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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주의 두둔하는 트럼프, 알고 보면 계산된 행동?
15일 뉴욕 트럼프타워에서 기자회견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뉴시스>

[월요신문 임해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이은 백인우월주의 옹호 발언이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지난 12일 백인 우월주의자 청년이 차를 몰고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로 돌진해 1명의 사망자와 19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샬럿빌 사태’ 이후, 인종문제는 다시 가장 뜨거운 정치 이슈으로 떠올랐다. 정치인들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은 백인우월주의 시위대를 비난하는 성명을 연일 발표했고, 사망한 헤더 헤이어(32)를 추모하는 물결이 이어졌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은 예상 밖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고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여러 진영(many sides)'에서 나타난 폭력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인종주의와 반인종주의 모두를 비난하는 양비론적 입장을 보였다. 빗발치는 여론의 비난에 “인종주의는 악이다”라고 말하며 입장을 바꾸는 듯 했지만, 15일 기자회견에서는 “둘 다(both sides) 잘못이 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심지어 “‘대안우파’를 공격한 ‘대안좌파’는 어떤가. 그들은 죄가 없나”라며 반인종주의 시위대가 폭력적이라고 비난했다.

미국에서 인종주의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와 여론의 흐름을 고려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대응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인종주의를 강력하게 규탄하며 여론을 수습하고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 리포트’에 따르면 샬럿빌 사태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45%(11일)에서 40%(17일)로 하락했다.

 

- 트럼프의 전략: 인종갈등 통해 백인 지지층 포섭하기

보좌관들조차 아연실색하게 만든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 옹호 발언의 의도는 과연 무엇일까? 미국종합매체 ‘VOX’는 트럼프 대통령의 샬럿빌 사태에 대한 대응이 장기적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인종주의 논란이 지속될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도 반등할 수 있다는 것.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인종주의 이슈는 백인들의 정치성향을 보수화시킨다. 설령 진보적인 성향의 백인이라 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인종문제를 접하게 될 경우 보수적인 입장으로 선회할 수 있다. 탈리 멘델버그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흑인이 복지혜택을 받는 장면과 백인이 복지혜택을 받는 장면이 각각 포함된 두 가지 버전의 가짜 TV 뉴스를 제작해 피험자들이 시청하도록 했다. 실험 결과, 흑인이 복지혜택을 받는 뉴스 영상을 시청한 피험자들이 더욱 복지제도에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라이언 에노스 하버드대학 교수의 실험도 흥미롭다. 에노스 교수는 통근열차에 두 명의 히스패닉 남성을 탑승시킨 후, 동승한 백인 탑승자의 정치성향 변화를 관찰했다. 실험결과는 놀라웠다. 단 몇 분간 히스패닉 남성들과 동승한 것만으로도 백인들의 정치성향이 보수화됐기 때문이다. 동승 전에는 이민정책에 온건한 입장을 보이던 백인들도, 동승 후에는 이민정책을 반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두 번째 이유는 대중들이 정치엘리트의 의견을 추종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브루크먼 스탠퍼드대학 교수와 다니엘 버틀러 워싱턴대학 교수는 의원들이 자신의 정책적 입장을 설명하는 편지를 지역구 주민에게 보내도록 한 후 편지를 읽은 주민들의 정치성향 변화를 분석했다. 실험결과, 주민들은 의원들의 의견을 자신의 것처럼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다. 심지어 편지를 읽은 후, 이전에는 반대했던 정책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미국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백인들은 인종차별 문제에 있어서 주류집단이다. 실험 결과가 보여주듯이 주류집단은 차별문제가 공론화될수록 보수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설령 차별문제에 반대하거나 별 관심이 없는 주류집단이라 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정치엘리트가 강력한 메시지를 보낼 경우 이를 추종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소수자·사회적 약자를 공격하며 차별문제를 이슈화하는 것은 보수파 정치인이 지지율을 끌어올리는데 매우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최근 발언은 단기적인 역풍에도 불구하고 인종주의 이슈를 지속시켜 장기적으로 백인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 트럼프 전략은 성공할까? ‘비호감’ 이미지가 변수

이런 정치적 전략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특정 지역, 정치성향, 계급, 성별 등 사회적 차별에서 소수자 입장에 처한 집단을 공격하며 다수의 주류집단을 지지층으로 포섭하는 선거 전략은 한국의 선거에서도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해묵은 지역주의와 색깔논쟁이 그 대표적인 예다. 가장 최근의 19대 대선만 하더라도 홍준표 당시 자유한국당 후보가 성소수자 및 여성차별, 5·18 가산점 폐지 등 자극적인 발언을 통해 보수파 지지층을 결집시켜 24%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선전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 전략이 과연 먹혀들지는 아직 미지수다. ‘VOX’는 은근하고 암시적인 인종주의 메시지는 효과적이지만, 지나치게 뚜렷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멕시코 국경 장벽 설치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무슬림과 히스패닉계 이민자를 강간범·테러리스트로 지칭하는 등 과도할 정도로 직접적인 인종주의 메시지를 던져왔다. 공공연한 인종차별적 언행을 금기시하는 미국 사회의 분위기 상, 최근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 옹호는 역으로 지지율 하락을 불러올 수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이후 쌓아온 ‘비호감’ 이미지 또한 인종문제 이슈화 전략의 성공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이 누적된 대중들이 트럼프가 옹호하는 인종주의를 반대하게 되는 “관용의 낙수효과”(Trickle-down tolerance)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 실제로 2016년 대선 캠페인 기간동안 트럼프 대통령의 호감도가 하락하면서 멕시코 장벽 공약에 대한 지지도도 따라서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오바마케어 폐지 실패, 러시아 게이트 등으로 대중의 호감을 상실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근 촉발된 인종주의 이슈는 반전의 기회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주의에 반대하며 광범위한 대중의 호감을 사기보다는, 인종주의를 옹호하며 백인 지지층의 결집을 노리는 전략을 선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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