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노사,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놓고 갈등 첨예
CEO 견제 VS 경영권 침해 팽팽…지배구조 투명성 제고 시급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지난 20일 KB국민은행여의도본점에서 열린 임시주주총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월요신문=임민희 기자] ‘제왕적 경영권에 대한 견제냐, 노조이익을 위한 지나친 경영개입이냐’

근로자의 기업 경영참여를 골자로 하는 ‘노동이사제’ 도입을 놓고 금융권이 들썩이고 있다. 그 첫 단추격인 KB금융지주의 경우 외국인 주주들의 반대로 노조 추천 사외이사 도입이 무산됐지만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이하 KB노조)가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를 재추진(주주제안)할 방침이어서 노사갈등이 재점화될 전망이다.

금융계는 KB금융에서 시작된 노동이사제 도입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멤버로 참여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갖고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KB금융 사례는 노조가 추천하는 사외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한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노동이사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동이사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사항으로, 정부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내년부터 공공기관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후 민간기업으로 점차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서울시 산하 16개 기관 중 9개가 노동이사를 선임하고 있으며, 해외에서는 독일과 프랑스 등 19개국이 시행 중이다.

정부 기조에 발맞춰 KB금융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9.68% 보유)도 지난 20일 개최된 KB금융 임시주총에서 노조가 추천한 하승수 사외이사(현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 선임안에 대해 찬성표를 던졌다. 국민연금 측은 “정치적 고려없이 독립적으로 내린 결정”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은행권은 국민연금발 노동이사제 도입 신호탄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신한금융지주(9.55%), 하나금융지주(9.64%), BNK금융지주(12.52%), DGB금융지주(8.13%)의 최대주주다.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18.52%)인 우리은행의 경우 국민연금이 9.45%의 지분(2대 주주)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의결권 지분이 0.1% 이상이면 주주제안이 가능해 졌다. 현재 은행권 우리사주 지분은 국민은행 0.18%, 우리은행 5.35%, 신한금융 4.73%, 하나금융지주 0.92%로 노조가 원하면 언제든 주주제안권을 행사할 수 있다.

실제로 KB노조는 우리사주조합 지분을 바탕으로 사외이사 선임안건을 주총에 올렸다. 우리은행 노조의 경우 올해 초 사외이사 선임안을 주총 안건으로 신청했고, 하나은행 노조에서도 내년 3월 주총 후 사외이사 추천을 검토 중이다.

노조가 내건 사외이사 추천제 도입 명분은 제왕적 권한을 행사해온 최고경영자(CEO)에 대한 감시와 견제기능 강화다. 과거 내부갈등으로 촉발된 ‘신한사태’, ‘KB사태’ 등을 계기로 금융회사지배구조 개선과 사외이사제도 강화 장치가 마련됐지만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기업들의 분기별 보고서를 보면 사외이사들이 경영진의 결정에 반대 입장을 보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어 ‘거수기’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반면 금융회사 경영자 측은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시 노조이익만 대변할 수 있다며 경영권 침해를 우려하고 있다.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지난 20일 임시 주총에서 연임이 확정된 후 기자간담회를 열고 노조와의 대화의지와 지배구조개선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에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 회장은 “KB금융은 주주제안을 통해 상시적으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받고 있고 이미 3명의 사외이사가 소액주주 대표로 뽑혔다”며 “노조 추천후보를 추가할 경우 자칫 노조 이익만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살 수 있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했다.

이에 대해 박홍배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은 “현재 KB금융의 사외이사들은 교수나 CEO 출신으로 그들만의 인력풀 속에서 그들끼리 의사결정을 한다”며 “소액주주 추천으로 선임된 인사는 공정거래위원장, 청와대 정책실장 출신인데 노조한테도 3년동안 후보를 추천하라는 말만 했을 뿐 한번도 선임된 적이 없다”고 개탄했다.

박 위원장은 “상법과 금융회사지배구조에관한법률에 따라 직원들이 소수주주권을 행사해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한 것일 뿐 노동이사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내년 3월 주총에서 사외이사 추천을 재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B노조는 6개월 내에 동일한 인물을 사외이사 후보로 올릴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 새로운 인사를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할 계획이다.

은행권 노조에서 사외이사 후보 추천에 나서고 있지만 주총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연금이 우호적이지만 주요 금융권 지분구조상 외국인 주주 지분율이 60% 이상을 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KB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 선임 안건은 임시 주총에서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 대비 13.73%, 출석 주식수 대비 17.73%만 찬성해 부결된 바 있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학 객원교수는 “‘그들만의 리그’였던 이사회에 노동계나 직원 추천 인사가 들어가게 되면 경영권 견제 효과는 물론 지배구조 투명성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며 “이해관계자집단 등 주주들도 중요하지만 수년간 회사를 위해 일해 온 직원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노동이사제 도입에 따른 경영권 침해 우려에 대해 “이사회가 5~6명 이상으로 구성되는데 노조 추천 인사 한명 들어간다고 해서 ‘노치(勞治)’나 ‘경영권 침해’를 얘기하는 건 말이 안된다”며 “은행권에서 낙하산 인사, 핵심성과지표(KPI) 문제가 논란이 됐는데 이사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충분한 논의를 통해 더 나은 방안을 마련하는 ‘정반합’으로 가면 노조도 협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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