뭇 다르다. 후반부를 수놓는 장쾌한 탈주 시퀀스는 웰메이드 상업영화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영화 전체적으로는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다. 이동진 평론가는 ‘군함도’에 대해 “규모와 주제를 얻고, 생기와 개성을 잃다”라고 짧게 평했다. 실제 군함도의 3분의 2 크기로 제작된 세트장에서 촬영한 실감나는 탈출 장면이 몰입감을 높이는 반면, 서사구조나 캐릭터는 전형적인 한국영화의 흥행 공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비판이다.

반일영화가 흔히 거치는 소위 ‘국뽕’ 논란을 피해가기 위해 캐릭터 묘사를 다양하게 한 것도 오히려 관객의 반감을 샀다. 류 감독은 19일 언론시사회에서 “실제 군함도 자료를 조사하면서 나쁜 일본인만, 좋은 조선인만 있었던 건 아니다. 이분법으로 접근해서 관객들을 자극시키는 방식은 오히려 왜곡하기 좋은 모양새”라고 밝혔다. 이어 “제국에 모든 악을 씌워 다루려고 하는 게 아니라 전쟁의 과정 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약해질 수 있고 혹은 나약해진 줄 알았던 사람들이 강해질 수 있는가”를 다루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산되지 않은 역사적 문제를 다루면서 굳이 이러한 시각을 취해야 했느냐는 관객들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국가폭력의 문제를 개인적 악마성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이나, 절대악도 절대선도 없다는 양비론적 시각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강제동원의 문제에 섣불리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후반부의 탈출 장면도 관객들의 기대와 어긋났다. 류 감독은 28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영화를 통해서라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피맺힌 한을 대탈출이라는 컨셉으로 풀어보고 싶었다”고 밝혔다. 강제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의 대탈주는 류 감독이 창작한 부분으로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 류 감독은 가상의 대탈주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자 했지만, 관객들은 군함도를 흔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배경으로 썼을 뿐이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덩케르크’는 관객의 기대와 어긋났지만, 오히려 어긋난 부분이 새로운 영화적 시도로 인정받으며 호평을 이끌어냈다. ‘군함도’ 또한 류 감독의 상상력이 더해져 관객의 기대와 다른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그 부분이 관객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고 말았다. ‘덩케르크’와 달리 ‘군함도’가 문제가 되는 것은, ‘군함도’가 다루는 소재가 우리 역사이자, 아직 종결되지 못한 역사이기 때문이다. 부산지방법원은 2013년 고 박창훈(현재 소송수계인 박재훈) 외 22명이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 대해 원고일부승소 판결을 내렸지만, 대법원은 아직도 확정판결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 건을 포함해 총 3건의 소송이 대법원에서 확정판결을 받지 못한 채 4년째 계류 중이다. 2000년 이 사건을 처음 맡았던 변호사가 어느새 대통령이 될 정도로 시간이 지났지만, 강제동원관련 소송 중 완결된 것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사과도 보상도 받지 못한 억울한 역사의 피해자에게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연민과 부채의식이다. 이들이 ‘군함도’에서 류 감독의 전작 ‘베테랑’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기대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진중한 접근으로 강제동원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기를 바랐던 관객들에게 류 감독의 ‘군함도’는 어울리지 않게 ‘사이다’를 들이부은 격이 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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