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X, 트럼프 모호한 발언, 오히려 북한 도와줄 가능성 높아
일부 전문가들, “트럼프 발언, 전임 대통령들과 다를 바 없다”

19일 열린 제72회 유엔 총회 오찬식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건배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임해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서 북한에 대해 수위 높은 강경 발언을 쏟아내면서 파문이 일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일 유엔 총회에서 “미국과 동맹국을 방어해야만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밖에 없다”고 발언해 전 세계를 긴장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로켓맨’(김정은 위원장)이 자신과 그의 정권에 대해 자살 임무를 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에도 트위터 및 기자회견 등을 통해 북한을 위협한 바 있다.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며 군사행동도 가능하다는 뜻를 여러 번 내비쳤고, 지난 8월 8일(현지시간)에는 북한이 군사도발을 계속할 경우 “화염과 분노”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이 실질적인 군사행동이나 강력한 경제제재로 이어진 적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 대북정책의 최대 성과라고 불리는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도 초안에 비해 매우 완화된 수준이라 실질적인 효과를 의심받고 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발언은 국내 지지율 상승을 노린 정치적 수사라는 비난을 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트위터나 국내 기자회견이 아닌 유엔 총회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무게감이 다르다. 아무리 미국의 패권이 강력하다 해도, 유엔 총회에서 타국을 파괴하겠다고 발언한 경우는 없었기 때문. 게다가 이번 발언은 이전의 즉흥적 발언과는 달리 외교·안보관계자들과 내부 협의를 거친 연설문이라는 점에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는 무게감을 지닌다.

발언의 무게감이 큰 만큼 의미와 적절성에 대한 논의도 치열하다. 미국인터넷매체 ‘VOX’는 20일(현지시간) 동북아 안보전문가들의 트럼프 대통령 유엔 총회 기조연설에 대한 평가를 보도했다.

◇ 구체성 없는 모호하고 과격한 발언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이 외교적으로 부적절하며 의미가 모호하다는데 동의했다. 미국 국가이익센터의 해리 카자니스 국방연구국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으로는 북한의 위협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지적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 정치학과의 비핀 나랑 교수도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효과적이며 압도적인’ 대응수단이 무엇인지 애매하다는 것이 문제”라며 “모호함으로는 억지력을 강화할 수 없다. 억지력에 필요한 것은 명확성과 일관성”이라고 강조했다.

◇ 미국에는 마이너스, 북한에는 플러스인 외교적 실책

트럼프 대통의 발언이 외교적 실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미국 무기통제협회의 킹스톤 레이프 국장은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의 강력한 이행과 협의된 (대북) 대응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할 기회를 놓쳐버렸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레이프 국장은 이어 “압박과 위협만으로는 북한의 방향을 바꿀 수 없다”고 덧붙였다.

미들베리 국제연구소의 제프리 루이스 동아시아 비확산 프로그램 국장은 “이번 발언으로 일본, 한국의 국민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김정은만큼이나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연설은 동맹국의 정치상황을 미국에 불리하게 만들어 북한을 돕는 꼴이 됐다는 것이다.

◇ 북한 군사도발 자극하는 위험한 행위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강경 발언으로 북한이 군사도발을 지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레이프 국장은 “트럼프의 위협과 과격한 수사로 인해 ‘미국의 공격을 막기 위해서는 핵무기를 보유해야 한다’는 북한의 믿음이 더욱 강화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유엔 총회 연설에서 “이란 핵협상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가장 편파적인 거래이자 미국의 수치”라며, 전임 오바마 대통령 당시 체결된 이란과의 핵합의 파기를 주장했다. 이란의 사례를 본 북한이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고 핵실험에 매진할 가능성도 높다.

루이스 국장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이 오히려 물러서기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위협에 수그리는 모습을 보일 경우 자신의 카리스마가 약화돼 내부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의 경고에 물러선 적이 한 번 있다. 지난 8월 14일 북한이 괌 포격 위협을 유보한다고 발표했을 때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이 현명한 결단을 내렸다"며 흡족해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비웃듯 8월 29일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통과하는 중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고, 9월 3일 6차 핵실험을 감행하며 군사도발을 재차 시도했다. 루이스 국장은 이에 대해 “북한은 잊지 않고 있었다. 단지 준비하는데 시간이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 트럼프 대통령 연설, 전임대통령들 발언과 다르지 않아

그러나 전임 대통령들도 적국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과 비슷한 수위의 발언을 해왔다며 이번 연설이 특별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재커리 켁 비확산교육센터 선임 연구원은 “이번 연설은 트럼프의 성향이 반영된 미국의 기본적인 대외 정책”이라며 “다채로운 언어를 사용했을 뿐, 전임자들과 비교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4월 26일(현지시간) CBS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가진 무기로 북한을 파괴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 또한 2002년 1월 9일(현지시간)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지목하며 사담 후세인에게 “48시간 내에 이라크를 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핵 전문가인 매튜 크로닉 조지타운 대학 교수는 “미국 대북전략의 핵심은 현존하는 핵위협을 억제하는 것”이라며 “트럼프는 북한이 미국과 동맹국을 공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잠재적 이득보다 치러야 할 비용이 더 크다는 것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 국제사회, 트럼프 발언 두고 ‘지지’ vs ‘반대’ 양분

전문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가운데, 국제사회의 반응은 양분되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이 같은 위협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어 “군사적 해결은 절대적으로 부적절하기 때문에 외교적인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또한 “군사적 해법을 회피하고 북한에 대한 압박을 늘려야 한다”며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반면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19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이 계속 국제 공동체에 저항해 도발하고 있으며, 이웃 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다. 김정은이 다른 길을 가도록 필요한 모든 수단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같은 날 연설에서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해 “이런 위협의 심각성은 전례가 없는 것”이라며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있다'는 미국의 대북 태도를 일관되게 지지한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량국가’로 지목한 이란·북한·베네수엘라는 비슷한 수위의 발언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불량배 풋내기'(rogue newcomer)라고 조롱했으며,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도 트럼프를 ‘국제정치의 새로운 히틀러’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개 짖는 소리”라며 짧은 평을 남겼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강경 발언은 이전과는 달리 국제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인 만큼 발언의 파급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이번 발언이 전문가들의 예상처럼 북한 군사도발을 자극해 상황을 악화시킬지, 아니면 대북 압박 강화로 이어져 성과를 거둘지, 혹은 이전처럼 그저 인기몰이용 발언으로 그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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