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신동빈, 롯데그룹 총괄 경영" 주장...실질적 혐의 입증 못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25일 열린 34번째 롯데그룹 경영 비리 공판에 참석했다. (사진=유수정 기자)

[월요신문=유수정 기자] ‘롯데 오너가 비리’와 관련 그간 분리해 진행했던 공판들을 병합하고 재판에 속도를 내겠다는 재판부의 포부와 달리, 병합 후 이뤄진 첫 재판에서 결정적인 증거가 나타나지 않아 사건이 또 다시 장기화 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4부(부장판사 김상동)는 25일 오전 10시부터 열린 34번째 롯데그룹 경영 비리 공판에서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격호 명예회장의 내연녀인 서미경씨의 공판을 병합할 뜻을 밝히고 공통기록 서증조사에 돌입했다.

이날 재판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비롯해 신동주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 신격호 명예회장의 세번째 부인인 서미경씨가 출석했다. 강현구 전 롯데홈쇼핑 대표, 소진세 롯데그룹 사회공헌위원장, 채정병 전 롯데카드 대표, 황각규 롯데그룹 경영혁신실장 등도 얼굴을 내비쳤다.

재판에 앞서 가장 기대되는 상황은 신격호-신동빈 부자의 만남이었다. 신 회장이 “신 명예회장의 지시를 따랐을 뿐 직접적인 경영권을 행사한 적 없다”고 연일 주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자리에서 만나는 두 사람 간의 열띤 공방이 예상됐기 때문.

그러나 이번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이날 재판에 불참해 혹시나 하는 시나리오는 역시나 연출되지 않았다.

34번째 롯데그룹 경영 비리 공판이 열린 서울중앙지방법원. (사진=유수정 기자)

쟁점별로 분리됐던 롯데가 비리가 한자리에서 다뤄지는 첫날, 주된 이슈는 신동빈 회장의 롯데그룹 전반의 경영권 행사 의혹에 있었다.

이날 오전 검찰은 신 회장의 집무실에서 발견한 정책본부 운영과 관련된 자료를 증거자료로 제출하며 “신동빈은 다양한 채널을 이용해 정책본부를 장악했고 지시를 하는 등 그룹 전반을 총괄해왔다”고 주장했다.

롯데쇼핑을 필두로 운영된 정책본부는 형식적으로는 롯데 계열사들이 개별로 담당할 수 없는 업무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마련했으나, 실제로는 신 회장의 정보창구 및 계열사의 관리감독을 위해 사용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실제 정책본부 팀장으로 근무하던 직원의 증언을 활용해 “각 계열사의 자금조달 및 세무조사 등까지 정책본부에서 이뤄졌다”면서 “신동빈이 정책본부를 필두로 그룹 전반을 장악했다”고 말했다.

이어 “신 회장은 자신은 고령인 신격호를 대신해 2011년 이전부터 회장직함을 가지고 대내외 행사에 참여했던 것 일뿐 여전히 최종결정권은 신격호에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발견된 정책본부의 문건에서 그룹 전체의 현안에 대해 각 소관 실별로 구체적 보고를 받아왔음이 드러났다”면서 “실제 경영에 대한 지시까지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이 과정에서 000씨(이하 a씨)라는 인물이 지칭된 문건 역시 공개됐다. 검찰은 a씨를 롯데백화점에서 퇴진시키려는 과정에서의 유의사항을 정리한 문건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이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해당 문건에는 “퇴진 절차와 관련해 신영자를 중심으로 친인척 등이 결집하지 않도록 하려면 그룹이 제안할 수 있는 부분과 그가 제시하는 부분을 적절히 적용해야한다”며 “재단 이사단 직을 제공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며, 새 대표이사는 그의 영향력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또한 “후폭풍이 예상될 수 있으니 언론 등을 활용 여론대책을 사전에 만드는 등 그룹의 조직을 이용해 체계적인 대응을 할 것을 명했다”면서 “(신격호)총괄회장의 사인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지만 이는 신격호의 권위를 등에 업고 이 같은 작업을 진행했던 것으로 보여진다”고 판단했다.

실제 신동빈은 다른 형제와 가족에 대한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견제를 위해 인사에 있어 깊게 관여했다는 것이 검찰 측의 설명이다.

아울러 SPC 설립을 위한 현대 로지스틱스 인수와 롯데케미칼 설립 및 미국 셰일가스시장 진출, 네슬레와의 합작투자를 위한 공동사업 제안, 중국 편의점 사업 진출을 위한 세븐일레븐 일본 본사와의 미팅 등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실제 경영권을 행사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금호아시아나 지분 인수와 관련해서는 신격호에게는 보고조차 안 된 부분이라며 신 회장의 경영권 행사 의혹과 관련해 공격을 퍼부었다.

이밖에도 롯데백화점 측이 신격호에게 보고하고 온라인 프리미엄몰의 오픈을 추진하고자 했던 사례도 제시했다. 당시 신동빈은 “현재 닷컴과 아이몰이 운영되고 있는데 굳이 백화점에서 또 그럴 필요가 있느냐”면서 사전에 자신에게 보고하지 않고 일처리를 한 점을 질책한 후 결국 자신의 뜻대로 롯데닷컴에서 프리미엄몰을 운영하게 했다는 것이 검찰 측의 설명이다.

이날 검찰은 2시간가량 진행된 오전 재판에서 신동빈의 자율적 경영권 행사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제시했지만 가장 중요한 쟁점인 ▲롯데피에스넷 불법 지원(배임 혐의)과 ▲롯데시네마 매점 불법임대 ▲총수일가 부당급여 지급 혐의 등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내놓지 못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검찰의 주장대로 신 회장이 롯데그룹을 전반적으로 지시했다고 하더라도 횡령·배임 의혹을 실질적으로 입증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K스포츠재단 뇌물공여 혐의의 경우 앞서 무죄가 인증됐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달리 롯데가 면세점 사업권을 되찾기 위해 출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 상황이다.

서미경씨 역시 25일 열린 34번째 롯데그룹 경영 비리 공판에 참석했다. (사진=유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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