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이 야기한 실업난 해소 대안으로 ‘주목’

 

 

기본소득제도가 4차 산업혁명에 의해 심화될 경제 불평등을 해소할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 모습. <사진=뉴시스>
경제 성장 둔화의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이 오히려 경제 불평등을 야기할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전 노동부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는 최근 “앞으로 경제 불평등은 더 심해질 것”이라며 “미국도 경영진과 일반 근로자의 소득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 성장둔화보다 빈곤이 더 큰 문제”라고 단언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기본소득(basic income)제도’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기본소득제도는 경제 불평등과 4차 산업혁명으로 촉발되는 대규모 실업난을 해결할 수 있는 최선책일까. <편집자 주>

 

[월요신문=홍보영 기자] 산업혁명으로 인한 기계의 보편화는 수공업자들의 몰락을 초래했다. 이 시대의 노동자들은 기계야말로 빈곤의 원인이라고 생각, 기계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을 강행한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치 아래 경제·산업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ICT 기술 등을 기반으로 한 완전자동화의 물결이 변화의 핵심이다.

자동화가 진행될수록 자연히 인간이 설 자리는 좁아지게 된다. 미래학자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규모 실업사태가 빚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는 오는 2055년까지 약 50%의 노동 영역이 로봇과 AI에 의해 자동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지난 2015년 말 한국노동연구원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있는 전체 고용 인원의 55~57%는 로봇에 의해 자동화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분석됐다.

옥스퍼드대의 마틴스쿨(Martin School)은 “20년 내에 현재 직업의 47% 정도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물론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도 있다. GE는 AI와 3D프린팅, 빅데이터, 산업로봇 등 4차 산업혁명 핵심 동력과 관련된 분야에서 20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럼에도 일자리의 총량은 감소할 것이라는 게 미래학자들의 중론이다.

조너선 워첼 매긴지글로벌 연구소장은 “디지털화 수준이 상위 10% 이내에 든 기업이 전체 기업이익의 45~55%를 가져갈 것”이라며 “이윤 독식으로 기업 간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근로자의 임금 수준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기본소득제도가 고용불안 잠재우나

자신의 일자리가 위협받을 때 이전 산업혁명에서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했다면, 이번 혁명에서 노동자들은 무엇을 파괴할 수 있을까?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AI, 빅데이터, ICT 등은 모두 소프트웨어가 동력이다. 파생되는 힘이 이전보다 훨씬 강력할 뿐만 아니라 인간을 통제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실업난에 대처할 수 없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러다이트 운동은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전개돼야 한다. 최근 예상되는 대규모 실업사태와 경제 불평등을 해소할 대안으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것은 ‘기본소득제도’다.

기본소득은 국가가 재산, 노동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개별적으로 무조건 지급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현재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 제도가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다. 핀란드 정부는 올해 1월부터 2018년까지 실업자 2000명을 대상으로 560유로의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실험에 착수했다. 미국에서는 실리콘밸리 창업 육성 기업 와이콤비네이터가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기본소득제도를 실험 중이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서는 기본소득 도입으로 인한 빈곤해소 효과 파악에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도 대선 과정에서 “기본소득의 의미를 적극 인정하고 주어진 재정 여건 속에 기본소득의 취지를 최대한 살릴 것”이라며 생애맞춤형 기본소득 보장제도의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구체적으로 ▲0~6세 아동수당 도입 ▲미취업 청년 1~2년간 약 30만 지급 ▲소득 하위 70% 노인 30만원 균등지급 등이다.

◇ 실업난 해소 VS 경제성장 저하

국내에서 기본소득제도 도입을 둘러싼 재계의 찬반 논란이 뜨겁다. 일각에서는 저성장 기조를 돌파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면 오히려 비경제활동인구를 증가시켜 경제성장을 저해할 것이란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조경엽 한국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본소득제도를 도입하고도 노동의 행태가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소득재분배가 크게 개선될 수 있지만, 노동의 역유인 효과를 고려하면 소득재분배는 오히려 악화될 수 있고, 비경제활동인구가 늘어 경제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복지지출에 대한 재원조달방안 합의가 부재한 가운데 국가부채가 매해 40조원씩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기본소득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도 있다. 기본소득을 언급하기 앞서 금융 취약계층인 장애인, 노인 등의 소득보장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이 제도의 도입이 복지 사각지대를 해결하고 노동력의 탈 상품화를 가능케 하는 등 순기능이 더 많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 열린 ‘기본소득, 복지를 어떻게 바꿀까’ 토론회에서 황선자 한국노총중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한계소비성향이 높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이 이전돼 일반 사람들의 소득 증가가 성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노동 과정에 대한 자본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노동조합의 협상력은 강화될 수 있다”고 피력했다.

진보와 보수진영에서 기본소득제도는 폭넓게 지지받고 있는 모양새다.

진보진영은 기본소득이 인간에게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마련해 줌으로써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한다고 평가한다.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고용주의 부당한 처우에 대항하기 수월해질 뿐만 아니라 여성들도 경제적 자립을 통해 가부장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관료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지는 것을 억제하고 실업난 해결과 내수 소비 활성화에 기본소득이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기존 사회 복지제도에서 빈곤한 자가 생활보호나 공적 부조를 받으려면 자산조사에 의한 수급자격 여부를 심사받아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 사생활 침해, 행정권의 남용 및 비대화 등이 기본소득을 통해 해결된다는 것이다.

올해 초 이재명 경기도 성남시장은 기본소득 관련 토론회에서 우리나라도 기본소득제도를 시행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제 복지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과 함께 복지정책 방향의 전환이 시급해졌다”며 “기본소득제도는 복지 분야에 대한 가장 경제적인 투자”라고 기본소득제도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박경식 미래전략연구원장 역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부의 ‘분배’ 역할에 대한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며 “‘기본소득제도’ 적용을 고려해야 한다. 미래학자 대부분은 기본소득제도 시행은 필연이라고 입을 모은다”고 강조했다.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불리는 허버트 사이먼은 “모든 소득과 부는 남의 지식을 활용한 대가로, 70%의 평률세율(flat rate tax)로 과세해 기본소득으로 재분배하자”고 제안했다.

◇ 국내 실정에 적합한 복제 모델 창조해야

지금까지 이상적인 모델로 여겨져 온 복지국가의 실현은 더 이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에 적합하지도 않다.

더 이상 완전 고용을 가능하지 않으며 고도의 경제 성장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복지국가의 중심축을 이루던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는 점차 확대되고 있고, 빈곤층을 지원하는 제도도 궁극적으로 빈곤을 해결하지는 못한다.

복지국가의 이상적 모델로 여겨져 온 스웨덴도 최근 많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스웨덴은 상위 10%가 자산 70%를 차지하는 등 부의 세습이 만연하며, 청년 실업률은 한국을 능가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고 앞에서 기존 복지모델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기본소득제도는 아직 선진국에서도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만큼, 기본소득제도와 여러 복지 서비스를 융합해 한국 실정에 맞는 복지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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