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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프리카 외노자의 추석나기 | 아니타의 추석 전야
<사진=월요신문>

[월요신문=김혜선 기자]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에는 가족, 친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보내는 것이 일반이다. ‘민족’의 범위에 들어가지 않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특히 우리와 외모가 확연히 다른 아프리카계 외노자들은 어떻게 추석 연휴를 지낼까.

추석을 하루 앞둔 지난 3일 저녁 7시,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빌라촌을 찾았다. 이 빌라촌은 아프리카 등지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외국인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으로, 출·퇴근 시간이면 근처 가구공장 등지로 일하러 나가는 외노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2년 전 아프리카 가나에서 한국을 찾은 아니타(32) 역시 이곳에 정착했다.

빌라가 빼곡히 들어찬 동네의 골목은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는데, 아니타의 집은 그 중에서도 맨 끝자락에 있다. 아니타는 같은 나라에서 온 다니엘(35)과 지난해 결혼해 이제 200일 가량 지난 아기 임마누엘과 함께 오순도순 산다. 다니엘은 한국 땅을 밟은 지 8년차다.

집 안으로 들어서니 온갖 음식 냄새가 진동했다. 주방 한 쪽에서는 아니타가 가나 전통 음식을 만드느라 분주하다. 다니엘은 주방 바닥에 잔뜩 떨어진 밀가루 가루를 쓸어 담느라 정신이 없다. 여느 집 명절 준비와 비슷한 풍경이다.

추석에 무엇을 하냐고 물으니 아니타는 “가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친구들과 부산으로 2박 3일 간 여행을 간다”고 답했다. 올해 세 번째 추석을 맞이하는 아니타는 “한국에 온 첫해에는 그냥 집에서 추석을 보냈다. 이번에는 고향 사람들과 함께 지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아니타는 “오전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내일 여행을 위한 음식을 준비했다. 아프리카 커뮤니티가 있는데 파주와 안산, 수원 등지에서 다들 모여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파주에서 모이는 인원만 20여명. 다니엘은 “갑자기 빠지는 인원을 생각해도 파주에서만 16명 이상은 갈 것 같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은 인원에 놀라워하자 다니엘은 “매년 이렇게 명절에 모여 여행을 가거나 당일치기라도 근교에 놀러간다”고 말했다. 작년 추석에는 에버랜드에 갔단다. 다니엘은 “하지만 설날에는 날씨가 추워서 대부분 집에 머무른다”고 덧붙였다.

아니타가 준비한 음식은 가나 전통음식인 졸로프(Jollof·가나식 볶음밥)와 참치 파이, 치킨 꼬치 등이다. 집 안에는 식탁이 없어 소파에 앉아 접시를 의자 위에 두고 저녁을 먹었다. 특히 감탄한 음식은 참치 파이였는데, 막 구워서 따끈한 것을 한입 베어 무니 바삭한 페이스트리와 부드러운 참치가 조화를 이뤘다. 다만 졸로프는 특유의 향신료 향으로 한그릇을 비우기 힘들었는데 다니엘은 ‘집밥(Homey food)’이라고 좋아한다.

참치 파이. <사진=월요신문>
가나 식 볶음밥 졸로프. <사진=월요신문>

기자가 “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 교통체증이 심할 것 같다”고 걱정하자 다니엘은 단박에 “노 프라블럼”이란다. 그나마 한국은 여러 가지 우회로가 있어 거북이 걸음이라도 조금씩 움직이지만, 가나는 포장도로가 많지 않아 한번 교통체증이 발생하면 서너시간은 그대로 ‘정차’하는 것이 예삿일이라고 설명했다.

가나에는 추석 같은 명절이 없냐고 묻자 건국기념일이나 라마단(이슬람 금식 성월) 등에는 쉬지만 추석 같이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기간은 없다고 했다. 다니엘은 “대신 가나는 일년에 한 달 정도 휴가를 갈 수 있다. 보통 회사에서 휴가 기간이 겹치지 않게 일정을 잡고 가족과 함께 한달간 휴식한다”고 설명했다.

가족들이 보고 싶지는 않을까. 이 부부 내외는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요즘은 휴대폰으로 연락도 자주 할 수 있다. 행복하다”고 답했다. ‘소외된 외노자’를 상상한 것이 미안할 정도로 밝은 답변이다.

다니엘은 “한국은 고등학생조차 아침 7시부터 저녁 11시까지 학교에서 바쁘게 지낸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라며 “가나는 경제성장이 느리긴 하지만, 보통 8시에 출근해 4시에 퇴근하는 일상을 보내 대부분 행복을 느끼며 산다”고 말했다. “한국인은 더 행복해도 된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이 사람들, 한국인보다 명절을 더 제대로 보내는 것이 아닐까.

김혜선 기자  nav7396@wo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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