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회사 횡포

“인터넷 쇼핑몰에서 주문한 물건이 배송예상 일수였던 3일이 지나도 오지 않아 택배 기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오히려 내게 화를 냈다. 나중에는 욕설까지 하더라” “일이 있어서 전화를 못 받았는데 나중에 택배 기사가 집 앞에 와서 문을 마구 두드리더니 왜 전화를 안 받냐고 화를 내며 물건을 한 손으로 던지듯이 하며 가버렸다” 인터넷 쇼핑사이트나 소비자 커뮤니티 등을 들어가면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택배 관련 피해 사례들이다. 일부 택배 기사들의 막말과 횡포로 소비자들의 서비스 불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택배 업체 측은 “교육 하겠다”는 말만 하고 시정 노력이 거의 없거나, 아예 기사의 잘못으로만 넘기고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우가 많아 빈축을 사고 있다. 또 이러한 문제의 중심에는 택배 회사의 고질적인 구조적 문제점이 숨어 있어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되는 택배화물운송서비스 관련 피해사례 상담은 2006년 3723건에 비해 올해는 8월까지만 2000여건이 접수돼, 그 피해가 날로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피해 유형으로는 배송물품 분실과 파손, 배송지연, 그리고 배송기사들의 불친절 등이 주를 이루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서워서 택배 받겠나”
경기도 이천에 사는 김현지(가명.21세) 씨는 얼마 전 친구의 생일이 다가와 선물을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택배가 늦게 왔다는 구매자들의 글을 많이 봤었기에 친구의 생일을 1주일 정도 남겨 놓고 미리 주문한 것이었다. 하지만 9월 24일에 주문한 상품은 1주일이 흐른 10월 1일이 되도 도착을 하지 않았다. 주말이 껴 있었다고는 하나 주말을 제외하고 5일이나 지났음에도 택배가 도착하지 않는 것에 현지 씨는 화가 날 수 밖에 없었다.
전날인 30일, 쇼핑몰 주문내역의 송장번호를 통해 배송상태를 조회해보니, 물건은 이미 월요일인 27일에 출고되어 D택배회사 지역 영업소 택배 기사에게 28일에 넘겨진 상태, 29일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인수자가 떠 있고 배송이 이미 완료됐다는 표시가 돼있었다. 어이가 없어진 현지 씨는 바로 기사에게 전화를 했고 “바빠서 못 갔다”는 황당한 답변만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 도착하겠다고 했던 택배 기사는 하루가 지난 10월 1일까지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현지씨는 친구의 생일이 지나서야 선물을 줄 수밖에 없었고 한 두 번도 아닌 택배 기사의 늦장 배달에 이제는 그 회사 자체에 신물이 나버렸다고.
소비자들은 물건 구매의 편리를 위해 인터넷을 통해 쇼핑을 하고 택배를 통해 배송을 받는다. 또, 직접 갈 수가 없어 물건을 택배로 보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직접 가서 사고 직접 갖다주는 것보다 더 느리다면 택배를 이용할 필요가 거의 없는 것이다. 이렇듯 배송 지연으로 인한 피해가 수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지만 개선은 전혀 되고 있지 않다. 피해 소비자들만 속이 탈 뿐이다.
하지만 단순한 배송지연으로 인한 피해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택배 기사가 자신의 잘못으로 배송을 잘못하거나 소비자가 전화를 받지 못하는 등 조그만 실수를 한 것에 대해 화를 내고 욕설까지 하는 경우도 있어, 더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인천에 사는 강수현(가명,34세) 씨는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중 H택배기사의 전화를 받았다. 기사는 다짜고짜 화를 내며 왜 초인종을 눌러도 답이 없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집 주소를 다시 확인하는데 알고 보니 아파트 내 다른 동의 같은 호수로 찾아간 것이었다. 자기가 잘못 찾아왔다는 것을 안 택배기사는 “아 여기가 아니네”라며 다른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고, 잠시 후 수현 씨의 집에 찾아온 기사에게 “왜 화부터 내고 사과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냐”고 묻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가만히 쳐다만 보고는 물건을 던지다시피 하며 가버렸다고 한다.
수현 씨는 곧바로 택배 회사 쪽에 전화를 걸어 항의를 했지만 “징계 조치를 내리겠다. 죄송하다”는 상담원의 답변만 들었을 뿐 이후 택배기사의 사과 전화도, 어떤 조치가 내려졌는지도 전해들을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수현 씨는 택배기사가 혹여나 해코지라도 할까봐 더 이상의 대응을 할 수가 없었다.
전화 통화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물건을 집 앞에 놔두고 갔다고 해서 항의를 했다가 반말에 욕까지 들었다는 사례도 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전화를 받지 못 한 것임에도 “그러면 전화를 받던지”라면서 급기야는 개000, 시00 같은 입에 담지도 못할 소리를 들은 피해자는 택배기사의 인신공격에 두려움까지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직원 교육과 관리 부족
피해자들이 택배 기사의 횡포에 고객 센터로 전화를 해도 “죄송하다. 고치도록 하겠다”는 답변만 들을 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고쳐지거나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기사 서비스 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서도 기사 탓으로만 돌리고 기사에게 직접 전화해 말해보라는 답을 들었다는 사례도 많았다. 또 택배회사의 책임회피는 물품 분실이나 파손의 경우에도 일어나, 피해 소비자들은 “누구에게 보상을 바라야 하냐”며 답답해하고 있다.
택배회사들은 저마다 모든 피해의 원인을 기사 자질과 잘못으로만 돌리고 있지만, 택배기사들은 엄연히 그 회사의 로고가 박힌 차량을 타고, 그 회사의 유니폼을 입고, 그 회사 직원으로서 배송 업무를 보는 것이다. 그런 직원이 잘못을 일으킨다면 당연히 회사에서 책임을 지고 문제 해결을 해야 함에도 그러지 않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 고객들을 향한 택배 기사들의 횡포는 택배 회사의 교육.관리 부족에 근본적 원인이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한국소비자 연맹에 따르면 국내 택배 업계는 택배사와 영업소, 영업소와 택배기사 간 계약관계가 이루어져 있어 문제가 생기면 책임소재를 따지기가 어렵다고 한다. 또 배송 기사들의 불친절과 막말 등으로 인한 피해는 입증도 쉽지 않아 더욱 보상이 어렵고, 영업소에서 뽑은 직원이라 본사 측의 문제해결은 거의 어렵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개별 영업소가 영세한 규모이다 보니 철저한 서비스 교육보다는 최소한의 교육만 시킨 뒤 바로 실무에 투입시키는 것도 큰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5년 째 한 대형택배회사의 배송기사로 일하는 정모(30세.남)씨의 말에 따르면 영업소에서 낸 구인광고를 보고 찾아가 보면 1주일의 수습기간 동안 배송하는 법과 착불 처리 등에 대한 내용과 지역 주소지들의 위치를 익힐 뿐 갑작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교육과 서비스 교육 등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택배기사들의 불친절과 실수 등이 종종 일어나는 것이라고 정모 씨 뿐 아니라 다른 업계 관계자들도 입 모아 말하고 있다.
수익을 내기 위해 영업점들이 택배기사들에게 과중한 업무를 요구하는 것 또한 고객피해의 원인으로 꼽힌다. “오전 8시에 물건을 모두 싣고 나오면 10시가 다 되어가고 이때부터 평균 120여개의 물건을 배송해야 한다”는 증언은 비단 한 두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배송해야 할 물건은 많다보니 시간에 쫓기며 식사도 대충하게 되고, 그런 와중에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거나 해서 시간이 지연되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 보면 고객들과 실랑이가 일어나기도 하고 정신이 없어 물건을 분실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고 택배기사들을 고백한다.
결국 택배회사의 이상한 거래관계와 관리의 미흡, 영업점의 교육부족과 수익만을 생각하는 업무 지시로 기사들의 불친절과 고객 피해가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영업소와 본사에서의 근본적인 시정과 대책들이 요구된다. 그러나 수익내기에만 급급한 업체들이 과연 고객서비스를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일지 의문이라는 시각이 적지 않다.
<서지영 기자>
[날짜 : 10-11-08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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