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항일 뿐”…불공정약관 모방한 숙박예약 업체에 손해 잇따라

유명 외국계 호텔 예약사이트 4곳이 공정위로부터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받았다. (사진=유수정 기자)

[월요신문=유수정 기자] 최근 일부 대기업 및 프랜차이즈 업체 등의 ‘갑질 논란’이 이슈화 된 가운데, 범람하는 숙박 예약사이트 속 외국계 호텔 예약 사이트의 숨겨진 ‘갑질 조항’이 도마위에 올랐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환불 불가 등의 조항에 피해를 입고 억울함을 호소하면서도, 외국계 사업장의 특성상 항의 등 소비자 불만 처리 절차도 복잡해 울며 겨자먹기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공정위가 이 같은 ‘갑질 조항’을 시정 권고하고 나서 국내 숙박 예약 대행 업체 및 일부 개인 숙박 업체에도 변화가 일어날지 귀추가 주목된 상황이다.

최근 업계에 따르면 지난 14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유명 해외 호텔 예약 사이트 4개 업체에 대해 7개 유형의 불공정 약관 조항을 시정하고, 환불 불가 조항을 시정 권고했다.

시정 대상 업체는 아고다 컴퍼니 유한회사(이하 아고다), 부킹닷컴 비브이(이하 부킹닷컴), 호텔스닷컴 합자회사(이하 호텔스닷컴), 에이에이이 트래블 유한회사(이하 익스피디아) 등 총 4곳이다.

이들은 예약 취소 시점을 불문하고 예약 변경이나 환불이 일체 불가능한 약관 조항을 사용해 소비자들에게 예약 취소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넘겨왔다.

일반적으로 숙박 예정일까지 상당한 기간이 남아 있는 경우 해당 객실이 재판매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이들 업체는 기존 예약자에게 취소에 따른 금액을 모두 부담하게 했음에도 이후 취소된 이력이 있던 해당 객실이 재판매 될 경우 수수료는 추가로 챙겼다. 결국 지금까지 이중 이득을 취해온 셈이다.

앞서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호텔스닷컴과 또 다른 숙박 예약업체인 익스피디아의 경우 ‘환불불가’ 표시를 적색으로 진하게 표시해 소비자가 계약 시 유의하도록 하고 있지만, 부킹닷컴과 아고다는 ‘환불불가’ 표시를 별도의 강조 없이 다른 정보와 같은 방식으로 표시했다. 특히 ‘환불불가’라는 표현 대신 ‘특별조건’ 등으로 표시하는 경우도 있어 소비자가 환불불가 상품임을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다.

해당 조항과 관련 아고다를 통해 출발 6개월 전 호주 시드니의 호텔을 3박4일 일정으로 예약했던 김모 씨(36)는 “예약 당시 환불 불가라는 조항을 접하기는 했지만, 일정이 확실하다고 생각해 보다 저렴한 금액에 구매할 겸 특가상품을 결제했다”면서 “일정을 변경하게 돼 취소를 하게 된 것은 분명 내 잘못이지만, 보통적인 얼리버드 상품을 보더라도 환불이 100% 불가한 것은 아닌데 유독 해외 호텔 예약 업체만 그 기준을 너무 강하게 두고 있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아울러 아고다와 호텔스닷컴, 부킹닷컴 등은 취소수수료와 무료취소 마감시간 등 중요한 정보를 아예 제공하지 않거나, 제공하더라도 특정 표시나 기호에 마우스 커서를 올려야만 관련 정보를 확인할 수 있게 해뒀다.

(사진=뉴시스)

이 같은 상황이 잇따르자 공정위는 “예약 취소 시점 이후 숙박 예정일까지 남아 있는 기간과 상관없이 일률적으로 숙박 대금 전액을 위약금으로 부과하는 것은 소비자에게 과도한 손해 배상 의무를 부담하게 하는 조항”이라며 이들 업체에 시정을 권고했다.

결국 이와 관련해 호텔스닷컴과 익스피디아는 시정안 협의를 진행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국내 숙박 예약 시스템 시장에 있어 상당한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아고다와 부킹닷컴은 공정위의 시정 명령에도 적극 반응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이들 4개 사는 환불 불가 조항 외에도 과도한 사업자 면책 조항, 서비스 일방적 변경 조항, 손해 배상 책임 및 청구 기간의 부당한 제한 등과 관련한 조항 역시 보유하고 있었다.

우선 호텔스닷컴의 경우 자신들의 귀책 사유로 인해 숙박료가 낮은 가격으로 책정돼 소비자의 예약이 이루어진 경우임에도 추가 숙박료를 요구하거나 숙소를 제공하지 않았다. 또한 최저가 보장 후 변경된 약관을 소급 적용하기도 했었다.

아고다의 경우 자사 사이트에 기술적 결함으로 발생한 고객의 손해를 책임지지 않겠다고 명시했었다. 또한 귀책 사유를 불문하고 손해 배상 책임의 범위를 일정 금액으로 제한해왔으며, 사업자가 이미 체결된 예약을 이유를 불문하고 수정 및 중단, 해지 할 수 있는 불공정 조항도 있었다.

부킹닷컴과 호텔스닷컴 등 2곳은 자신들의 웹사이트에 기재된 정보의 내용이 틀려서 발생한 손해임에도 고객의 피해를 일체 책임지지 않는다는 약관을 유지해왔다.

부킹닷컴은 이밖에도 소비자가 자사 사이트에 등록한 사진이 허용된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되거나 사업자의 고의·중과실로 발생한 분쟁 등까지도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다.

이들 업체는 ‘갑질 조항’에 피해를 입고 항의하는 소비자에게 보상하는 비율 역시 현저히 낮았다. 2016년 소비자원에 접수된 호텔예약 사이트 관련 소비자피해를 분석한 결과 부킹닷컴과 아고다의 소비자피해 보상률은 고작 27.3%(22건 접수 중 6건 해결)과 20.0%(10건 접수 중 2건 해결)에 불과했다.

(사진=아고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이 같은 해외 숙박 예약 사이트의 ‘갑질 조항’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소비자들이 계속해서 온라인 숙박 예약 플랫폼 사업자(OTA, Online Travel Agency)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숙박업체와 이용 고객을 온라인으로 연결한 서비스에 소비자가 국내외 호텔의 위치와 가격, 예약 여부 등을 손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은 이러한 불공정 약관을 지속하게 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 사이트의 불공정 약관은 국내 숙박예약 업체의 약관에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야놀자, 여기어때를 비롯해 데일리호텔, 호텔엔조이 등 다양한 국내 숙박예약 플랫폼의 이용률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약관으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 역시 상당했던 것.

공정위가 운영하는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모바일 숙박예약’ 관련 소비자상담은 2015년 149건에서 2016년 435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2017년 1분기 말을 기준으로도 무려 156건이나 접수됐다.

소비자원이 소비자상담 내용을 분석한 결과 해외 예약 사이트와 마찬가지로 계약해제·해지, 계약불이행, 청약철회 등 ‘계약’과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들 업체는 소비자가 착오 또는 조작 실수, 변심 등을 이유로 짧게는 수분, 길게는 1시간 이내에 취소 또는 변경을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판매시 환불불가 상품임을 고지했다는 이유로 환불을 거부했었다.

또한 숙박예약 서비스 사업자 또는 숙박업자가 임의로 예약을 취소하거나 계약을 이행하지 않던 사례도 있었다. 이들은 사업자에게 예약취소의 책임(만실, 중복예약 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별도의 손해배상을 거부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원과 공정위의 시정 권고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이는 권고사항일 뿐”이라며 “특히나 이들 기관에서 지적을 받지 않은 일부 업체에서는 아직까지도 불공정 약관을 사용하고 있어 여전히 소비자들이 피해를 입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공정위의 시정권고 이후 60일이 지나도 해당 기업이 이를 시정하지 않을 경우 공정위는 시정명령을 내린다. 명령 60일 이후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공정위는 해당 기업을 검찰에 고발할 수 있다. 실제 공정위는 최근 시정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따르지 않은 숙박 공유 업체 에어비앤비를 검찰에 고발한 바 있다.

저작권자 © 월요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