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부지에 한방병원 설립? 집값 연관성도 설득력 떨어져
무릎 꿇은 장애아동 학부모 모습에 누리꾼들 분노

지난 5일 서울시 교육청이 주최한 특수학교 설립 관련 토론회에서 무릎꿇고 호소하는 장애아동 학부모의 모습. <사진=노컷뉴스 영상 캡쳐>

[월요신문=임해원 기자]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 설립 예정이었던 발달장애 특수학교(가칭 서진학교)가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될 위기에 처한 가운데, 서진학교 설립을 지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서명운동을 제안한 ‘강서구를 사랑하는 시민모임’(이하 강사모)은 “강서구내 1개의 장애학교가 있지만 자리가 부족해 100명 가까운 학생들이 왕복 세 시간씩 통학버스에 몸을 맡긴 채 시달린다”며 “더이상 사회구조적 불평등이나 여러 장애를 이유로 열악한 환경과 지위 속에 살아온 이들을 고립시키거나 배제하지 않고, 당당한 사회의 일원으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빼앗지 말자”고 운동의 이유를 설명했다.

 

◇ 학교부지에 한방병원? 애초에 불가능한 공약

현재 서진학교는 국립한방병원을 설립해야 한다는 지역 주민들의 주장으로 인해 설립이 지연되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이 주민의견을 듣기 위해 지난 7월 6일 토론회를 개최하려 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 5일 다시 토론회가 열렸으나 주민들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며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했다.

문제는 해당 부지가 학교용지라 교육청 허가 없이는 용도변경이 불가능하다는 것.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해당 부지에 국립한방병원을 짓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지역구 유권자들도 한방병원 설립을 통한 지역 개발에 기대감을 가지고 김성태 의원을 지지했지만, 실상은 애초에 학교 외에 다른 시설을 설립할 수 없는 부지였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한방병원을 지을 수 있는데 왜 특수학교를 짓느냐'고 하는데, ‘한방병원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은 김 의원이 만든 가공의 희망”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논란을 의식한 듯 토론회 초반 장애아동 학부모의 발언 도중 자리를 떴다.

 

◇ 특수학교가 집값 떨어뜨린다? 더 오른 지역도 많아...

특수학교 설립은 주변 집값에 영향을 미친다는 지역 주민들의 반발이 커 일반적으로 추진이 쉽지 않다. 서울시의 경우 2002년 종로구에 설립된 경운학교를 마지막으로, 최근 15년간 공립특수학교는 단 한 곳도 신설되지 못했다. 현재 논란 중인 서진학교 외에도, 서초구 나래학교, 중랑구 동진학교 등이 주민 반발이 부딪혀 설립이 지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특수학교가 집값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에 대해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교육부 의뢰로 부산대 교육발전연구소가 전국 167개 특수학교 인근 부동산가격을 조사한 결과, 2006년 ~ 2016년 동안 특수학교 반경 1km 이내의 인접지역과 반경 1~2km의 비인접지역간 부동산 가격 변동률은 차이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땅값의 경우 인접지역 4.34%, 비인접지역 4.29%로 오히려 인접지역이 더 많이 올랐으며, 단독주택(인접지역 2.58%, 비인접지역 2.81%)과 아파트(인접지역 5.46%, 비인접지역 5.35%) 가격 변동률도 사실상 무의미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지가 자료를 확보해 비교한 47개 학교의 분석 결과에서는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었던 곳이 10곳이었으며, 이중 8곳은 특수학교 인접지역의 땅값이 더 많이 오른 것으로 밝혀졌다.

 

◇ 무릎 꿇은 장애아동 학부모 영상에 누리꾼 분노

5일 열린 토론회에서는 주민들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장애아동 학부모들이 무릎을 꿇고 특수학교 설립을 호소했다. 일부 학부모들이 눈물을 흘리고 큰절을 올리며 지역 주민들의 이해를 구했지만, “쇼하지 마라”는 차가운 반응이 돌아왔다.

해당 사진과 영상 등이 공개되자 누리꾼들은 지역 주민들을 질타하는 의견을 다수 쏟아냈다. 한 누리꾼은 “사람사는 세상이 맞나 싶다”며 “자기 자식들도 장애가 있다면 이해하고 납득했을까”라고 말했다. 다른 누리꾼도 “장애인 부모가 죄냐? 왜 무릎까지 꿇어야 하나”라며 분노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수학교 설립을 지지하는 의견이 확산되면서 온라인 서명운동에 참여하는 누리꾼들도 늘고 있다. 강사모는 “2017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실현 불가능한 대형한방병원유치보다 장애학교의 부족으로 인한 아이들의 기본복지를 되찾아주는 게 더 옳은 선택 아닐까요”라며 시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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