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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조와 2018년 암행어사“백성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직 어사뿐이다”
정조의  개혁의지를 담은 수원화성행궁 사진제공=뉴시스

[월요신문=윤명철 기자] <정조실록> 정조 18년 11월 16일 기사다.

정조는 경기 각읍의 암행 어사와 적간 사관(摘奸史官)에게 별도로 “수령의 잘잘못을 규찰하고 백성들의 괴로움을 살피는 것이 어사의 직임이다. 비단옷을 입는 것은 그 은총을 드러내는 것이요, 도끼를 지니는 것은 그 권위를 높이려는 것”이라고 유시했다.
 
정조는 “근래 혹 각도에 보낸 사람들이 그 직임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는다고 지적하는데 어찌 전적으로 그 사람들 만을 책할 수 있겠는가”라며 “조정이 사람을 제대로 뽑지 못한 것에도 책임이 있는 것”이라고 자책했다.
 
그는 “만약 그들이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해 파견하지 않는다면 내가 구중궁궐에서 어떻게 세세히 살필 수 있겠는가”라며 “더구나 지금 천리나 되는 경기 지방에 흉년이 들었는데야 말해 무엇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혜택이 아래로 미치지 않고 폐단이 위로 보고되지 않는지라, 고을이 황폐해져서 마을 개가 꼬리치지 않으며 못에 기러기가 모여든다 하니”라며 “백성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오직 어사뿐이며, 관리들이 눈짓하며 두려워하는 것도 오직 어사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개혁 군주인 정조는 민생안정을 위한 암행어사의 역할을 명확히 지시하고 있다.
 
조선은 임진·병자 양난 이후 치열한 정쟁으로 민생은 파탄지경에 이르렀다. 정조의 조부인 영조가 탕평책을 펼치며 정국수습에 나섰으나 시파와 벽파의 대립으로 인한 사도세자의 사망 등으로 탕평책은 실패로 돌아갔고, 지방은 탐관오리의 발호는 심화됐다.
 
정조는 영조의 실패를 교훈삼아 정국운영의 주도권을 갖고자 암행어사제도를 강화했다. 그는 암행어사를 통해서 효율적인 지방통제를 꾀하며 민생 현장의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역대 왕보다 더 많은 암행어사를 파견했고, 정약용과 같은 측근세력을 적극 활용했다.
 
정조는 어사의 활동구역과 행동지침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지시를 하달했다.
 
그는 “보고 듣기에 전심하고 그 종적을 비밀스럽게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한 사람이 몇 고을을 넘지 않게 하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다”며 어사의 관할을 지역 규모에 따라 2~5개 구역으로 나눴다.
 
이어 “너희들은 맡은 바 직분을 삼가해 관부와 시장, 촌락을 드나들면서 세세히 조사해 모아서 조정에 돌아올 때에 일일이 조목별로 나열해 아뢰도록 하라”면서 “인(印)과 장부를 현장에서 잡은 경우가 아니면 혹시라도 경솔하게 먼저 창고를 봉하지 말라. 무릇 황정(荒政)에 도움이 되는데 미처 시행하지 못한 것들도 탐문해 아뢰고, 특별히 뽑은 뜻을 저버리지 말고 그 직분에 걸맞게 하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개혁군주 정조의 혜안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제 하루가 지나면 2018년 새해가 시작된다. 내년엔 지방선거와 개헌 등 굵직한 정치일정이 예정됐다. 불법선거가 난무할 가능성이 높아져 그 어느 때보다도 정국 안정이 필요한 시기다. 정국이 혼란해지면 민생은 대혼란에 빠진다. 문재인 정부는 민생 안정을 위한 정확한 민심 파악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개혁군주 정조가 암행어사 제도를 적극 활용한 뜻을 깊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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