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의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트럼프는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미국 정계와 학계, 언론계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뉴저지 베드민스터에 위치한 트럼프 내셔널 골프클럽에서 “북한은 더 이상 미국을 위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북한은 세계가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화염과 분노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다음날에는 공식 트위터에 “대통령으로서 내 첫 명령은 핵무기의 개조와 현대화였다. (미국의 핵무기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이 힘을 사용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미국에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가 아닐 때는 결코 없을 것이다”라는 글을 올리며 강경한 발언을 이어갔다.

 

- 북한식 어법 구사하는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의 표현은 그동안 미국 대통령들이 사용해온 외교적 언어와 큰 차이가 있다. 역사학자 마이클 베쉴로스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이런 위기 상황에서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이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대통령들은 자신의 발언이 위기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것보다 완화된 표현을 사용해왔다.”고 말했다. 일례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쿠바 미사일 위기가 심화되던 1962년 니키타 흐루시초프 구소련 서기장에게 “세계평화에 대한 위협을 멈추고 양국의 안정된 관계를 구축하며, 세계를 파괴의 수렁에서 건져내야 한다”며 정돈된 언어로 호소했다.

“화염과 분노”와 같은 수사법은 오히려 북한이 그동안 사용해온 선동적인 언어와 닮았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안보보좌관으로 일했던 피터 피버는 “좀 더 선동적이며, 북한의 어조를 차용한 것”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과격한 어법이 오히려 북한과의 갈등을 악화시킬 것이라는 거센 비판도 이어졌다. 잭 리드 민주당 상원의원은 9일 성명을 내고 “대통령의 ‘분노와 화염 애드립’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위협을 완화하려면 영리하고 꾸준한 리더십과 주요 동맹국과의 더욱 강력한 유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도 “위대한 지도자는 행동할 준비가 되기 전에 적을 협박하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사진=트럼프 대통령 공식 트위터 캡쳐>

 

- 트럼프 애드립에 아시아는 긴장상태

아시아 각국 전문가들도 트럼프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발언에 우려를 표했다. 이병철 평화협력원 핵비확산센터 소장은 '뉴욕타임즈' 기고를 통해 “트럼프는 동맹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러한 발언을 할 때 동맹국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떤 미국 대통령도 군사적 옵션을 그렇게 쉽게 입에 올리지 않았다. 트럼프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 한국인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후지와라 기이치 도쿄대학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자신의 트위터에 “세계는 72년 전 미국이 히로시마와 나가시키에 일으킨 화염을 지켜봤다. 북한을 억제하기 위한 행위로서 (트럼프의 발언은) 무모하고 현명하지 못하다”는 글을 올려 트럼프의 발언을 신랄하기 비판했다.

쳉샤오허 렌민대학 국제관계학 교수는 발언의 타이밍을 지적했다. 지난 5일 유엔대북제재결의안이 통과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러한 강경 발언을 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 쳉샤오허 교수는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정부는 보통 해결책이 효과가 있는지 시간을 두고 지켜봐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적어도 유엔결의안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는 기다렸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는 9일, “한반도의 상황은 복잡하고 민감하다. 교착상태에 관련된 당사자들은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발언과 행동을 자제해야 한다”며 트럼프 발언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 트럼프 측근 대응도 우왕좌왕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측근들도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은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의 발언이 ‘즉흥’적인 것이었다고 보도했다. 해당 관계자는 “트럼프는 그저 북한에게 자신이 질렸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라며 발언의 의미를 축소했다. 또 다른 백악관 관계자는 “백악관에 당황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며 백악관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화염과 분노” 발언이 사전에 조율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새라 허커비 백악관 대변인은 9일, “존 켈리 비서실장과 다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멤버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위협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로 대응할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며 “메시지의 강도와 톤은 사전에 논의된 것”이라고 말했다. 익명의 백악관 관계자가 '뉴욕타임즈'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사석에서도 북한에 대해 논의하면서 “화염과 분노”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해왔다고 한다.

발언에 대한 해석도 엇갈리고 있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9일 괌에서 기자들과 만나“김정은 위원장이 외교적 수사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강력한 표현을 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인들은 안심하고 잠들어도 괜찮다. 지난 며칠간 벌어진 설전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9일 성명을 발표해 “북한은 정권의 종말과 국민의 파멸을 이끌 어떤 행동도 고려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며 ”동맹국들의 합동 군사력은 지구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잘 훈련되고 튼튼한 방어력과 공격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북한은 주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틸러슨 장관이 발언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매티스 장관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에 힘을 실어줬다는 것은 백악관 내부에 통일된 대북정책이 부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김정은 보다 트럼프가 더 예측불허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인 발언에 미국뿐만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당혹감에 휩싸인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의 서투른 외교술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미국의 종합매체 ‘VOX’는 “최근 백악관에서 흘러나오는 상호모순적인 발언들을 보면 김정은 정권보다 트럼프 정부가 더 예측하기 어려운 것 같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난했다. 호주 로위연구소의 국제안보전문가 유안 그레이엄 또한 '뉴욕타임즈'를 통해 “우리는 북한이 예측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지만, 사실 미국이 점점 더 그렇게 되고 있다. 미국은 급변하는 역학관계에 예측불가능한 전략을 도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북한은 ‘생존’이라는 목표를 위해 활용가능한 자원에 근거해 계산된 합리적 전략만을 취하고 있으나, 트럼프 정부는 대화론과 강경론 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것.

이번 발언이 트럼프 대통령 특유의 쇼맨십에서 비롯됐다는 분석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전기작가인 팀 오브라이언은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화염과 분노” 발언이 전형적인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트럼프의 쇼맨십 스타일이라고 밝혔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화려하고 자극적으로 군사적 대립을 표현할 방법을 생각해왔던 것 같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 표현을 생각해뒀다가 써먹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무대에 어울리지 않는 쇼맨십을 고집할 경우, 국제관계에 큰 혼선을 불러올 수 있다. “화염과 분노”같은 수사법을 남발하다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실패한다면, 상대국가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 전문가들은 북한의 미사일보다 트럼프의 언행이 불러올 혹시 모를 재앙을 걱정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선임고문이었던 데이비드 액설로드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TV리얼리티쇼와 현실을 구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수많은 목숨이 달린 문제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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