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백화점 농협, 이번엔 정치후원금?

지난 10월 직원의 잇따른 횡령비리와 과도한 성과급 잔치 등으로 말썽을 일으켰던 농협이 최근에는 불법 정치후원금 모금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이 농협중앙회를 내사 중인 가운데, 경기북부지역 모 국회의원의 불법 후원금 모금의혹을 수사 중인 의정부지점에서도 지난 15일 의정부시, 양주시, 동두천시의 농협 12곳을 압수수색하고 관련 자료를 토대로 수사를 진행 중에 있다. 농협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거액의 후원금을 조성해 모 국회의원에게 전달한 정황을 잡고, 조성 경위를 파악하는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정부지검 측은 15일 오전 10시부터 5시간에 걸쳐 수사관 40여 명을 동원해 농협중앙회 지부 2곳과 지역농협 10곳에서 모 국회의원 정치후원금과 관련된 은행계좌 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또 압수수색 직후 농협중앙회 지부장 2명을 소환해 압수물 확인 등의 기본적인 사실 조사를 벌인 데 이어 16일 다시 이들을 불러 후원금 조성 경위 등에 대해 물었다.
검찰은 현재 의정부, 양주, 동두천 농협중앙회 지부와 단위농협 등 12곳이 정치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직원들 월급에서 10만원씩 원천징수한 사실이 있는지, 지부장과 조합장의 사무실 등에서 압수한 컴퓨터 하드디스크, 관련 자료를 토대로 분석 조사 중이다.
 
단순한 후원금?
농협 직원들이 모금한 정치후원금은 한나라당 소속의 국회 농림수산식품위 모 의원에게 전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농협 측이 ‘농협법 개정안’을 위한 입법 로비로 불법 정치후원금을 조성해 전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졌다.
농협은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기 얼마 전 농협 내부 통신망을 통해 각 지역 농협 직원들에 후원회 기부독려 문건을 발송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불법 정치후원금 강제 모집 논란을 일으켰던 바 있다. 이번 수사도 그러한 논란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청목회 못지 않은 전방위적 입법 로비가 드러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 초기 확대 해석을 경계하며 기부독려 문건 발송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으로, 중앙선관위의 고발에 의한 수사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검찰이 12개 농협에 대해 동시 압수수색을 펼쳤다는 것은 단순한 후원회 수사라기보다 상당한 수준의 범죄 단서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의정부지검은 수사에 앞서 의정부 등 세 지역의 농협 직원들이 지난해와 올해 두 차례에 걸쳐 2억원 상당의 후원금을 조성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 등에 따르면 3개 지역 농협중앙회 지부와 지역농협에서 2009년 12월 1억원, 2010년 8월 1억원 등 모두 2억원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농협으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은 모 의원 측은 “일부 조합장들이 소액으로 후원금을 낸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불법성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후원금 모금이 농협 내부 연락망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으로 전달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강제모금의 성격이 짙고, 또 이것이 불법 정치자금의 소지가 다분히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더 많다. 정치자금법상 개인이 국회의원에게 500만원까지 후원이 가능하지만 기업이나 법인은 후원할 수 없다.
농협은 또 최근 ‘2009년 후원현황 파악’ ‘2010년 국회농수식품위원후원계획(안)’ 등의 내부 공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이번에 드러난 의혹뿐만 아니라,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서 수천만원의 로비 후원금이 조성되어 국회 농식품위 한나라당 의원들에 전해졌다는 의혹도 집중적으로 받고 있다.
 
농협법 개정안 관련 있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8월 말 서울 충정로 농협본사를 급습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2009년 후원현황 파악’이라는 내부 공문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전국농협노조도 같은 달 농협중앙회 대외협력팀이 ‘2010년 국회 농수식품위원 후원계획(안)’이라는 제목의 업무 연락을 각 지역 직원들에게 송부했다고 밝혔던 바 있다.
농협노조가 공개한 문건에는 2008년 전반기 국회와 현재 하반기 국회 농식품위에서 활동 중인 한나라당 소속 의원 두 명의 이름과 함께, ‘목표후원초과로 금차 미실시’라는 내용이 적혀 있어, 이 두 의원이 지속적으로 로비 후원금을 받았음을 시사했다. “평소에 농협 직원들이 안 냈던 게 아니고 해마다 내던 것”이라는 한 직원의 전언도 있었다.
농협은 그동안 신경분리(신용과 경제사업의 분리)를 추진하며 이를 위해 농협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에 열을 올려왔다. 때문에 농협이 현재 의심받고 있는 불법 정치후원금 모금이 농협법 개정안을 위한 입법 로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검찰은 후원금이 농협중앙회를 통해 국회 농림수산식품위 의원들에게 전달됐는지와 관련해 조사에 착수하며, 댓가성이 드러날 경우 해당 국회의원들도 사법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편 농협은 C&그룹과의 수상한 돈거래에 대한 혐의로도 검찰 수사를 받은 가운데, 유령회사 의혹을 받고 있는 신림동 C&백화점 신축 과정에서 취급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연체금이 6000억원이 넘는 등 과도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인한 실적 부진을 겪고 있음에도, 횡령비리와 성과급잔치, 입법로비 의혹 등 논란이 끊이지 않아 안팎으로 비난의 화살을 받고 있다. 이렇듯 농협이 ‘비리백화점’으로 전락하자, 금융권 일각에서는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남은 임기를 채우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서지영 기자>
[날짜 : 10-11-22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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