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상권 살리자는 취지와는 달리 효과는 제로, ‘유통산업 퇴화법’되나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로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오히려 유통산업을 퇴화시킬 것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유수정 기자] 2017년 하반기 유통업계의 가장 큰 화두를 꼽으라면 단연 최근 국회에서 논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일 것이다.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유통가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골이 날이 갈수록 깊어짐에 따라,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대기업을 더욱 옭아 메겠다는 뜻이다.

지난달 29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필두로 11명의 의원들은 그동안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일부 개정 법률안 내용들을 상당 부분 포괄한 새 개정안을 발의했다.

일명 ‘유통법 개정안’으로 일컬어지는 이번 법안의 주요 골자는 지금까지 대형마트 및 준대규모점포(SSM)에 국한됐던 영업시간 제한 및 의무휴업일 지정 규제를 복합쇼핑몰까지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 예정인 ‘복합쇼핑몰 규제’의 신호탄을 강력하게 쏘아올린 셈이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당시부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목소리를 높이며 10대 공약 중 하나로 ‘더불어 발전하는 대·중소기업 상생 협력’을 내건 바 있다. 또한 정부가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도 관련 내용을 포함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복합쇼핑몰을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과 함께 영업시간 제한, 의무휴업일을 월 4회로 확대하는 등 보다 강화된 규제가 담겨있다. 아울러 유통시설에 대한 허가제 도입과 인접한 지방자치단체 및 기존 상권과의 합의 의무화 등도 포함됐다.

유통업계는 개정안 발의 이후 사면초가에 빠진 모양새다. 문재인 정부의 주요 공약이었던 만큼 어느 정도의 규제는 예상했지만, 이토록 빠르고 강력하게 이뤄질 줄은 몰랐다는 이유에서다.

특히나 대기업에서 직접적으로 운영하는 대형마트와는 달리, 복합쇼핑몰의 경우 90% 이상이 임대 매장으로 운영되는 탓에 규제를 도입할 경우 오히려 피해를 입는 것은 대기업이 아닌 영세업자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복합쇼핑몰에 입점한 점포의 또 다른 이름은 소상공인”이라며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기 위한 취지로 대기업을 제지하려 하지만, 결국 이번 개정안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입는 것은 영세한 점포주일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케아는 사실상의 복합쇼핑몰임에도 불구하고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규제를 피하게 됐다. (사진=유수정 기자)

곳곳에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탓에 법안을 피해갈 대형 유통업체가 많다는 점 역시 이번 개정안이 골목상권을 살리기는커녕 유명무실한 법안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 역시 높다.

법안을 교묘히 빗겨나간 가장 대표적인 유통업체는 ‘가구공룡’으로 불리는 외국계 기업 이케아다. 최근 광명점에 이어 고양점까지 성공적인 개점을 마친 이케아는 가구 뿐 아니라 생활용품, 푸드코트, 식품매장까지 갖춘 사실상의 복합쇼핑몰임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가구전문점으로 분류돼 의무휴업 규제를 실천할 필요가 없다. 이것이 세계 28개국에서 340여개 점포를 운영하는 초대형 글로벌 유통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규제를 당당히 피해갈 수 있게 된 이유다.

골목상권인척 규제를 교묘히 피했지만 사실상의 신형 유통괴물로 떠오르고 있는 ‘식자재마트’ 역시 사각지대의 수혜자다. 일반 대형마트와 다를 것 없는 초대형 규모는 소상공인이 운영하는 동네 마트라고 보기에는 분명 과함에도 불구하고, 별도 업종으로 분류된 바 없기 때문에 행정기관의 허가가 없이도 영업이 가능하며 각종 규제도 피해갈 수 있다.

골목상권 곳곳에 이미 대기업이 깊숙하게 파고든 것도 간과할 수 없다. 올리브영(CJ)과 왓슨스(GS) 등 대기업이 운영 중인 드럭스토어는 이미 전국 곳곳의 동네 상권을 장악했으며, 다이소와 편의점업으로 등록된 이마트24 역시 소비자들의 발길을 사로잡으며 골목상권 활성화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결국 정부가 야심차게 내세운 유통법 개정안은 이 같은 현실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무조건적인 제재만 가한 것이라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실제 지난 2012년부터 5년째 시행 중인 ‘대형마트 및 SSM의 의무휴업일 지정’ 법안이 전통시장의 활성화를 불러오기는커녕 오히려 매출 감소를 일으킨 점에 미루어보아 이제는 상생을 위한 보다 제대로 된 유통 법안이 필요한 때다.

대형마트가 월 2회 의무휴업을 실시한지 5년이 지났지만, 막상 재래시장과 골목상권이 살아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뉴시스/홈플러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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