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임해원 기자] 심판매수 사건으로 야구계가 떠들썩하다. 현직 프로야구 심판 최규순씨가 지난 2013년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두산 베어스 고위 관계자에게 금전을 요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작된 이 사건은 이후 기아, 넥센, 삼성 등의 구단도 최씨에게 금전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야구팬들의 공분을 샀다.

한국에서 야구는 비교불가의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스포츠다. 그런 만큼 문제가 생겼을 때 팬들의 비난도 거세다. 병역비리나 음주운전 같은 무거운 사건부터 비매너 플레이나 오심 논란까지 경기장 안팎으로 프로야구는 수많은 문제를 겪어왔다. 그때마다 팬들은 회초리를 들면서도, 결국 야구장을 떠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심판매수는 다르다. 심판매수, 스포츠도박, 약물투여와 같은 문제들은 음주운전, 병역비리보다 가벼운 범죄일 수는 있으나, 스포츠라는 관점으로 한정시켜본다면 훨씬 심각한 문제다. 이 문제들은 스포츠의 근간인 ‘공정성’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공정성은 승부가 경기 외적인 요소의 개입 없이 오로지 선수들이 타고난 재능과 흘린 땀만으로 결정될 때 충족된다. 공정성이 결여된 경기는, 다르게 말하면 승부가 미리 결정된 경기다. 승부가 미리 결정돼 있다면 야구를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부를 이유가 없다. 역량과 노력만이 작용하는, 결과를 알 수 없는 공정한 승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팬들은 야구장을 찾는다.

야구장 밖 현실에서 ‘공정경쟁’을 찾기란 쉽지 않다. 직업, 지역, 성별, 인종, 장애, 학벌 등 우리 사회에는 수많은 차별의 이유가 존재하고, 차별의 수만큼 많은 불공정이 존재한다. 재능과 열정을 갖춘 인재들이 불합리한 이유로 기회를 박탈당하는 모습은 너무 흔해서 이제는 가십거리로 삼기도 어려울 정도다. 심지어 가장 희망적이어야 할 청년층들마저 한국은 ‘금수저’가 아니면 살아남기 힘든 ‘헬조선’이라며 사다리에 올라탈 의욕을 잃어버리고 있다.

한국에서 공정경쟁에 대한 믿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통계청이 발표한 ‘한국의 사회동향 2016’에 따르면 “사회경제적 계층의 상향이동 가능성”에 긍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겨우 21.8%로 1994년 60.1%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자식세대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에 부정적으로 응답한 비율은 50.5%로 2006년 29%에 비해 두 배 가량 상승했다.

민인식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와 이경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월간노동리뷰 7월호에 발표한 ‘직업계층 이동성과 기회불균등 분석’에 따르면 “최근 청년층에서 그들의 경제적 성과가 부모배경에 의해 설명되는 비율이 더 높아졌다”고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 놓여있던 사다리가 대부분 부서졌다는 이야기다.

야구는 다르다. 신고선수 김현수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란 이대호가 7관왕에 오르는 것이 야구다. 평범했던 이웃집 고등학생이 한국시리즈에서 삼진을 잡고 포효하는 모습을 TV에서 보기도 하고, 초코파이를 준다고 해서 리틀 야구부에 입단한 동네 꼬마가 홈런왕이 되기도 한다. 현실은 공정하지 않지만, 야구팬들은 야구장에서 공정경쟁의 판타지를 관람하며 마음을 달랜다. 이를 악물고 사다리를 올라가는 선수들에게 현실에서 악전고투하는 자신의 모습을 투사하며, 일구 일구에 희비를 반복한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며 부서진 사다리를 다시 세우겠다고 선언했지만, 이제 막 잔해를 모아 사다리를 수리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공언한 바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지만, 부서진 사다리를 다시 세우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기자는 야구가 다시 공정성을 회복하길 바란다. 야구팬으로서, 야구를 잃어버린 채 사다리가 세워지기를 기약없이 기다리는 것은 너무 팍팍한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수들의 땀과 눈물을 만끽하다보면, 혹여 사다리 다시 세우기에 고양이 손이라도 보탤 의욕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번 사건이 철저히 파헤쳐지고 야구가 공정성을 회복해, 다시 야구장에서 공정경쟁 판타지를 즐길 날이 돌아오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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