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부서 특성 고려하지 않은 일괄 적용에 부작용 속출…‘무료 봉사’ 우려도

(사진=뉴시스)

[월요신문=유수정 기자] 2018년 기업 근로환경 변화에 있어 가장 큰 화두는 ‘워라벨’이다. 신세계가 주 35시간 근무를 선언하고 나서는 등 지난해부터 이미 유통 업계를 중심으로 워라벨 열풍이 거셌던 가운데,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까지 근로시간 단축에 동참하고 나서 ‘저녁이 있는 삶’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된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 같은 기업의 근로시간 변화를 두고 “워라벨을 가장한 꼼수”라고 지적하는 실정이다. 업무 강도는 기존과 같음에도 불구하고 노동 시간만을 줄인 터에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기업에서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근로시간을 감축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말까지 잇따르고 있다.

22일 정치권에 따르면 최근 정부와 정치권은 최대 근로시간을 주(週) 52시간으로 감축하는 법안을 추진 중에 있다. 법안이 개정될 경우 국내 기업들은 오는 7월부터 현재 법정 주당 최대 허용 근로시간인 68시간을 52시간으로 조정해야한다.

이에 따라 국내 직원 수만 10만여명에 달하는 삼성전자는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기위해 근로기준법 개정에 앞서 52시간 근무 체제를 도입했다.

이는 법정 정규 근로시간인 40시간(8시간*5일)에 12시간의 추가 근무시간을 더한 것이다. 기존에는 휴일 근무(8시간*2일)의 경우 별도로 책정됐지만 법 개정에 따라 기존과 달리 연장근로 시간에 휴일근무도 포함된다. 결국 야근과 주말 근무를 포함해 주 12시간 이상의 추가 근무는 불가하게 된 상황이다.

이미 지난해 9월부터 삼성전자에 시범 도입됐던 해당 제도는 새해 들어 전 사업장에 적용됐다.

업계에서는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손꼽히는 삼성전자의 52시간 근무 도입은 워라벨 열풍을 업계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업무량에는 변동이 없는데 근로시간만 강제적으로 감축할 경우 직원들의 근로강도가 높아지는 것은 물론, 자칫 잘못할 경우 추가 근무를 하더라도 수당을 받을 수 없는 무료봉사가 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오히려 직원들의 근태가 감시 대상이 될 수있다는 우려감도 더해졌다.

실제 삼성전자가 구축한 ‘근태(勤怠) 관리 시스템’에는 비(非)업무 시간을 근로시간에서 제외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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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입증 기록을 통해 근로시간을 분(分) 단위까지 체크하고 실제로 일하는 시간을 명확하게 계산하는 해당 방식은 근무시간에 대해 보다 명확하고 엄격한 관리를 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다. 근로시간을 줄이는 대신 실제 일한 시간을 철저하게 52시간으로 계산해 업무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예를 들어 사원 출입증 기록 확인을 통해 근무 시간 내 사내 헬스장이나 식당을 이용할 경우 근무 시간에서 제하는 방식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사무실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업무 외적인 경우로 판단해 근무 시간에서 제한다. 사원증 기록으로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에는 직원 스스로가 근태 입력을 통해 근무시간에서 제외한다.

이와 관련해 대다수의 직원들이 취지에 동감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법을 지키기 위해 지나치게 직원들을 규제하고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은 실정이다.

특히나 최저임금 인상 등의 이슈가 더해진 상황에서 야근에 따른 책임을 직원에게 전가하고 추가 근로 비용을 지급하지 않으려는 꼼수가 아니겠느냐는 지적까지 더해졌다.

여기에 일부 부서의 경우 초과 근무가 불가피한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채 법만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까지 표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주 52시간 내에 업무를 끝내지 못해 추가적인 초과 근무를 해야하는 상황이 오더라도 근무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기 때문에 수당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냐는 것.

삼성전자에 근무 중인 한 직원은 “본래부터 초과 근무에 따른 수당 자체가 높았던 편은 아니라 직원들이 수당을 위해 일부러 야근을 하거나 주말 출근을 하던 것은 아니었다”고 설명하며 “업무 시간에 집중을 해야하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감하지만 근로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겠다는 회사의 방침과 근로시간 단축 이행 여부를 간부 평가에 적용하는 방안까지 더해진 까닭에 결국 업무가 많은 직원의 경우 근로시간 감축을 위해 2시간50분의 추가 근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근태에는 2시간으로 올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마트산업노조 이마트 지부는 지난 17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최저임금 꼼수 폭로에 부당노동행위 보복, 노동존중사회 역행하는 이마트 규탄’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사진=뉴시스)

주 35시간 근무를 선언하고 새해부터 이를 시행 중인 신세계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일명 ‘정용진의 파격실험’이라고 일컬어지며 2018년 노동계의 가장 큰 이슈로 자리했지만, 막상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은 오히려 근무 강도가 높아졌다고 토로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집중 근무제(오전 10시~11시30분/오후 14시~16시)의 운영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취지와는 달리, 마트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일괄 적용 탓에 실제 현장에서는 직원들의 근로 만족도가 오히려 낮아지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마트에서 근무 중인 한 직원은 “35시간 근무 시행과 점장 인사고과 반영 등으로 인해 추가 근로가 거의 불가해진 상황에서 줄어든 근무 시간 내에 기존 업무를 모두 수행해야 해 매일 매일이 전쟁인 상태”라고 말문을 떼며 “보통적으로 이마트에서 근무하는 정규 직원들의 경우 두 타임(오픈·마감)으로 나눠 근무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기존 2시간이 소요됐던 오픈 준비를 지금은 1시간 내에 끝내야 하며 파트에 따라 발주 마감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마감조가 해야할 일을 오픈 조에서 할수밖에 경우도 발생해 직원들의 업무 피로도가 높아진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직원 역시 “기존에는 업무 및 부서의 특수성을 고려해 내부 직원끼리의 협의로 추가 근무를 통한 지원이 당연시돼왔지만, 지금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고 설명하며 “결국 시간 안에 업무를 끝내기 위한 작업에만 몰두하다보니 오히려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국내를 대표하는 기업으로 손꼽히는 삼성전자와 신세계의 근로시간 감축 시도가 일반 중견·중소기업에는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라 자칫 잘못하면 제도가 악용돼 적용될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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