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사 대부분 CRM 통해 근태관리…영업사원들 “감시 받는 느낌”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사진=뉴시스>

[월요신문=고은별 기자] 국내 제약회사인 유한양행이 최근 영업사원들을 대상으로 개인의 위치정보 수집·이용·제공동의를 요구하면서 ‘위치 추적’ 의혹에 휩싸였다.

8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은 얼마 전 영업사원들에게 SK텔레콤이 제공하는 모바일 통합 보안 프로그램 ‘SSM(모바일 보안 솔루션)’의 이용 동의서를 받았다.

SSM은 영업사원들이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앱)이다. 유한양행에 따르면 이 회사는 최근 ERP(전사적자원관리)를 구축하면서 업무용으로 태블릿 PC를 도입했고, 이 태블릿 PC를 통해 영업활동에 필요한 의학정보나 자료들을 공유하고 있다.

문제는 태블릿 PC의 SSM 이용 동의 항목 중 ‘개인위치정보 수집이 가능하도록’ 한 문구가 포함됐다는 점이다. 직원들에게 발송된 서면 동의서에는 ‘단말기의 환경정보, 오류정보 및 정보 유출 방지를 위한 프로그램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해 단말기의 환경정보 및 개인위치정보 수집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다. 해당 모바일 앱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항목에 동의를 해야 한다.

영업사원들 입장에서는 행여 이 앱이 향후 ‘위치 추적’의 도구로 활용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된 상황이다. 대부분의 제약회사들이 자사의 CRM(고객관계관리) 프로그램을 통해 영업사원들의 업무보고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대형 제약회사 영업사원들은 업무용 휴대폰이나 태블릿 PC를 통해 매일매일 이른바 ‘콜(병(의)원을 방문한 횟수)’을 찍는다고 답했다. 콜을 찍을 때는 사원의 GPS 위치정보도 함께 전송된다.

A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인 B씨는 “이전에 근무했던 제약회사에선 평균 10~12콜을 찍게 했다. 회사별로 상이하지만 1시간에 1번씩 콜을 찍어야 하는 회사도 있었다”며 “계획대로 영업처에 갔었다는 것과 어떤 행위를 했는지 세세하게 보고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실적이 좋지 않으면 이 CRM을 통해 압박도 받고 상사가 ‘이 시간에 왜 여기 있었냐’며 타박할 때도 있다”면서 “당연히 인사고과에도 활용되는 부분이며 회사로부터 위치를 추적 받는 느낌이 든다”고 언짢아했다.

C제약회사의 영업사원으로 근무 중인 D씨 또한 “우리 회사의 경우 첫 콜과 마지막 콜의 시간이 정해져 있고 늦을 경우 지각처리가 된다”며 “‘콜’을 근태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제약회사들은 최소 7콜에서 최대 20콜까지 영업사원의 업무보고와 위치정보를 받고 있다. 회사 입장에서는 외부 근무 특성상 영업사원들의 업무를 보고 받고 관리할 필요가 있지만, 어떤 앱의 경우 업무용 휴대폰이나 태블릿 PC가 켜져 있으면 회사에서 언제든 직원들의 위치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제약업계의 ‘위치 추적’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B씨는 “심지어 어떤 건물 몇 층에 있는 지까지도 확인이 가능한 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논란에 대해 유한양행 관계자는 “업무의 스마트체제를 위해 SSM을 도입하게 됐고 회사자료의 기밀유지를 위해 서비스 이용에 대한 동의를 받은 것뿐”이라며 “위치추적 목적은 전혀 아니다.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기능도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영업사원들의 위치를 공유 받을 수 있는 ‘콜’ 보고와 관련해서도 “유한양행에선 ‘콜’을 받지 않는다”고 논란을 일축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