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신문=임해원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9일(현지시간) 유엔 총회에서 “북한을 완전히 파괴시킬 수 있다”고 발언했을 때, 정말 두려움을 느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향한 과격한 언사를 사용한 것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김정은은 미치광이”, “사람들이 죽어도 한반도에서 죽을 것”, “화염과 분노” 등 한 국가의 수장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높은 수위의 발언을 북한을 향해 반복해왔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 발언들이 사실상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왔다”는 외침과 별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발언만큼이나 강도 높은 대북 압박으로 성과를 거둔 적이 없다. 최근 채택된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도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지 못해 꽤나 완화된 수준으로 변경됐다.

북한도 이를 알고 있는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비웃기라도 하듯 군사도발을 반복해왔다. 지난 8월 29일에는 대담하게도 일본 홋카이도 상공을 가로지르는 미사일을 발사했고, 9월 3일에는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거짓말을 반복한 양치기 소년은 양떼를 잃었지만, 정치가는 말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정치생명을 잃는다. 특히 대중의 지지를 바탕으로 권력을 획득해야 하는 민주주의 체제의 정치인은 공수표를 남발할 경우 막대한 청중비용(정치인이 자기가 한 말을 실제로 실천하지 않을 경우 받는 타격)을 짊어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에도 청중비용을 적립 중이다. 국제사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내용 없는 강성발언에 못미더운 눈길을 보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총회 기조연설이 있은 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외교적 해법이 우선”이라며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기 말을 지키지 못하고 양치기 소년이 된 이유는 사실상 지키지 못할 말을 했기 때문이다. 북한 주변의 이해관계국들을 고려하면 군사적 해법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대개 군사행동을 염두에 둔 위협이었다.

북한에 대한 억지력은 역량과 신뢰성에서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말뿐인 군사행동보다 실질적인 경제적 압박으로 군사도발의 비용이 이득보다 크다는 것을 북한에게 알려줬어야 했다. 또한 일관되고 신뢰할 수 있는 발언을 통해 대화의 의지를 북한에게 인식시켰어야 했다.

그랬다면 북한도 군사도발과 대화가 가지는 각각의 비용과 이득을 계산해 경로수정을 고민했을 지도 모른다. 하다못해, 군사도발의 빈도라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믿은 마을 사람이 없었듯이, 트럼프 대통령의 공수표를 믿고 북한이 도발을 멈출리 없다.

게다가 이번 유엔 총회 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의 핵 합의가 미국의 ‘흑역사’라며 파기를 주장했다. 이란과의 핵 합의를 아무렇지도 않게 파기하면서 북한에게 “군사도발을 멈추고 대화하자”고 말한들 효과가 있을리 없다.

다행히 21일 중국이 북한과의 금융거래 중단을 선언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살렸다. 중국 일선 은행이 북한과의 거래를 중단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도발을 계속한다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말을 지킨 첫 번째 사례가 된다.

중국의 대북제재 동참은 큰 소득이지만, 아직 먼 여정의 첫걸음이기도 하다.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해서는 예측 가능하고 일관된 메시지와, 이를 뒷받침하는 효과적 억지 수단의 입증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변국을 불안에 떨게 만드는 “완전파괴” 같은 발언을 자제하고, 한 국가의 수장다운 일관된 행보를 보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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