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사정한파 조짐
 
태광그룹을 둘러싼 검찰의 비리 수사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이호진 회장과 관련된 각종 비자금, 로비, 편법상속.증여 등의 혐의가 드러나고 있다. 한편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번 사정수사가 단순히 태광그룹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계 전반으로 뻗어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지난 21일 검찰은 태광그룹에 이어 C&그룹을 둘러싼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수사를 시작했으며, 국내 굴지의 대기업 3~4군데에 대한 조사도 이미 돌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 정부의 '공정사회 몰아붙이기식의 대기업 잡기'가 아니냐는 말도 나오면서 많은 대기업들이 초긴장 상태로 검찰의 행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검찰의 태광그룹 수사에서 나온 혐의들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규모와 그 형태가 다양했다. 당초 이호진 회장 일가의 편법 증여 및 횡령 의혹으로 시작된 태광그룹 수사는 이후 급물살을 타면서 이 회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수법으로 광범위한 비자금 조성이 이뤄지고 정관계 로비 사실까지 있었다는 의혹까지 닿고 있다. 캐면 캘수록 숨겨있던 비리들이 드러나며 몸집이 더 커지고 있는 것이다. 
 
전초전에 불과한 태광수사
하지만 더 큰 사안은 검찰의 대기업 비리 수사가 태광그룹에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앞으로 검찰의 본격적인 사정수사를 통해, 태광그룹 보다 훨씬 더 몸집이 큰 대기업들에서 이전보다 더 어마어마한 비리들이 쏟아지고, 그 결과는 정치권 중심까지도 뒤흔들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태광그룹 비자금 의혹을 수사중인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이원곤 부장검사)는 지난 10월 21일 이호진 회장의 모친인 이선애(82) 태광산업 상무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이 상무는 이호진 회장이 예금, 차명주식 등의 형태로 보유한 비자금 수천억원을 측근들과 함께 운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21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이 상무 자택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회계서류와 전표 등 박스 1개 분량의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초 이 자료를 분석하면 태광그룹을 둘러싼 비자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 기대됐지만 앞서 두 차례 이선애 상무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연장이 기각되었기 때문에 핵심 증거는 이미 인멸됐으리라 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어느 정도 꼬리는 잡아낼 수 있으리란 전망이다.
검찰은 이날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이 회장 측근의 자택도 압수수색해 내부 서류를 확보했으며, 이선애 상무를 도와 태광 오너가의 비자금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대한화섬 박명석(61) 대표를 최근 불러 비자금의 조성 경위 등을 조사했다. 대한화섬 박 대표는 이선애 상무의지시로 오너 일가가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재산과 임직원 100여명 명의의 차명계좌 및 차명주식을 관리해온 것으로 의심받고 있다.
검찰은 또 이에 앞서 태광그룹 계열사 중 하나인 (주)한국도서보급도 전격 압수수색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그룹 비자금과 관련된 조직체가 한 둘이 아님을 시사했다. 검찰은 태광그룹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자마자 이호진 회장 자택과 광화문 흥국생명에 있는 사무실, 장충동에 있는 태광산업 본사와 계열사 2곳 등 의심가는 곳 상당수를 압수수색하고 조사한 바 있다.
현재 이호진 회장은 선친으로부터 상속받은 태광산업의 차명 주식 가운데 4,000억원 어치를 비자금화해 금융계열사에서 관리해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아들 현준 군에게 비상장 계열사의 주식을 저가로 발행해 대규모로 넘겨주는 방식으로 편법 증여를 했다는 의혹, 케이블TV 인수 과정에서의 편법 지분 취득과 자신들에 유리한 법 개정을 위한 방통위 및 청와대.국회 로비, 골프장 회원권 거래를 통한 계열사 부당 지원 의혹 등 여러 가지 비자금 조성 및 편법상속, 정권 로비 의혹들을 받고 있다. 
이번 수사가 더욱 깊숙이 파고들다 보면 정치권에서도 연관된 비리인사들이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며, 태광그룹 수사가 전초전이 되어 검찰의 사정 칼날이 다른 기업들도 향하게 됨으로써 대한민국 정.재계 전체에 한바탕 비바람이 몰아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음 차례 어디냐
사정태풍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태광그룹 비리 관련 수사가 한참 진행 중이던 21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김홍일 검사장)는 수백억원의 회사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관계 및 금융권 등에 로비를 벌인 혐의로 서울 장교동 C&그룹 본사와 계열사를 전격 압수수색하면서 본격적인 대기업 수사를 예고했다. 임병석(49) C&그룹 회장은 자택에서 체포됐다.
지난해 6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종료 이후 1년 6개월 만에 재가동된 ‘총장 직할부대’ 중수부의 수사인 만큼, 이번 C&그룹 수사는 권력형 비리를 겨냥한 강도 높은 기업 수사의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중수부는 전통적으로 권력형 비리에만 직접 칼을 들이대 왔기 때문이다. 검찰 관계자들도 “이번 수사는 워밍업(몸풀기)”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C&그룹은 주식회사 C&해운과 C&상선 등 41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는 재계 서열 71위의 중견기업으로, 참여정부 시절 공격적인 인수.합병(M&A)으로 사세를 키웠다. 중수부는 C&그룹이 당시 상장폐지된 기업이나 부도난 업체들을 인수하면서 각종 비리와 불법행위로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 비자금의 상당수가 정치권에 로비로 흘러들어갔다는 의혹 속에서 이번 수사가 당시 C&그룹을 비호한 정.관계 인사들을 겨냥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검찰의 수사 칼날은 C&그룹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많은 대기업들이 다음은 누구 차례가 될 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전체가 그야말로 납작 엎드려 바싹 긴장하고 있는 태세다.
실제로 C&그룹 외에도 재계 순위 10위권에 드는 기업 3~4곳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르는 비자금 조성 혐의로 내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검찰이 곧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MB가 말한 공정사회 사정(司正)을 말한 것인가
일각에서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 하반기 카드로 꺼내든 ‘공정 사회론’이 대기업들을 향한 검찰의 대대적 사정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들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대기업 대표들과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공정사회가 사정과 연결되는 것 아니냐는데 나는 그런 생각 추호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결국 ‘권력형 비리->게이트 비화->레임덕’의 악순환을 우려한 현 정부가 대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삼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또 이는 정관계 로비 의혹들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비리 수사의 칼끝이 정치권을 향해 과거 정부와 연결된 야당 등 정치권 전반을 흔들게 될 것으로 전망, 그렇게 된다면 정치적 의도가 깔린 사정이라는 비난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관계자들은 기업의 불.탈법 행위에 대한 엄정한 수사에 대해 그 원칙은 공감하면서도 사정당국까지 총동원된 압박수위에 다소 당혹해하고 있는 분위기다. 경제 침체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정으로 기업들의 경제활동 전반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와 관련해 “원자재가 상승과 원화강세 등으로 경제가 불안한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기업 수사가 장기간 이어지고 수사 대상기업이 확대될 경우 경제전반에 심각한 악영향이 우려된다”며 “진실은 밝히되 기업과 경제에 미칠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수사에 신중을 기해주기를 바란다”고 공식 논평하기도 했다. 
<서지영 기자>
[날짜 : 10-10-2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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